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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택트 또는 어라이벌
김창식 2017년 11월 15일 (수) 00:03:53
   

11월이면, 그것도 중순에 들어서면 그동안 잊고 살았던 ‘시간’에 대해 생각하게 됩니다. 이제 한 달이면 해가 바뀌네. 올 한 해 이룬 것은 무엇이고 빠트린 것은 무엇인가? 무엇이든 슬슬 마무리해야 할 시점이 아닌지? 아니 도대체 무슨 계획이라도 세웠더란 말인가? 며칠 전 밤늦도록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채널을 '뒤척이다' 영화 한 편을 골랐어요. <컨택트(Arrival, 2016)>!

영화 제목을 왜 굳이 <컨택트(Arrival, 2016)>라고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외계인과의 만남을 소재로 한 조디 포스터 주연의 SF 영화 <콘택트(Conract), 1997)>가 작품성으로 널리 인정을 받고 흥행에도 성공한 터라 그에 편승해 덕을 보려는 영화배급사의 숨은 의도가 있는 것으로 짐작합니다. 그렇다해도 관객에게 혼동을 주는 만큼 바람직하지 않은 착안으로 보이는군요.

줄거리는 비교적 단순하지만 이해는 쉽지 않습니다. 검은색 선돌(立石)을 닮은 거대한 외계비행물체 ‘쉘’이 미국을 비롯한 세계 각지 상공에 ‘도착(어라이벌)’합니다. 여주인공인 언어학자 루이스(에이미 아담스)는 과학자 이안(제레미 레너)과 함께 외계인과 ‘접촉(컨택트)’을 시도합니다. 그래야만 외계인이 방문한 의도(대립? 화해?)를 알 수 있을 테니까요, 18시간마다 열리는 비행체 내부로 진입해 거대한 낙지를 닮은 미지의 외계 생명체와 마주한 루이스는 외계인들이 먹물로 보여주는 둥근 모양의 표의문자 언어를 어렵사리 해독하는데...

“이 이야기는 끝이자 시작인 너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란다.” 루이스가 어린 딸을 어르며 들려주는 첫 장면 대사는 깊은 함의를 갖습니다. 장면이 바뀌면서 외계 비행체 탐색 과정에서 딸에게 일어났던 가슴 아픈 과거(미래)의 회상(예감)이 표면의 긴박한 서사와 엇갈리며 겹칩니다. 딸이 사춘기를 지나며 불치병에 걸려 생을 마감한 것이지요. 남편 이안과도 헤어지게 되고요. 이야기 흐름이 헷갈리는 것은 미래의 사건이 회상 형식으로 현재의 상황에 끼어드는 중층의 내러티브 때문입니다. 루이스는 외계인과의 소통 과정에서 시간을 앞질러(또는 되짚어) 미래를 보는 예지력을 갖게 된 것이에요.

우울하고 침침한 색조로 느릿느릿 전개되는 이 영화는 결국 ‘시간’에 대해 말하고 있는 듯합니다. ‘시간의 다른 모습’은 이 영화가 천착하는 중심 메시지라고도 할 수 있어요. 루이스가 파악한 외계 생물체의 시간은 한 방향으로 흐른다고 믿고 있는 우리의 시간과 다릅니다. 양방향으로 흐르는 것이지요. 먹물로 쏘아 보내는 외계인의 언어처럼 원(圓)을 그리는 모호한 순환구조일는지도 모릅니다. 우리에게는 미래의 일일 수도 있는 일이 과거의 일일 수도 있고 또 그 반대일는지도 모른다는 관점을 드니 빌뇌브 감독은 특유의 불친절한 비주얼과 화법으로 보여줍니다. 미래의 지구인에게서 도움을 받으러 왔다는 외계인의 방문 목적도 알쏭달쏭합니다.

다시 처음의 일상으로 돌아옵니다. 여주인공 루이스는 미래의 불행(이혼, 딸의 죽음)을 내다보면서도 딸의 아버지이자 자신의 남편인 과학자 이안과 결혼합니다. ‘끝’이 어떻게 귀결되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시작’을 하는 것이지요. ‘끝의 시작’이라고나 할까요. ‘인간의 자유의지로 택한 시간의 불가역성에대한 순응’이 영화의 궁극적 주제인 듯합니다. 이래저래 공연히 영화를 선택했다는 후회가 들었어요. 도통 잠을 이룰 수가 없었거든요. 주위가 어슷어슷 밝아오는 것이 동이 트는 모양이었습니다. 시간을 붙잡고 싸우느라 시간을 놓친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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