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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수수 먹는 자동차
김수종 2008년 01월 02일 (수) 03:05:26

옥수수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아무래도 간식거리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찐 옥수수를 하모니카처럼 입에 물고 뜯어먹는 것이 옥수수에 대한 우리의 추억입니다. 요즘 젊은이들에겐 극장에서 영화를 구경하며 씹어 먹는 팝콘이 옥수수의 이미지로 더 친숙할지 모릅니다.

북미가 원산지인 옥수수가 전 세계로 퍼져나간 것은 신대륙발견 이후라고 합니다. 밀, 쌀과 함께 세계 3대 곡물에 들어가지만, 생산량으로 보면 그 중에서도 단연 으뜸입니다. 아프리카와 아시아 등 가난한 나라 사람들이 살아가는 것은 웬만한 환경에서도 잘 자라는 옥수수 덕택입니다. 북한주민을 굶주림에서 구하는 데 기여하는 식량도 강냉이, 즉 옥수수입니다.

미국은 세계 최대의 옥수수 재배국가입니다. 어딜 가나 옥수수 밭을 흔하게 볼 수 있지만 아이오와 주를 중심으로 한 중서부는 콘벨트(corn-belt)라고 불릴 정도로 종일 차를 타고 달려도 옥수수 밭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지금은 모르지만 1990년대 초 뉴욕 맨하탄의 빌딩 숲 사이에서도 옥수수 밭을 본적이 있습니다.

미국이 이 많은 옥수수를 어떻게 먹는 지를 잘 모르겠습니다. 분명한 것은 미국사람도 옥수수를 많이 소비하지만 미국의 소나 돼지 등 가축도 옥수수를 어마어마하게 소비한다는 겁니다. 또한 미국의 옥수수는 전 세계로 대량 수출되어 음식으로 소비될 뿐 아니라 가축의 사료로 사용됩니다. 미국의 식량 원조를 받는 나라, 특히 아프리카 국가들은 미국 옥수수에 기대는 바가 큽니다.

옥수수는 미국을 세계 제일의 농업국가 및 축산국가로 만드는 기반이라 할만합니다. 그래서 미국 옥수수 작황은 세계 곡물시장과 축산물 시장을 쥐락펴락합니다. 옥수수 밭이 없는 미국을 생각하는 것은 마치 자동차 없는 미국을 상상하는 것과 같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헌데 작년부터 미국 옥수수에 큰 이상이 생겼습니다. 옥수수 가격이 춤을 추기 시작한 것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석유 값 오르는 것에만 신경을 썼겠지만, 그 못지않게 옥수수 값이 치솟았습니다.

왜 옥수수 값이 뛰었느냐 하면, 주로 사람과 가축이 먹던 옥수수를 자동차도 먹겠다고 덤벼들었기 때문입니다. 옥수수를 발효하고 증류하여 추출한 에탄올(ethanol)이 자동차 연료로 대량 사용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속칭 알코올로 불리는 에탄올은 가공하여 사람이 마시면 취하는 술이 되고, 내연기관에서 연소하면 에너지를 내는 연료가 됩니다.

에탄올은 지구온난화의 주범인 이산화탄소 배출이 적어 휘발유나 디젤 등 화석연료의 대체재가 될 수 있습니다.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은 해외로부터의 석유수입에 달러를 쓰느니 미국 내 옥수수 생산 농가에 달러를 주는 게 낫다는 판단으로 에탄올 생산 장려정책을 펴기 시작한 것입니다. 당연히 미국의 자동차업계, 대학연구소, 유통업체가 에탄올 정책에 기민하게 움직이고, 미국의 대평원 콘벨트에 에탄올 정제공장이 마치 옛날 정유소 생겨나듯 세워지는 등 미국에 에탄올 붐이 일고 있습니다. .

미국에서 자동차에 쓰이는 에탄올 연료는 'E10'과 'E85' 두 가지입니다. 휘발유에 에탄올 10%를 첨가한 E10은 보통 차의 연료가 됩니다. 그러나 석유 의존도를 현저하게 줄일 수 있는 것은 에탄올 함유량 75~85%의 E85이며 이 연료를 쓰려면 엔진이 달라야 합니다. 현재 미국에는 E85로 달릴 수 있는 자동차가 600만대에 이르고 있고, 에탄올 주유소는 1,400곳이라고 합니다. 미국 전체 주유소가 15만 곳인 것을 감안하면 아직 에탄올 연료보급은 미미한 수준입니다.

에탄올 연료의 딜레마는 그 원료인 옥수수가 식량이라는 사실입니다. 에탄올 붐이 자칫 미국은 물론 전 세계의 식량수급 균형을 깰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식량공급에 차질을 빚지 않고 미국이 생산할 수 있는 에탄올 분량은 현재 생산량보다 약 3배 늘어난 560억 리터라고 미국의 전문가들은 추정합니다. 그래봐야 미국이 필요한 휘발유 소비량의 7%밖에 안 됩니다. 에탄올이 휘발유에 비해 청정 연료인 것은 분명하지만 그 정제과정에는 막대한 전력이 들어가고 이는 결국 이산화탄소 배출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습니다.

미국의 에탄올 붐과 그에 따른 옥수수 값 폭등이 던지는 신호는 무엇일까요? 이번 옥수수 값 상승은 과거 작황이나 농산물 수급 변동에서 오는 가격등락과는 판이하게 다릅니다. 농산물이 사람이 먹는 식량만이 아니라 자동차 엔진을 돌리는 에너지원으로의 전환에서 비롯된 패러다임의 변화입니다.

여러 정황으로 볼 때 인류의 생활을 풍요롭게 했던 석유문명은 기로에 서 있는 것 같습니다. 화석연료 사용으로 배출된 이산화탄소로 지구가 더워지면서 기후변화의 재난이 빈발하고 있습니다. 중국과 인도의 산업화로 석유고갈이 촉진되고 석유 값은 천정부지로 오르고 이산화탄소배출은 더욱 늘어납니다. 미국이 현실적 대안으로 우선 선택한 에탄올 연료 장려가 옥수수 값을 끌어올리면서 세계 곡물시장이 불안해지고 있습니다. 곡물가격이 오르면 브라질 등 열대우림 숲은 농경지 개발을 위해 더욱 빨리 파괴되면서 기후변화를 촉진하고 이는 다시 세계의 농업 환경을 불안하게 만들 것입니다.

인류문명이 에너지, 식량, 환경의 3각 악순환 딜레마에 빠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에너지, 환경, 식량은 21세기 개인, 국가, 인류의 안위가 걸린 문제입니다. 65억 세계인구 중 절반이 세 끼를 배불리 먹는 것이 어려운 판인데, 자동차가 먹을 것이 모자라 옥수수를 넘보고 있으니 뭔가 이상합니다. 최근 미국이 유별나게 에너지 문제에 조바심을 보이고 있는 것은 정말 주시해야 할 불길한 조짐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새해가 뜨고 새 정부가 출범하는 때인데 너무 어두운 얘기를 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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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1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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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 (69.XXX.XXX.214)
새해, 새정부에 중요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엄청난 개발이 과연 후대에 어떤 효과를 가져다 줄지 심사숙고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곳 캐나다도 엘리뇨 현상으로 기후가 비정상적으로 바뀌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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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1-03 10: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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