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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년 만에 고향 찾은 6·25 전사자
방석순 2018년 07월 11일 (수) 00:09:20

‘호국보훈의 달’이라는 지난달 19일 대구에서는 6·25전쟁 당시 전사한 국군 일병 고 윤경혁 씨 혼령의 귀환식이 열렸습니다. 윤 일병은 나라의 부름을 받아 스물여덟 꽃다운 나이에 전선에서 산화했습니다. 그리고 68년 만에야 핏덩어리로 두고 떠났던 백발의 아들(윤팔현 씨) 품에 안기게 되었습니다.

고 윤 일병의 생애도 그 유해의 송환 과정도 참으로 애달프고 기구합니다. 스물한 살에 결혼, 2남1녀의 가장으로 행복한 삶을 꾸리던 그가 전선에 달려나간 것은 전화가 한창이던 1950년 8월. 미 1기병사단에 배속되었으나 그해 11월 중공군의 개입으로 아군이 밀리던 중 북한 지역에서 전사했습니다. 유해는 지난 2001년 평안남도 개천 지역에서 미북 공동발굴 작업 중 다수의 미군 유해와 함께 발견되었습니다. 그러나 먼저 고국 땅을 떠나 멀리 하와이에 있는 미 국방부 전쟁포로 및 실종자 확인국으로 가야 했습니다. 정밀감식 과정에서 뒤늦게 국군으로 추정되었고, DNA 검사를 통해 최근에야 비로소 신원이 확인된 것입니다.

“글쎄, 기쁘다고 해야 할지, 슬프다고 해야 할지…” 고 윤 일병의 송환식에 참석한 사촌동생은 적잖이 혼란스러워했습니다. 그의 유해는 우리 정부나 국군이 찾아낸 게 아닙니다. 미군이 발굴해 태평양 건너 미국 땅까지 갔다가 멀고 먼 길을 되돌아오게 된 기이한 사연에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지난달 12일에는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가운데 싱가포르에서 사상 처음 미북 정상회담이 열렸습니다. 핵과 미사일을 놓고 험악한 말싸움을 벌이던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악수를 나누는 장면은 놀라웠습니다. 4개 항의 합의문도 놀라웠습니다. 새로운 북미관계 수립, 한반도 평화 유지 노력,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미군 전쟁포로(POW) 및 실종자(MIA) 유해 발굴 및 송환이 발표된 합의 내용입니다.

특별히 주목할 것은 네 번째, 예상 밖의 합의사항이었습니다. 그렇게 적대적이던 두 사람이 처음 마주한 그 중요한 회담에서 전사자와 실종자의 유해 송환에 합의한 것입니다. 그런 것이야말로 미국을 미국답게 만드는 요소가 아닐까 싶었습니다. 숱한 인종이 모여서 만들어진 미합중국을 지켜나가는 힘은 나라를 위해 목숨 바친 사람들에 대한 존경, 자국민에 대한 철두철미한 보호 정신일 것입니다. 그게 내가 믿고 의지하고 따를 수 있는 나라다운 나라의 모습이 아니겠습니까. 북한도 그런 미국과의 대화를 열기 위한 선제 노력으로 억류자를 석방하는 일부터 시작했을 것입니다.

남북 관계가 좋았을 때나 나빴을 때나 우리 정부가 북한 측에 국군 포로나 전사자 유해의 송환에 대해 제대로 언급한 적이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그보다 당장 살아 있는 국군 포로나 납북자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협의를 요구한 적이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인도주의, 경제협력 등 갖가지 구실로 북에 막대한 지원이 이루어지는 동안에도 우리 정부는 국군 포로, 납북자 송환 문제에는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입을 다물고 평화 구걸에만 매달려 왔던 것 같습니다.

물론 북한은 전후 상호교환으로 포로 문제는 완결되었다는 입장입니다, 전향한 사람 이외의 억류자는 없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정부의 방관과 무관심 속에 그동안 십여 명의 국군 포로가 온갖 역경을 헤치고 자유 대한을 찾아 돌아왔습니다. 그때마다 북에 억류되어 고통 속에 연명해 가는 국군 포로들의 실상이 폭로되었습니다. 정부도 북에 억류된 포로를 4만여 명, 생존자를 5백여 명으로 추산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정작 탈출 포로의 구원 요청에는 부처 간 책임 미루기나 미온적 태도로 절망감만 안겨주곤 했습니다.

지난 2003년 북한을 탈출한 국군 포로 전용일 씨는 중국에 숨어 지내며 베이징 주재 한국대사관에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그러나 포로 여부가 확인되지 않는다는 황당한 이유로 거절당했습니다. 조국을 위해 싸우다 포로가 되고, 조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탈출한 그가 조국으로부터 부정당했을 때 느낌이 어떠했을까요? 비상수단으로 위조여권을 마련, 고국행 비행기를 타려던 그는 중국 공안에 체포되어 북으로 강제 송환될 위기에 놓였습니다. 국내에 이 사연이 알려지고 비판 여론이 들끓자 정부는 뒤늦게야 중국 당국과의 교섭에 나서 전씨는 환국의 꿈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싱가포르 합의문이 발표된 직후 미국은 물론 여타 세계 언론에서 트럼프가 속은 것 같다는 논평이 나왔습니다. 혹시 이면합의가 있지 않을까 하는 추측도 있었습니다. 구체적인 북핵 폐기 방안이 제시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트럼프는 여전히 자신만만하지만 최근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평양을 다녀온 후에도 양측 사이에는 날 선 공방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과연 합의사항이 제대로 이행될지, 정말 트럼프의 제안대로 김정은이 핵과 미사일을 버릴지, 아직도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그러나 미국과 북한의 줄다리기에서 미군 유해의 송환은 여전히 상당한 의미를 갖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북미 정상회담이 끝나자마자 북한은 인도주의 차원에서 북에 묻혀 있던 미군 전사자 유해 송환의 뜻을 밝혔습니다. 미북에 앞서 몇 차례나 정상회담을 가졌고, 민족 화해를 부르짖는 남북 사이에서는 왜 그런 인도적인 사업이 일어나지 않는 것일까요. 국군 포로, 납북자 문제를 외면한 남과 북의 어떤 화해 제스처도 정치적인 쇼요 위선일 뿐입니다. 이산가족 만남이나 스포츠 교류, 경제 협력 이전에 인도적, 인권적 차원에서 남북에 억류된 국군 포로, 납북자, 비전향자의 생존 확인과 송환 문제부터 진지하게 논의되어야 합니다. 죽어서도 고국 땅에, 고향 땅에 묻히고 싶다는 이들의 간절한 소망이 이루어지도록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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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3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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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루킹 (1.XXX.XXX.202)
밑에 오마리 또 나왔네요 낄데 안 낄데 구분 못 하네요
자 봅시다 박정히 정권 때 연 인원 32만5천명을 휴전선에서 빼서 월남에 보냈습니다
(박정히가 쿠데타 할 때도 휴전선에서 병력 빼내고, 전다갈이 쿠데타 할 때도 휴전선에서 병력 빼내고
이번 쿠데타 음모도 휴전선에서 병력 빼내는 걸로 계획한 걸 보면 상당히 일관적입니다)

무려 5,099명이 사망하고 11,232명이 부상당했습니다
그런데 희한한 게 있어요
실종자 0명 포로 0명입니다
1973년 3월 20일 주월사령관 이세호가 박정히 앞에서 귀국신고를 합니다
단 한명의 포로도 없이 무사히 귀국했다고 신고하고 박정히는 이를 치하하네요?
그해 5월 국회에 보고할 때도 포로 0명 실종 0명입니다
1985년 국방부가 발간한 파월한국군 전쟁사에도 “단 한명의 실종 포로도 없었다”라고 못 박습니다

예 믿습니까?
네 진실은 뭘까요

박정히는 한국군 포로를 자진월북자로 처리했습니다 납치된 게 아니라 자진월북
적어도 안학수 하사 등 3명이 공식적으로 월북자로 처리되었습니다 아니 웬 베트남에서 월북자?
그러게요. 북한에 있는 게 확인되었어요. 납치라면 송환노력을 해야 하는데 자진월북이니까 그냥 반역자 취급만 해주면 됩니다 편하죠.

실종자들은 모두 전사자 처리 됐습니다
전사 통지되고 호적에 사망 처리된 후에 “자력으로” 베트남에서 돌아와 부활한 사람도 있습니다
유종철 병장이 그 사례입니다

박정히는 이국만리에 휴전선에서 빼낸 군대를 보내놓고
포로는 자진월북자로 실종은 전사자로 보내버렸고
한 사람도 낙오되지 않고 돌아왔다고 한 사람도 안 버렸다고 참군인 놀이 합니다
그래놓고는 군인들에게 배상해주기 싫어서 헌법에 배상금지!!! 팍팍 박아놨습니다
그래서 연평해전 전까지 전사자에 대해 배상이 개차반이었던 겁니다
집권 18년 동안 6.25 전쟁포로 유해 송환 따위는 관심도 없었고
월남전 고엽제 얘기 같은 건 신성모독 같은 거였죠
고엽제피해자지원은 김대중 때 민주당에서 만들어 주기 전까진 없었어요
밑에 박정히 팬 오마리도 뭐 그런 거 관심있었겠어요?

김대중이 북한에 국군포로 문제를 다시 제기하고 유해발굴을 제대로 시작하기 전까지
박정히 전대갈 아무도 그런 거에 관심없었죠
오히려 “국군 포로”란 말 자체가 금기 사항이었습니다.
실제로 휴전 때 포로 교환한 이후 한국정부는 64년까지는 군사정전위원회를 통해 포로 송환을 요구했지만 그 이후에는 그만 뒀어요. 그후 30년 동안 박정히 전대갈 노보통사람은 국군 포로란 걸 아예 금기시 했습니다
김영삼 때 국방부가 1994년 조창호 소위 자력귀환 사건 때문에 국군포로실종자대책위원회란 걸 만들기 전까지
박정히 전대갈 시대 30년 동안 6.25 국군 포로 얘기 나온 거 들어본 적 있나요?
유해발굴 들어본 적 있나요? 기억 안 날 겁니다 그런 건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밑에 오마리도 마찬가지로 모를 거고 기억 안 날 겁니다 그런 거 관심있었겠어요?
실제로 생존 국군 포로는 1994년 이후 2004년까지 10건 17명의 귀환 사례들이 있지만
2007년 리명박근헤 이후에는 2011년 1차례 있는 것 외엔 없습니다
2011년 사례는 2008년에 탈북했는데 입국을 못하고 다시 돌아갔다가 2010년에 재탈북해서 귀환한 사례네요
리명박근헤는 뭐했대요?
오마리가 관심을 안 줬나 보내요 이 때엔 좀 주지 그랬어

밑에 !! 붙이면서 흥분하는 오마리 언제부터 관심있었다고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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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12 15:19:42
4 0
오마리 (99.XXX.XXX.237)
이 정부는 위선적이고 표리부동, 북한 인권문제 관심 없고 북한 비위 맞추기에 정성을 쏟고 있는데다 육이오를 북침이라 가르치고 있으니 무슨 전쟁포로 유해 송환에 관심 있겠습니까!!
답변달기
2018-07-12 04:19:56
0 2
두루킹 (1.XXX.XXX.202)
인터넷 구글에 간첩식별 요령 검색해보세요

“현 정부에 불만이 많은 자”가 있네요
음 상당히 의심이 갑니다
답변달기
2018-07-12 16:12:06
4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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