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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통일의 반면교사(反面敎師)
신현덕 2017년 11월 20일 (월) 00:15:29

사우디아라비아 군을 주축으로 구성된 8개 나라의 아랍연합군이 최근 예멘을 공습했습니다. 예멘 반군(후티)이 봉쇄하고 있는 공항과 항구를 열기 위한 작전입니다. 하지만 많은 외신은 예멘 반군이 사우디아라비아 수도 리야드를 미사일로 공격한 것에 대한 보복이라고 보도했습니다. 예멘 반군의 미사일 공격은 사우디아라비의 요격으로 실패했고, 연합군에게 공습의 빌미만 제공했습니다. 유엔은 공격 직전에 반군이 장악하고 있던 항구를 개방하라고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일종의 경고였습니다.

국제인권단체(Human Rights Watch)는 교전 당사자인 아랍연합군과 후티 반군 등을 동시에 비난합니다. 국제법상 각각의 의무를 다하지 않고 민간인에 대한 식량, 연료 및 의약품 전달을 방해하여 위기가 고조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은 남북예멘이 통일하던 때부터 예견되었습니다. 예멘은 1990년 남북이 통합하여 새로운 국가를 수립했습니다. 당시 북의 예멘아랍공화국(자본주의)과 남의 예멘인민공화국(공산주의)은 평화적으로 합쳐 새 국가로 출발한다고 선포했습니다. 이들은 세계에 보란 듯이 통일 수도는 북예멘의 사나로 하고, 대통령은 북예멘, 총리는 남예멘이 각각 맡았습니다. 더하여 남예멘은 부통령자리까지 얻었습니다. 통합 후 30개월 간 북예멘 3명, 남예멘 2명으로 구성된 5인 대통령위원회가 입법과 행정업무를 관장하기로 했습니다.

이런 가운데 남북 어느 쪽도, 어느 종족이나 세력 등도 통일의 근간이 되지 못했습니다. 무작정 섞여 살아가면서 정비해 나가기로 의견을 모았던 것이지요. 물론 국가 정체성도 확립하지 못했습니다. 외부에서 보기엔 전쟁 없이 이룩한 평화적 통합이었습니다. 반면 내부적으로는 통합된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모든 것이 미봉이었을 뿐입니다.

얼마 되지 않아 꿰맨 헌옷의 실밥이 터지듯 미봉된 문제가 불거졌습니다. 1994년 예멘은 남북 간의 불화로 전투에 돌입했습니다. 열세였던 남부 출신들이 힘을 얻었다(?)고 생각해 북측을 떠본 것입니다. 전투는 북측의 승리로 단기간에 끝났습니다. 이때도 문제가 완벽하게 정리되지 않았습니다. 남북의 갈등은 안으로만 곪아가고 있었습니다. 갈등이 2009년 다시 폭발했습니다. 북부 예멘에서 정부군과 후티 반군 간에 전투가 벌어졌습니다. 수백 명이 죽고 25만 명가량이 정든 고향을 등지고 유랑에 나섰습니다. 설상가상으로 2011년에는 아랍의 봄으로 불리던 소요가 예멘에도 불어 닥쳤습니다. 대통령에게 물러나라고 소리쳤습니다.

소요가 계속되던 중 2014년 반군이 수도 사나에 들어와 거리에 진을 쳤고, 도로를 봉쇄했습니다. 정부군과 반군 사이에 내전이 일어났습니다. 2015년 초 반군은 사나를 완전히 접수함과 동시에 대통령궁을 포위했습니다. 대통령과 각료를 가택에 연금, 당연히 나라를 내놓으라고 압박했습니다. 대통령은 예멘 남부의 항구도시 아덴으로 도망쳐 나왔습니다. 공교롭게도 아덴은 통일 전 남예멘의 수도였습니다. 정부군과 반군이 서로 수도를 바꿨습니다. 통일 전과 정반대의 입장이 된 것입니다. 공산세력이 북부를, 자유세력이 남부를 차지했습니다.

모택동의 게릴라전 교범처럼 열세였던 남부가 통일 예멘을 숙주삼아 성장했습니다. 결국에는 세력을 확장한 반군이 상황을 역전시켰습니다. 반군이 국토의 대부분을 차지했고, 이어 대통령이 2015년 3월 해외로 도망쳤습니다. 그가 연합군의 지원을 받아 8월에 되돌아왔습니다.

전쟁은 사우디아라비아와 수단 등의 연합군(수니파)과 이란 등의 지원을 받는 반군(시아파) 사이의 종교 충돌 양상으로 변질되었습니다. 이 틈에 예멘 남부에는 알카에다 아랍지부가 둥지를 틀었고, 이슬람국가라고 불리는 IS도 숨어들었습니다. 미군의 US콜 호를 침몰시키는 등 전쟁이 커졌습니다. 지역의 안정도 깨졌습니다. 정부는 있으나 구실을 못 했고, 군대가 있지만 싸울 수 없었습니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많은 나라들이 예멘을 자국민 여행금지 국가 명단에 올렸습니다. 부정과 부패에 찌들어 봉기했던 국민들은 이제 각자도생할 뿐입니다. 내전으로 죽은 사람이 9,000명에 육박하고, 5만 명가량이 부상했습니다. 300만 명이 유랑하고 있습니다. 인구 3,200만 명 중 2,000만 명 이상이 굶어서 가죽만 남은 상태입니다. 유엔은 국제 사회에 긴급 구호를 요청했습니다.

남의 나라 일임에도 안됐습니다만 우리에게는 큰 교훈을 줍니다. 예멘은 동서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반년이 조금 지나 통일했습니다. 당시 예멘은 우리에게 남북통일의 희망을 한껏 부풀게 했습니다. 하지만 체제와 이념의 중심 세력 없이 더불어 산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하고, 잘못된 발상인지를 깨닫게 합니다. 특히 자유·민주·자본 세력과 독재·공산·사회주의 세력 간의 통합은 엄청 어렵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예멘은 무조건 통합한 국가가 보여주는 전형적인 실패사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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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3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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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리 (24.XXX.XXX.220)
작년 탄핵 사태 이후 하나 배운 것은 이념과 사상이 다르면 가족과 친구들과도 멀어진다는 것이었습니다. 서로 다른 의견에 얼굴을찌쁘리게 되니 대화가 끊기고 만나지 않게 된 것입니다. 거기에 전화 SNS를 통한 연락도 하지 않게 되는 만큼 이념의 차이는 무섭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솔직이 아주 친한 두 지인과 ( 한 사람은 토론토 거주, 한 사람은 한국 거주)의 연락 창구를 block해 버렸다가 요사이 맘을 바꿨을만큼 무서움을 체험...

탄핵의 중요함보다 더 중요한 것은 탄핵 후에 벌어질 국가 상황이 명약관화 했는데 도 미래에 벌어질 실체를 보지 못하고 당장 갈아 엎으면 더 참신하고 훌륭한 정부가 들어서 국민에게 행복한 생활을 보장하리란 미혹에 휘둘리는 모습이 안타까웠습니다.

한국엔 지도자가 될 인물이 없어 슬프고 다혈질 국민성이 슬픕니다. 아마도 사색당파의 유전자는 계속 될 것 같아 슬픕니다. 공감하는 글 감사하며 경종이 되는 글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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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20 17:2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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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용구 (211.XXX.XXX.187)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공산주의의 통일전선은 그 수법이 언제나 같습니다. 세력이 약할 때는 공동행동, 그안에서 세력확장, 세를 얻은 다음에는 민주세력 몰아내기~~~경계해야하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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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20 08: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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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현덕 (210.XXX.XXX.84)
감사합니다
한반도가 함께 살 수 있는 자유 민주 평화 통일을 위한 대비책이 마련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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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20 10: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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