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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를 잘 사는 비결
신아연 2017년 12월 26일 (화) 00:33:28

칼럼과 에세이를 20년 간 쓰다가 소설을 쓴 지 만 2년이 되었습니다. 2년 동안 두 권의 소설을 냈으니 일모작은 한 셈입니다. 소설을 쓰기 시작한 이후 글쓰기를 농사에 비유하는 것이 자연스러워졌습니다. 이런 생각은 얼마 전에 방문한  전주의 ‘최명희 문학관’에서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말에는 정령이 붙어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말이 씨가 된다고도 하지요. 생각해보면 저는 소설이라는 이야기 속에 말의 씨를 뿌리는 사람인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어떤 씨를 뿌려야 할까, 그것은 항상 매혹과 고통으로 저를 사로잡고 있었습니다. 언어는 정신의 지문이고 모국어는 모국의 혼이기 때문에 저는 제가 오랜 세월 써 오고 있는 소설 『혼불』에다가 시대의 물살에 떠내려가는 쭉정이가 아니라 진정한 불빛 같은 알맹이를 담고 있는 말의 씨를 심고 싶었습니다.” - 1998년, 최명희

‘말의 씨’를 뿌리는 사람이 곧 소설가인 것입니다.

신약 성경에는 뿌려진 씨앗에 대한 비유가 있습니다. 길가에 뿌려진 씨앗, 돌밭에 떨어진 씨앗, 가시덤불에 흩어진 씨앗, 옥토에 심겨진 씨앗 이야기 말입니다. 길가에 뿌려진 씨앗은 저잣거리의 수선스러움과 행인들의 발길에 이리저리 채이느라 열매는 언제 맺을지, 한마디로 해찰이 심한 씨가 될 소지를 품고 있습니다. 한편 돌밭에 떨어진 씨앗은 환경 자체가 척박하다보니 자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독선과 아집, 자의식만 키워 발아하여 열매를 맺는 결과를 내지 못할 우려가 있습니다. 가시덤불에 흩어진 씨앗은 처음에는 멀쩡하게 자라는 듯하지만 주변의 훼방과 방해가 심해 결국 의지가 꺾이면서 정체감 없는 씨앗이 될까 염려됩니다.

말의 씨를 뿌리는 것이 소설가의 일이라 할 때, 소설가는 우선 자신의 마음 밭을 옥토로 가꾸어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 말의 씨를 통해 양적, 질적으로 우수한 소출을 낼 게 아닌가요. 성경에서는 옥토가 되는 비결로 복음을 그대로 믿고 받아들일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랬을 때만 씨앗을 통해 삼십 배, 육십 배, 백 배의 결실을 거둔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소설가의 옥토는 어떠해야 할까요? 제 경험을 나눠보자면, 저는 소설을 쓰면서 전보다 훨씬 정직해졌습니다. 우선 제 자신을 덜 속이게 되었고 그로 인해 타인과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려는 마음이 점차 길러졌습니다. 더 유연해지고 덜 비판적이 되어 자신과 타인을 너그럽게 대하고 사람들의 시선으로부터도 많이 자유로워졌습니다.

또한 삶을 일어나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내면의 힘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소설가 최명희도 “내가 정말 쓰고 싶었던 것을 딱 한마디로 말하라고 한다면 어둠은 결코 빛보다 어둡지 않다는 것입니다.”라고 했듯이 그 어떤 삶도, 그 어떤 삶의 어둠도 글 속에서는 빛을 얻게 되니 글은 삶보다 진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글을 쓸 수 있는 한 두려움은 더 이상 두려움의 대상이 아닐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다 보니 점차 현재에 집중하는 능력이 키워지는 것을 느낍니다. 지나간 과거의 회한과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의 불안이 내면을 잠식하지 않도록 ‘현재’라는 파수꾼을 마음 문 앞에 세울 수 있게 된 것입니다. 현재라는 파수꾼은 과거나 미래에 붙들려 얼어붙고 기죽은 마음이나 집착과 인정 욕구 등에 끄들리는 마음을 녹이고 펴서 매번 제자리로 돌려놓습니다.

무엇보다 글에 몰입하게 되면서 생활이 단순해진 것이 소설을 쓰게 된 이후의 가장 뚜렷한 변화입니다. ‘글심’이 ‘농심’과 닿아있다고 믿는 제 생각도 바로 이러한 단순한 생활에 근거합니다. 새벽에 눈 뜨면 논밭으로 나가고 해 지면 돌아와 잠드는, 농부의 위대하고 우직한 단순성의 리듬이 소설 쓰는 일에도 적용되더라는 것이지요. 그저 읽고 쓰고 하다 보니 하루가 가고, 한 달이 가고, 한 해가 가더라는 겁니다.

여기까지 말하고 보니 글을 위한 마음의 옥토나 삶을 위한 마음의 옥토가 실상은 같은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일어나는 일을 그대로 받아들이며, 현재에 집중하고, 정직하고 단순한  리듬으로 살아가는 것,  잘 하고 잘 살기 위해 그 이상의 비결이 있을 수 없지 싶습니다. 저뿐 아니라 누구라도 새해를 그렇게 살면 되겠다 싶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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