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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케인의 혼(魂)에 시달리는 트럼프
허찬국 2018년 09월 13일 (목) 00:39:38

9월 들어 미국의 워싱턴에서 주목할 만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1982년부터 하원과 상원에서 애리조나주를 대표했던 존 매케인 상원의원의 장례식 이후 트럼프 대통령에 비판적인 책의 출간과 칼럼의 등장으로 시끄럽습니다. 첫 번째는 1970년대 닉슨 대통령의 워터게이트 사건을 끈질기게 보도한 것으로 명성이 높은 밥 우드워드 기자의 「Fear: Trump in the White House」라는 트럼프 백악관의 난맥상을 폭로하는 책 출판소식입니다. 두 번째는 책 발간 소식 며칠 후 뉴욕타임스지에 익명의 트럼프 정부의 고위인사가 충동적인 트럼프 대통령의 행동이 크게 잘못된 결과로 이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일부 정부 인사들이 암묵적으로 견제하고 있다는 내용의 칼럼이 게재되며 큰 파장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배신자’를 찾아내라고 트럼프가 노발대발하고 있는 모양입니다.

매케인 의원은 2004년 공화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조지 W 부시 대통령과 경합했고 2008년 공화당 대통령 후보로 오바마 대통령과 대결했던 것을 포함하여 매우 다채로운 경력의 원로 정치인이었습니다. 작년 여름 발견된 뇌종양으로 8월 말에 사망하기까지 통 큰 ‘독불장군’이라는 별명에 걸맞은 행보로 잘 알려졌습니다. 투병 중 자신의 장례식 참석자 명단 등 꼼꼼한 계획을 측근 및 보좌진과 논의하며 준비하였는데, 죽음을 앞둔 본인은 남의 장례계획을 의논하듯 하는 상황의 비통함에 보좌진이 회의 후 술집으로 직행하는 일이 여러 번 있었다고 합니다.

사안에 따라 민주당 의원들과도 협조하며 당리당략(黨利黨略)에 크게 구애받지 않았던 그는 같은 당의 트럼프 대통령 비판을 서슴지 않았던 극소수의 공화당 소속 정치인이었습니다. 해군사관학교를 나와 전투기 조종사가 된 후 베트남전에 참전하였다가 미사일에 맞아 추락하는 전투기에서 탈출했는데, 그 과정에서 팔다리에 골절상을 입은 채로 잡혀 5년 동안 하노이 포로수용소에서 온갖 고초를 당했다고 합니다. 그 후유증으로 팔을 제대로 쓰지 못했지요. 이런 매케인의 위상에 시기심을 느꼈는지 자신은 ‘포로가 되지 않았던 참전 용사’를 좋아한다며 조롱하는 베트남전 병역 면제자 트럼프는 비겁해 보일 뿐입니다.

9월 1일 워싱턴 국립대성당에서 진행된 장례식에서 매케인의 생전 요청으로 오바마와 부시 두 전임 대통령이 조사(弔辭)를 했던 것에 대조적으로 현직 대통령은 초대받지 못했습니다. 9월 들어 워싱턴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은 마치 트럼프 대통령에 비판적이던 매케인의 혼령이 영향을 미치는 듯합니다. 여기에서 사려 깊은 언행으로 존경받는 오바마 대통령의 조사의 일부분을 이해를 돕기 위한 주(註)와 함께 소개합니다. 그는 매케인이 통이 크며 고매(高邁)한 원칙과 가치를 위해 부단히 노력했던 용감한 사람이었다며 애도합니다.
(전략)
“오늘 우리는 매우 특별한 사람—미국의 최선을 몸소 보여준 전사, 정치인, 그리고 애국자의 일생을 기념하기 위해 모였습니다. ... 존과 같은 사람에게서 자신이 죽은 후 조사를 해달라는 부탁을 직접 받는 일은 매우 소중한 영광이었습니다. 올해 초 전화를 받았을 때 슬픔과 동시에 놀라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통화 후 이 요청이야말로 존의 사람됨의 핵심을 보여주는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따져 보면 우선 존은 쉽게 예측할 수 없는, 종종 통념과 반대되는 입장을 취하는 것을 즐겼습니다. 판에 박힌 상원의원의 모습이 어떤 것인지에 관심이 없었듯이 판에 박힌 장례식도 원치 않았던 것입니다. 또 자기 연민을 싫어하는 면을 보여줍니다. 그는 지옥과 같은 일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열성적 에너지와 생에 대한 열망을 잃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암이 그를 겁먹게 하지 않았습니다. 희망에 찬 태도를 생의 마지막까지 유지했고, 언제나처럼 좀 쑤셔 가만히 앉아 있지 못했으며, 그의 친구들과 무엇보다도 가족들에게 매우 헌신적이었습니다. 존의 요청은 또 그의 권위에 대한 불손, 유머감각, 그리고 장난기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조지와 저(주: 후보로서 인신공격을 주고받으며 치열하게 대선에서 경쟁했던 부시와 오바마 두 전임 대통령)에게 국민을 상대로 자신에 대한 칭찬의 말을 하도록 하는 것 이상의 최후의 승리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의 무한한 포용력을 보여줍니다. 과거의 이견을 극복하고 공동의 장을 보는 그런 능력을 보여줍니다.”

“얼핏 보면 존과 나는 그렇게 다를 수 없습니다. 우리는 다른 세대에 속합니다. 나는 부모의 결별로 아버지를 모르고 자랐습니다. 존은 미국에서 가장 명문 군인 가문의 하나인 집안의 후계자로 태어났습니다(주: 매케인은 1936년생, 오바마는 1961년 생. 매케인 부친과 조부는 모두 큰 戰功으로 유명한 해군 제독이었음). 나는 냉정한 성격으로 알려졌지만 존은 반대였습니다. 우리는 각각 상이한 미국 정치전통의 대표 주자였고, 본인의 대통령 임기동안 내가 저지른 실수를 묵과하지 않았는데 그의 계산에 따르면 하루에 한 번쯤 내가 잘못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차이와 많은 언쟁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에 대한 존경심을 숨기려하지 않았고 그도 나의 그런 속내를 알고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중략)
“여러 사람들이 이번 주 내내 철없는 쇠붙이였던 매케인이 강철로 굳어지게 만든, 그가 수년간 매일 하노이 감방에서 겪었던 고초와 굴복하지 않았던 용기를 언급했습니다. 이런 일은 맥한(주: 매케인의 딸)에 따르면 그가 좋아했던 헤밍웨이의 글을 연상시킵니다. ‘오늘은 있을 수 있는 모든 날들 중 하루일 뿐이다. 그러나 앞으로 닥쳐올 모든 날에 일어날 일은 오늘 하루 당신이 무엇을 하느냐에 달려 있을 수 있다.’"
(중략)
“존은 J. F. 케네디가 이해했듯이, 그리고 로널드 레이건이 이해했듯이 이 나라를 위대하게 만드는 것은 우리가 혈연이나, 겉모습이나, 우리의 부모나 조부모가 어디에서 얼마 전에 이곳에 왔느냐를 중심으로 구성된 나라가 아니라 모두가 평등하게 창조주에 의해 불가분의 권리를 부여받고 만들어졌다는 믿음에 바탕을 두어 이루어졌기 때문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중략)
“존은 테디 루스벨트(주: 26대 미국 대통령. 이하 인용된 연설은 루스벨트가 1910년 프랑스 소르본 대학에서 했던 비평가나 훈수하는 사람이 아니라 몸소 노력하는 사람을 칭송하는 ‘Man in the arena’ 연설)에 비교되곤 합니다. 루스벨트가 말하는 ‘경기장 안의 사람’은 존을 두고 만들어진 이야기 같다는 것을 아실 겁니다. 루스벨트는 끊임없이 노력하고, 큰 목표를 달성하려는 사람, 성공할 때나 실패할 때에도 항상 최선의 싸움을 하는 사람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는 계산적이고 주저하며 승리나 패배를 모르는 이들에 대비되는 사람입니다. 바로 그런 정신을 이번 주 우리가 추모하는 것이 아닙니까? 우리의 건국 선열들이 남긴 유산에 부끄럽지 않도록 더 나아지기 위해, 더 잘하기 위해 분투하는 정신 말입니다. 우리의 정치, 공인들의 모습, 토론이 매우 편협해 보입니다. 억지로 만들어진 분노, 모욕과 논쟁을 팔며 용감하고 강해 보이려는 가식적 정치의 바탕에는 두려움이 있습니다. 존은 우리에게 그보다 더 성숙해지라고, 더 나아지라고 채근합니다."

“ ‘오늘은 있을 수 있는 모든 날들 중 하루일 뿐이다. 그러나 앞으로 닥쳐올 모든 날에 일어나는 일은 오늘 당신이 무엇을 하느냐에 달려 있을 수 있다.’ 존 매케인의 봉사의 일생을 추모하는 길에는 그의 발자국을 따라 이 나라를 위해 싸우기 위해 경기장에 뛰어드는 것이 일부에게만 주어진 기회가 아니라 모두에게 열려 있으며, 오히려 이 위대한 공화국의 모든 시민들의 의무임을 증명하는 것 이상이 없습니다. 어떤 이상은 당, 야망, 돈, 명성과 권력보다 더 위대하며, 모든 것을 걸 만한 가치가 있으며, 영원한 원칙과 변치 않는 진리가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 그를 가장 잘 추모하는 방법입니다. 존은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 몸소 보여주었습니다. 이제 우리 모두는 그런 그에게 큰 빚을 진 처지입니다.
존 매케인에게, 그리고 그가 몸 바쳐 봉사한 이 나라에 신의 가호가 있기를 빕니다.“ 

※존 매케인은 헤밍웨이의 '누구를 위해 종은 울리나?'와 스페인 내전에 참가했던  Lincoln Brigade에 경의를 표하는 칼럼 'John McCain: Salute to a Communist'을 2016년 3월 24일자 뉴욕타임스지에 게재하기도 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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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4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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꼰남 (59.XXX.XXX.215)
<억지로 만들어진 분노, 모욕과 논쟁을 팔며 용감하고 강해 보이려는 가식적 정치의 바탕에는 두려움이 있습니다.>란 말에 목구멍이 콱 막히는 거 같습니다.
답변달기
2018-09-13 09:20:15
0 0
허찬국 (168.XXX.XXX.220)
저도 오바마 연설 내용에 많은 감동을 받습니다. 감사합니다.
답변달기
2018-09-13 17:19:50
0 0
심의섭 (59.XXX.XXX.110)
좋은 글 잘읽었읍니다.
감사합니다.
답변달기
2018-09-13 07:51:07
0 0
허찬국 (168.XXX.XXX.220)
잘 보셨다니 감사합니다.
답변달기
2018-09-13 17:20:26
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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