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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손맛
한만수 2018년 08월 14일 (화) 00:49:13

요즈음 텔레비전 채널을 돌리면 공통점이 한 가지 있습니다. 공중파와 지상파 채널 어디선가 반드시 ‘쿡(cook)방’프로그램이 방영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예전에는 가끔 연예인들이 숨겨진 맛집을 찾아가 음식 먹는 것을 소개하는 정도였습니다. 요즈음은 연예인들이 직접 음식을 만들거나, 자신의 냉장고를 공개해서 유명한 셰프들이 음식을 만들게 합니다.

이 과정에서 나름대로 독특한 레시피로 음식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시청자들의 식욕을 자극합니다.
쿡방 열풍에서 보여주는 새로운 패러다임은 ‘요리는 여자들의 일’이라는 고정관념이 사라졌다는 점입니다. 예전에는 여자 요리사들이 나와서 김치 담그는 것부터 시작해서 손님맞이용 요리들을 만들어 보였다면, 요즈음은 남자 셰프(chet)들이 방송을 이끌어 가고 있습니다. 메뉴 또한 손님맞이용이라든지 가족들을 위한 것이 아니고, 술안주라든지 혼자 간단하게 해 먹을 수 있는 음식들에 초점이 맞춰졌습니다.

맛있고 독특한 요리를 내 놓은 음식점을 소개하는 프로그램도 모든 채널에서 경쟁적으로 방영하고 있습니다.
요리를 기다리고 있던 손님들은 직원이 요리접시를 상위에 올려놓으면 경품에 당첨이나 된 것처럼 손뼉을 칩니다. 음식점에서 공짜로 주는 요리도 아니고, 돈 주고 주문한 요리가 나왔는데 함성을 지르며 박수를 치는 나라는 세계에서 우리나라 사람들밖에 없을 겁니다. 손뼉만 치는 것이 아니고 삼일 굶은 사람들처럼 게걸스럽게 먹어됩니다. 한술 더 떠서 PD가 음식이 맛있냐고 물으면 “집에서 어머니가 해 주는 것처럼 맛있습니다.” 라는 말이 후렴처럼 따라 나옵니다. 

우리 말을 잘 아는 외국 사람이 그 방송을 봤다면 한국의 보통 가정에서는 세숫대야만 한 냄비에 문어를 통째 넣고, 닭 한 마리에, 쇠갈비를 얹고 온갖 조개를 가득 담아 상에 내놓는 줄 알 것입니다.

어머니가 해 주신 밥상 중 제 기억 속에 남아 있는 가장 푸짐한 요리는 독상(獨床)으로 차려 주신 닭 반 마리입니다.
군대 입대를 하는 날이었습니다. 점심상에 삼계탕도 아니고 오랫동안 삶은 닭 반 마리와 소금에 깍두기가 나왔습니다. 그 시절 은행에 다니고 있던 때라서 제 입은 맹물에 푹 삶은 닭을 게걸스럽게 먹을 레벨(level)이 아니었습니다. 게다가 입대를 앞두고 은행에 휴직계를 낸 이후 술에 절어 있던 때였습니다.

어머니가 옆에서 부지런히 닭고기를 찢어주셨지만, 나뭇가지를 씹는 것처럼 맛을 느낄 수가 없었습니다. 어머니는 군대 가는 자식에게 한 점이라도 더 먹이지 못해 안타까워하셨지만 결국 맛만 보는 정도에서 수저를 놓았습니다.

그 후 논산훈련소를 떠날 때까지 어머니가 해 주신 닭곰탕을 그릇째 깨끗이 비우고 오지 못한 후회가 가슴을 저리게 만들었습니다. 자대에 배치받아서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날이면 어머니의 손맛이 그리워집니다. 호박에 감자며 파를 채 썰어 넣어 끓인 국물에 대충대충 밀가루 반죽을 떼어 넣은 수제비가 너무 그리워서 신기루처럼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중고등학교에 다닐 때 배가 고파서 살강이나 찬장을 뒤져봐도 별다른 음식 재료가 없었습니다. 조미료도 귀하던 시절이어서 고춧가루나 간장이며 소금에 양념간장에 한두 방울 떨어트려 먹은 참기름 따위가 전부였습니다.

어머니의 손맛은 식재료가 풍부하고 적은 것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상추에 양념간장을 뿌려 대충 묻힌 겉절이만 있어도 밥 한 그릇을 뚝딱 비웠습니다. 호박에 두부며 마늘에 멸치 대신 무며 시래기를 넣은 된장국도 입에 착착 달라붙고, 된장을 들기름에 볶은 것도 밥상을 향기롭게 만드는 데 일등 공신 역할을 합니다. 고구마 줄기를 꺾어 하나하나 껍질을 벗겨 간장과 참기름에 볶은 고구마 줄기 볶음도, 풋고추에 밀가루를 묻혀 밥 위에 쪄서 간장으로 양념을 한 풋고추찜도 매우면서도 짭짜름한 맛이 밥맛을 살립니다.

어머니가 만든 요리가 다른 어느 진수성찬보다 식욕을 자극하는 것은 젖을 떼고 이유식을 할 때부터 길들여진 입맛 때문일 것입니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내 가족을 먹일 음식이라는 전제하에 만들어지는 요리라서 그때그때 최대한 정성을 다한 요리라는 점입니다.

얼마 전에 손님이 먹고 난 찌개 국물을 이용해서 밥을 볶아 팔다가 경찰에 검거된 유명 맛집 사건이 인터넷에 올라왔었습니다. 이보다 훨씬 앞서서 강남의 유명한 설렁탕집에서 수입산 쇠고기를 국산으로 속여 팔다 걸린 경우도 있습니다. 손님이 남기고 간 반찬을 다시 내놓은 경우는 보건 당국이 단속을 할 때마다 무더기로 적발이 됩니다.

유명 맛집은 물론이고 요리 가지 수가 200여 가지가 넘는다는 뷔페에 가면 배가 부를 때까지 먹습니다. 요리를 먹을 때는 눈이며 코는 물론이고 입맛까지 풍요롭습니다. 포만감 산해진미가 먹다 만 깍두기처럼 하찮게 보일 때에야 자리에서 일어납니다. 그러나 맛집이나 뷔페를 나와서 한 시간 정도만 지나면 안에서 느끼던 포만감은 거짓말처럼 사라집니다.

어머니가 해 주신 밥상은 파 몇 조각이 동동 떠 있는 콩나물국에, 삼시 세끼마다 먹는 김치 한 가지만 먹어도 포만감이 오랫동안 갑니다. 어머니가 요리할 때의 정성에는 장삿속이 들어가 있을 리가 없습니다.

원래 우리나라 사람들은 여행을 가면 독서나 명승고적 탐방이나 전통문화를 엿보기보다는 어디서 어떤 음식을 얼마나 맛있게 먹느냐에 초점을 맞춥니다. 그런 데다 오늘도 방송사에서는 내일 지구의 종말이라도 오는 것처럼 경쟁적으로 쿡방 프로그램을 내보내고 있습니다.

요리를 먹기 전에는 핸드폰으로 사진 찍는 모습을 약방에 감초격으로 방영을 합니다. 시청자들에게 “당신도 식당에 가면 음식을 먹기 전에 사진부터 찍어서 SNS에 올리라”는 메시지를 보내는 겁니다. 그럴 리야 없겠지만 정치판이 어떻게 돌아가든, 경제가 무너지든, 어떤 유명인이 성추행을 했든 관심 두지 말고 부지런히 먹는 것이 최고다, 라고 암시를 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마다 최소한 공영방송에서는 ‘쿡방’을 방영하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이 듭니다.

요즈음 아프리카 TV나 유튜브에 ‘먹방’ 이라는 프로가 많이 올라옵니다. 유명 크리에이터(creator)들은 중소기업 못지않은 수입을 올립니다. 광고비며 방송출연료며 강연비 등을 포함해서 월 1억 원 이상 수입을 울리는 크리에티터들이 다수 있습니다.

그들은 한꺼번에 짜장면을 20그릇 먹어 치우거나, 햄버거를 스무 개쯤 우습게 먹어치웁니다. 그들을 보고 열광하며 별 풍선을 던져주는 자식들이 내 집안에 있다는 상상을 하면 연일 35도를 웃도는 폭염이 갑자기 서늘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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