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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기 없는 현명함은 한낱 허구일 뿐!”
이성낙 2017년 07월 25일 (화) 00:04:41

《한국인으로 태어나지 않아 다행이다》는 무토 마사토시(武藤正敏, 1948~) 전 주한 일본대사가 쓴 책의 제목입니다. 책 제목치고는 참으로 ‘특별하다’ 못해 생소하기까지 합니다. 전직 외교관의 표현이라고 하기엔 어떤 선을 훌쩍 넘어버렸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기 때문입니다. 외교관에게는 ‘Yes’라고도 하지 말고, 더더군다나 ‘No’라는 표현은 입에 담지도 말라는 직업 준칙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일본의 일부 독자를 위한 팬 서비스일까요? 한 전문인의 직업윤리가 함량 미달인 걸까요? 하여튼 무토 전 대사의 오만과 편견이 책 제목에서 강하게 드러납니다.

필자도 무토 전 대사를 패러디하며 ‘일본인으로 태어나지 않아 다행이다’란 제목을 붙인 책을 어렵지 않게 집필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와 관련해 몇 가지만 짚어보겠습니다.

일본은 1937년 약 20만 명의 중국인을 ‘도살(屠殺)’한 이른바 ‘난징대학살(南京大虐殺)’ 사건을 모르는 일이라며 시치미를 딱 떼고 있습니다.

그의 앞서 1895년 경복궁 건청궁(乾淸宮)에서 대한제국의 명성황후를 살해하는 만행(乙未事變, 일본 측 작전명 ’여우 사냥‘)을 저질러놓고도 전혀 모르는 일이라며 딱 잡아떼고 있습니다. 그런데 일본 후쿠오카(福岡)의 구시다 신사(櫛全神社)에는 이 만행에 능동적으로 참여해 황후를 살해한 자객 3인 중 한 명인 도오 가쓰아키(藤勝顯)가 당시 사용했다는 히젠도(肥前刀)가 보관되어 있습니다. 그 칼집에는 ‘단칼에 늙은 여우를 베다(一瞬電光刺老狐)’라는 글이 선명하게 새겨져 있습니다. 당시 일본 정부의 극악한 만행을 주도한 총책은 바로 조선 주재 일본 공사 미우라 고로(三浦梧樓, 1846~1926)였습니다. 그가 일본 군속 자객을 이끌고 만행을 진두지휘했던 것입니다. [註: 간혹 낭인(浪人)이 참여했다고 하는데, 이는 그냥 떠돌이 낭인이 아니라 분명 일본 군속이 저지른 만행이다.] 그럼에도 일본 사회는 물론 역사가들도 이 엄연한 역사적 사실을 부정하고 있습니다.

근래 저자 무토는 “매 맞더라도 문재인 정권과 한국사회의 문제점은 짚겠다,(2017.7.14.)”는 일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미국의 엔론(Enron) 스캔들 책임자는 회사의 회계 장부를 분식(粉飾)한 죄로 20년 형을 선고받았는데, 한국 SK의 CEO 최태원은 3년 만에 특사로 풀려난 사실을 지적하며 한국 사회의 올바르지 못한 점을 지적합니다. 마치 우리 사회의 아픈 상처에 소금을 뿌리듯 말입니다.

그런데 혼(魂)이 담긴 전통 인물 초상화를 보면서 필자는 아주 다른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적어도 ‘분식’과 관련해 일본은 별로 떳떳하지 못할 거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아시겠지만 초상화는 14세기 중국에서 원(元)나라를 멸망시킨 한족(漢族)의 명(明)나라가 ‘탈(脫)원나라’ 문화 정책의 일환으로 도입한 것입니다. 몽골족이 주도한 원나라 문화보다 한족의 문화가 우월하다는 것을 과시하는 차원에서 조상 숭배와 함께 초상화 제작의 큰 계기를 마련한 것입니다. (趙善美 명예교수). 이 초상화 문화는 한반도를 거처 일본 열도로 전해졌습니다.

필자의 연구에 따르면, 조선시대 초상화 519점 중 무려 약 82퍼센트에서 각종 피부 증상이 세밀하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즉 정상 피부를 보이는 초상화는 18퍼센트도 안 됩니다. 이는 조선 시대를 지배한, 올바름을 추구한 정신의 결과물입니다. 반면 일본 초상화에 등장하는 피사체의 주인공은 예외 없이 흰색으로 분식(粉飾)되어 있습니다. 참고로 고승(高僧)의 초상화는 분칠을 하지 않았습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豐臣秀吉, 1537~1598),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 1543~1616)는 물론 우키다 히데이에(宇喜多秀家, 1572~1655)의 안면은 완전히 흰색으로 처리되어 있습니다. 요컨대 ‘역사의 분식 회계’인 셈입니다.

같은 맥락에서 ‘시오노 나나미 스토리’도 참으로 충격적이었습니다. 잘 알다시피 시오노 나나미(鹽野七生, 1937~)는 《로마인 이야기》, 《십자군 이야기》 등으로 한국에서도 유명한 베스트셀러 작가입니다. 필자도 몇 년 전 그녀의 책을 밤새워가며 탐독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 그녀가 “인도네시아에 거주하던 네덜란드 백인 여성을 일본군 위안부로 삼았다는 이야기가 유럽이나 미국 같은 국제 사회에 알려지면 치명적이므로 일본 정부 차원에서 대처해야 한다”는 글을 <문예춘추>(2014)’에 기고한 것입니다. 그 소식을 듣고 필자는 정말이지 울고 싶었습니다. 필자가 읽은 그녀의 모든 작품을 뇌리에서 세척(洗滌)해버리고 싶은 마음 간절했습니다. 큰 배신감을 감내하기가 버거웠습니다. 국제적 소양을 가졌다고 믿은 일본 작가의 ‘분식의 DNA’를 보기 민망했습니다.

독일 현대 작가 에리히 케스트너(Erich Kaestner, 1899~1974)가 “용기 없는 현명함은 한낱 허구일 뿐이다!(Klugheit ohne Mut ist Quatsch!).”라고 한 말의 뜻을 되새기며 일본이 역사를 직시하고 사죄할 것은 사죄하는 용기가 없다면 일본 사회가 지향하는 ‘사회의 정직, 현명함’은 결코 허구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는 어두운 생각을 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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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옥 (14.XXX.XXX.219)
전적으로 동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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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7-31 13:2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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