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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순에 다시 돌아보는 ‘생로병사’
방재욱 2017년 12월 07일 (목) 00:13:30

정년을 맞은 것이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칠순(七旬)이라니‧‧‧  힘차게 달려왔던 청춘이 점점 더 먼 추억으로 자리하는 기분에 젖어듭니다. 빠르게 흐르는 세월만 탓하며 몸과 마음이 젊은 시절 같지 않고, 가슴 한구석에 허전하고 쓸쓸한 기운이 스며드는 느낌도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췌장암 4기를 이겨내며 ‘웰다잉 극단’을 이끌어오고 있는 중학 동창의 ‘아름다운 여행’이란 연극(YTN 뉴스)을 보며, 문득 재직 시절 교양과목에서 다루었던 ‘생로병사(生老病死)’의 주제들이 떠올랐습니다. 그 연극을 보고 친구가 카톡에 올린 “힘든 몸을 이끌며 삶의 순간순간의 소중함을 무대에서 몸소 보여주는 모습 감사하며 눈시울이 뜨거워집니다. 얼굴과 목소리도 맑고 삶과 죽음에서 자유롭고 초연한 모습 더없이 아름답고 우리도 닮고 싶습니다.”라는 내용의 글을 읽으며 삶의 아름다운 마무리를 위한 한 걸음이 바로 오늘 하루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생로병사에서 ‘생(生; 탄생)’은 ‘축복의 메시지’로 정의해 봅니다. 탄생을 축복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은 부모의 만남과 정자와 난자의 만남으로 이루어지는 탄생이 ‘우연’이 아닌 ‘필연’이기 때문입니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만나려면 친조부모와 외조부모가 만나야 하고, 더 위로 거슬러 올라가보면 부모의 만남은 결코 우연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정자와 난자가 만나 수정되는 과정은 축복의 필연성을 더욱 확연하게 보여줍니다. 정자가 난자에 접근해 수정되려면 한 번에 3억 개가 넘는 정자가 사정되어야 하며, 그중 난자에 접근하는 정자 수는 300~400개 정도에 불과합니다. 현재의 내가 존재하기 위한 처음 경쟁이 무려 75만~1백만 대 1이나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난자에 접근한 정자 중 하나가 난자에 들어가 수정이 이루어지는데, 나를 태어나게 한 정자가 아니라 옆에 있던 정자가 들어가 수정이 되었다면 지금의 ‘나’는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없습니다. 이렇게 축복을 받고 태어나 칠순을 맞이하고 있는 삶을 아름답게 마무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하는 생각에 잠겨봅니다.

‘노(老; 노화)’는 마음을 열고 보람 있게 살아가는 ‘웰에이징(Well-aging)’으로 정의해 봅니다. 100세 시대를 맞이하며 UN에서 평생 연령을 5단계로 재조정해 0~17세는 미성년자, 18~65세는 청년기, 66~79세는 중년기, 80~99세 노년기 그리고 100세 이후는 장수노인으로 구분해 발표한 바 있습니다. 이에 따르면 지금 내가 맞이하고 있는 칠순은 아직 중년기 초반이라는 사실에 어깨가 으쓱해지기도 합니다.

아름답게 늙어가는 웰에이징을 위해 내게 맞는 삶의 방식을 마련해 중년기답게 살아가려 생각하다 보니 “사람이 아름답게 죽는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어려운 것은 아름답게 늙어가는 것이다.”라고 한 앙드레 지드의 말에 마음에 와닿습니다.

‘병(病; 질병)’은 ‘시련 그리고 극복의 과제’로 정의하며, 건강한 삶을 의미하는 웰빙(Well-being)과 연관시켜 봅니다. 질병은 항상 우리 곁에서 호시탐탐 공격 기회를 노리고 있는 평생의 난적(難賊)입니다. 그러나 “건강에 대한 지나친 걱정만큼 건강에 치명적인 것은 없다.”는 미국 격언에서처럼 나이가 들며 질병에 대해 너무 민감하게 대응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걸으면 병이 낫는다.”는 스위스 격언을 마음에 담고, 웰빙을 위한 1주일에 5일, 30분 이상 걷는 ‘530 걷기 습관’의 실천을 다짐해봅니다.

‘사(死: 죽음)’는 ‘시간의 섭리 그리고 아름다운 마감’으로 정의하며, 암 투병 친구가 이끌어가고 있는 ‘웰다잉 극단’을 연상하며 웰다잉(Well-dying)과 연관지어 봅니다. 톨스토이는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 순서가 없다. 아무것도 가져가지 못한다. 대신할 수 없으며, 경험해볼 수도 없다. 이 세상에 죽음만큼 확실한 것은 없다. 그러나 사람들은 겨우살이는 준비하면서도 죽음은 준비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칠순을 맞이하는 ‘지금’이 바로 겨우살이가 아닌 존엄한 죽음을 준비하며 삶을 더 소중하게 받아들여야 할 때가 아닐까요.

모든 사람들에게 평등하게 주어진 것은 단 1초라도 더 가지거나 덜 가질 수 없는 하루 24시간이라는 시간입니다. ‘똑딱’ 하고 지나는 1초는 매우 짧고, 60초로 채워지는 1분도 짧게 느껴집니다. 그러나 3,600초라는 1시간은 무척 길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86,400초인 하루라는 시간은 어떨까요. “나는 내 인생의 주인이며, 내 마음의 선장이다.”라는 말을 떠올리며, 나 자신에게 “하루 24시간을 어떻게 살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져봅니다.

세상에 태어나 희로애락(喜怒哀樂)을 겪으며 살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인생의 황혼기가 성큼 다가오기 마련입니다. 삶은 붙잡을 수 없이 흐르는 세월 속에 잠시 머물다 가는 것이고, 살아 있는 동안 아무리 많이 가지고 있어도 죽을 때는 티끌 하나도 가져가지 못하는 것이 인생입니다. 칠순을 맞이해 내 삶을 비추는 거울 안을 들여다보며, 축복받고 태어난 내 삶에서 죽음이라는 마지막 여행을 건강하고 아름답게 실현하고 싶습니다. 생로병사의 삶에서 누구나 세월이 흐르면서 매일 24시간씩 죽음 앞으로 다가가고 있는 것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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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2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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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리 (99.XXX.XXX.160)
수수하게 욕심 없는 모습으로 늙어가다 어느날 고통 없이 한 순간에 세상을 떠나길 매일 기원하며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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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08 13:2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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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승국 (14.XXX.XXX.94)
'웰 다잉'은 곧 '웰 리빙'일 것입니다.
삶의 완성이 죽음이라 알고
1초 1분 1시간 하루 한 해...
나의 일생을 이루는 그 어느 한 순간도 소홀하지 않고
소중히 열심히 잘 사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일상의 타성에 젖어 무심했던 이 진리를
오늘 글로써 상기시켜 주셔서 감사합니다. .
답변달기
2017-12-07 09:4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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