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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강 갑질’로 떠오른 일화
이성낙 2018년 05월 14일 (월) 00:08:32

근래 한 대기업 총수가 ‘요강 갑질’ 논란에 휘말렸습니다.

참으로 오랜만에 들어보는 낱말 ‘요강’에 새로운 용어인 ‘갑질’이 짝짓기를 하니 좀 혼란스럽습니다. 실은 ‘요강’ 하면 긍정적이거나 웃음을 머금게 하는 일화가 종종 떠오르기 때문에 필자에게는 더욱 생소하게 다가왔습니다.

그중 하나가 청소년기에 겪은 경험으로, 필자가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는 추억이기도 합니다. 고교생 시절 필자는 조부님의 건강 지킴이였습니다. 특히 조부님이 연로해지면서, 필자는 자연스레 이른 아침 시간 매일 ‘요강 담당자’로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먼저 조부님이 거처하는 방에 조용히 들어가 이불 밑으로 손을 넣어 온도가 적당한지 ‘검침’하면서 아침 문안 인사를 올립니다. 이어서 근처에 놓여 있는 요강을 들고 나와 비우고 깨끗하게 씻은 다음 마른걸레로 정갈하게 닦아 다시 제자리에 갖다 놓습니다. 이게 바로 부모님이 당시 필자에게 내린 지침이었습니다.

물론 요강이라는 용기의 구조상 맨손으로 운반하다 보면, 잔뇨(殘尿)가 손가락에 묻을 수도 있고(요즘처럼 비닐장갑도 없던 시절이라 더욱 그랬죠), 용기에서 풍기는 냄새 또한 결코 녹록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그런 일을 집안의 가사 도우미가 할 일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지금까지도 필자에겐 아련하게 소중한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 경험은 몇 년 후인 1950년대 말, 필자가 독일 의예과에 다니던 시절로 이어졌습니다. 2년 반(다섯 학기)의 의예과 과정 중 방학 기간을 이용해 8주 이상 병원 실습을 필수적으로 마쳐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 병원 실습의 첫 과제가 바로 이른 아침마다 밤새 거동이 불편한 환자가 배뇨(排尿)한 오줌을 담은 용기[(獨)Uringeschirr, (英)Chamberpot], 즉 환자용 튜브 모양의 신형 ‘요강’을 치우는 일이었습니다. 오줌의 특유한 냄새는 동서양에 차이가 없었습니다. 그다음은 환자의 침상과 침구를 깔끔하게 정리하는 것이고, 이어서 환자마다 다른 메뉴의 식사를 정확히 배분해야 했습니다. 그 밖에 시구(屍軀)의 마지막 세욕(洗浴)도 종종 하곤 했습니다. 이 모든 것이 교육의 한 부분이며, 의료 행위의 본질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요강’ 하면 웃음을 머금게 하는 일화도 있습니다. 1960년대에 스웨덴 중부 지역의 도시 순스발(Sundsvall)을 방문했을 때의 일입니다. 우연히 만난 사람이 필자가 한국인인 것을 알고는 “이 도시에 굉장한 ‘한국예찬론자’가 있으니 꼭 만나야 한다”며 자리를 적극 주선했습니다. 필자도 궁금한 구석이 있어 그 ‘열광적인 한국팬’을 만나기로 했습니다. 저녁 식사를 겸해 한국 이야기를 즐기고자 서너 명이 합석한 자리가 마련되었습니다. 주인공인 ‘한국예찬론자’는 스칸디나비아 삼국(노르웨이, 스웨덴, 덴마크)이 서울에 설립해 운영한, 지금의 국립중앙의료원(NMC)의 전신인 ‘스칸디나비안 병원’ 임상병리실에서 근무하고 돌아온 여성(Medical Technician)이었습니다. 전형적인 스칸디나비아인의 미모를 지닌 분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녀의 집은 수많은 한국 예술품으로 가득했습니다. 필자는 그녀의 한국, 특히 한국 문화예술 사랑을 가늠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그녀가 집중적으로 수집한 김흥수(金興洙, 1919~2014) 화백의 작품들이 무척 인상적이었습니다. 이어 다양한 민예품을 보여주는 가운데 고가의 ‘값진 뚜껑이 있는 도자기’임을 강조하면서 내놓은 것이 일제강점기에 나온 목련무늬의 ‘청화백자(靑華白瓷)’였습니다. 분명 도자기임에 틀림없는데, 필자에게는 너무나도 익숙한 ‘도자기(陶瓷器) 요강’이었습니다. 속으로 얼마나 당혹스러운지 표정을 관리하기가 무척 힘들었습니다. 반세기가 지난 오늘까지도 생생하게 기억나는 것으로 보건대 퍽 인상적이었던 ‘요강 이야기’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렇습니다. ‘요강’이 비록 금(金)으로 만들어졌다 한들 밥상에 올릴 수는 없습니다. 매사에는 형식과 품격이 있다는 본보기로 마음에 되새기기도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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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2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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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옥 (211.XXX.XXX.11)
오랫만에 조부모님 생각도 나고, 추운날에는 좀 하기 싫었던 기억도 있었으나, 요강 비우던 기억으로 유년시절을 뜨올리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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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15 09: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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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탉 (222.XXX.XXX.194)
지금은 우리에게서 멀어진 요강, 잘 읽었습니다.
미당의 시 영산홍에 소실댁 툇마루에 놓인 놋 요강이 생각납니다.
쓸쓸했을 요강, 서방님은 언제나 올 것인지 기다려지기만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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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14 14:3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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