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언제까지, 그리고 얼마나 사과해야 합니까? 이렇게 나가다간 우리 두 나라 사이 외교엔 진전이 있을 수 없잖아요.“

필자가 알고 있는 일본인 특파원 K씨 지론이며 푸념입니다. 20 년 이상 서울에 주재하며 그것도 서울에서의 근무를 자원해 소속 신문사를 바꿔가며 일하고 있는 좀 괴짜인, 말하자면 친한파는 아니지만 지한파임을 자타가 공인하고 우리말로 인터뷰를 진행할 수 있을 정도로 한국어에도 능한 그지만 소속사의 성향대로 이념적으론 좀 우파에 가까운 전형적인 보수주의자입니다.

그러나 그는 우리정부나 국민이 원하고 있는 일본의 '진솔한 사과와 반성'을 헛 짚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나 우리정부는 일본에 새로운 총리가 들어설 때마다 혹은 정부를 대표하는 관리가 올 때마다 사과하라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일부 일본인이 비아냥하듯 만날 때마다 사과 받으려는 것은 결코 아닌 것입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그들이 진정으로 과거 제국주의 시절의 잘못을 사과ㆍ반성하고 여기에 이러쿵 저러쿵 토를 달지 않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나중에 당사자가 말을 바꾸어 변명조의 발언을 한다는 것이 아니라 뒤에서 정부 의견을 대변할 만한 위치에 있는 인물이 딴전을 부리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이 광복 이후 한일관계에 있어 몇 차례 외교 상의 위기를 초래했던 우리의 경험입니다.

예를 들자면 20세기 초의 국제 조류가 어쨌다느니, 일본의 강점이 없었더라도 그 당시 주변 열강의 어느 한 나라가 반드시 일본과 똑 같이 나라 강탈을 했을 거다 혹은 일본 통치 하에서 철도 항만 교육시설 등 사회 발전에 도움이 된 일면도 있지 않았느냐 등등의 군소리 말입니다.

심지어는 당시 정부나 국민 일부가 원했기 때문에 합병한 것이라고 강변한 자도 있었는가 하면 2,3년 전에는 한국민의 창씨개명도 그들이 원했기 때문에 일본정부가 응해준 것이라는 망언을, 그것도 다음 총리 자리를 탐내고 있는 고관이 대학에서의 강연에서 한 것이 알려지자 급히 취소하는 소동까지 벌인 일이 있었습니다.

요는 속 다르고 겉 다른 이중인격적인 행위를 그만 두고 성실한 사과와 반성을 하라는 것이 우리 입장입니다. 일본인 사이에도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꽤 많다는 것을 그들과 접촉하면서 느끼는 것은 필자 혼자만은 아닐 것입니다.

지난해 10월 초, 일본의 유명인사인 96세의 고령으로 현역의사로 활동하며 노인학의 권위자인 히노하라 시게아키(日野原重明) 박사가 서울에 와 강연을 했습니다. 그가 모두에서 행할 한국 국민에 대한 과거사 사과 말을 이렇게 하면 어떠냐고 그의 측근 한 사람이 초안을 내게 보여주며 의견을 물었습니다. 아주 간결하면서도 성의있게 보이는 글에 나는 찬성하고, 요는 여기에 다른 군말을 붙이지 않으면 된다고 덧붙였습니다.

얼마 전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이 외신 기자회견에서 일본에 사과나 반성을 요구할 생각은 없다고 말했다는 것이 간략하게 배경설명 없이 보도되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반대편 정당들의 반향이 곱지 않았으며 어떤 당에서는 이명박의 정체성이 드러났다는 말까지 했습니다. 신문보도에도 잘못이 있었습니다.

바로 다음 날 일본에 있는 일본인 친구가 이 발언을 환영한다며 앞서 말한 K 지국장이 쓴 신문 기사를 메일로 보내왔습니다. 거기에는 필자가 본 우리 신문에는 없었던 설명도 있어 당선인의 발언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당선인은 과거 일본의 사죄ㆍ반성이 형식적이어서 한국 국민에게 별 감동을 주지 못 했다고 전제하고, “나로선 성숙한 양국 관계를 위하여 사죄나 반성은 요구하지 않겠다. 일본도 그런 요구가 없어도 그런 이야기를 할 수 있을 정도의 성숙한 외교를 할 것이라고 본다”고 일침을 놓으며 점잖게 말한 것입니다. 자기가 말하는 실용주의는 대일 외교에 있어서도 그런 형식적인 것은 그만두고 실질적으로 잘 해 나가자는 것이라고도 했습니다.

당선인의 ‘정체’까지 들먹이며 비난하던 측도 이 발언에 대해 다시 한일관계를 뒤흔들 정도로 흥분하지는 않고 일단은 추이를 관망하는 듯, 이 사과문제는 더 이상 확대되지 않고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라 하겠습니다.

-일본 주오(中央)대 법과 중퇴 -주한 미국 대사관 신문과 번역사, 과장 -AP통신 서울지국 특파원, 지국장 -TIME 서울지국 기자 -Fortune 등 미국 잡지 프리 랜서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