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老 사회학자의 시각에서 본 2017년 대한민국
박상도 2017년 04월 05일 (수) 00:11:47

사회학 이론은 매우 어렵고 힘든 과목이었습니다. 특히, 이 수업을 강의하는 박영신 교수님은 학생들 사이에서 ‘박스필드’라 불릴 정도로 엄한 분이었습니다. 필자가 대학에 다니던 1980년대에 인기 있던 미국 드라마 ‘하버드 대학의 공부벌레들(미국에서는 The Paper Chase였는데 국내에서는 제목이 바뀌었음)’에 등장하는 ‘킹스필드’ 교수의 이름을 차용해 ‘박스필드’라는 별명을 학생들이 붙여드린 거였습니다.

박 교수님의 수업은 일주일에 한 권 분량의 책을 읽어야 따라갈 수 있었는데, 당시 거의 날탕으로 공부하던 대학생들에게 그분의 수업은 가능하면 피해가고 싶은 대상이었습니다. 필자 역시 운 좋게 교수님의 수업을 피해 다니다가 3학년 때, 전공필수 과목인 사회학 이론 수업을 수강하면서 교수님을 만나게 됐습니다.

“박상도 군, 에밀 뒤르켐(Emile Durkheim)의 시각에서 보면 분업의 기능은 무엇인가요?” 이렇게 불쑥 물어보시는 교수님의 질문에 대답을 하기 위해서는 수업 준비를 해 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때가 대학교 생활 중 거의 유일하게 열심히 공부한 시절이었습니다. 30년의 세월이 지나서 이제는 사회학 이론 수업의 대부분을 필자는 기억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지난 30년 동안 그 수업을 강의하신 교수님의 시선으로 우리 사회를 바라보고 분석하며 살았던 것 같습니다. 돌이켜보면 교수님은 후학들에게 지식(知識)을 가르치신 것이 아니라 지성(知性)에 눈뜨게 해 주셨던 것 같습니다.

매일 뉴스를 접하고 이를 전달하는 일을 하다 보면 가끔 결정과 판단의 기로에 서게 될 때가 있습니다. 지난 몇 달 간, 대한민국은 뉴스의 시대였습니다. 자고 일어나면 새로운 뉴스가 기다리고 있고 촛불의 힘은 대통령을 탄핵했으며 이에 대해 태극기를 들고 나온 사람들은 ‘좌파몰이’라는 오래된 패러다임으로 대통령의 탄핵은 원천무효라는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20년 넘게 방송을 했지만 지금처럼 슬픈 대립을 보지는 못한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이 대립은 방향이 잘못된 것 같기 때문입니다. 답답한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을 때, 한 지방신문이 박 교수님의 인터뷰를 실은 기사를 보았습니다.

시민교육은 왜 필요한가? 나는 우리 나라의 소위 엘리트 교육을 믿지 않는다. 청문회에 나온 이들의 태도를 보라. 최고의 교육적 혜택을 받고 고시에 합격하고, 국가의 최고위직을 차지한 이들에게서 과연 보편적인 정직함을 찾아볼 수 있던가? 아마도 성공을 위해 일상적 감성을 희생시키는 삶을 살다 보니 그들은 일반적 수준의 도덕적 감각을 상실한 게 아닐까? 참담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 사회가 과연 저런 엘리트들에 기대어 경영돼야 하는가? 라는 질문에서부터 시민교육의 토대가 놓이리라.

이제 탄핵이 인용됐다. 일차적 목표가 달성되자 정치권은 말한다. 이제 거리의 집회를 그만하고 일상으로 돌아가라고. 하지만 나는 지금이야말로 눈 부릅뜨고 언제라도 촛불의 광장으로 다시 뛰쳐나올 수 있는, 24시간 깨어 있는 시민이 필요한 때라고 말하고 싶다. 각성한 시민이라면 자기 세계에 갇히지 말고 사회의 다양한 문제를 균형 있게 볼 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언제든 촛불 들고 나갈 준비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권력자들에게 늘 상기시켜야 한다. 선거철뿐만 아니라 보통 때에도 깨어 있는 시민들이 정치인들을 굉장히 불편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것이 '위임된 독재자’를 감시하는 깨어 있는 파수꾼으로서의 시민의 역할이다.

팔순이 되신 원로 사회학자께선 깨어 있는 시민의식에 대한 당부를 하셨습니다. 시민들이 정치인들을 불편하게 만들어야 오늘 같은 일이 재발되지 않는다는 말씀이셨습니다. 지금 광장에 울리는 두 목소리는 표면적으로는 촛불과 태극기, 두 주장이 서로 부딪히는 것으로 보이지만 근원적인 분석을 하면 촛불과 태극기 집회는 대립이 아닌 권력 엘리트에 대한 시민의 적극적 견제로 이해해야 할 것 같습니다. 우선 촛불 집회에 참여한 시민 중 태극기 집회에도 참여한 사람도 꽤 있습니다. 그 숫자가 집계되진 않았지만 필자 주변에도 두 집회 모두 참여했다는 분이 있습니다. 촛불과 태극기, 이렇게 둘로 나뉘어서 국민이 얻는 이득은 없습니다. 이 둘을 나눠야지만 이익을 얻는 집단은 있을 수 있지만 말입니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광장에 모인 이 두 힘이 정치꾼의 선동에 휩쓸리지 않고 하나의 방향으로 향해 나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박 교수님은 그 방향에 대해서도 놓치지 않았습니다.

경제제일주의도 극복해야 한다. 먹고사는 일은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이게 신적인 위치로 올라서는 순간 모든 삶의 가치는 초라해진다. 우리 5,000만이 여태껏 그렇게 물질을 떠받들며 초라하게 살았다. 하지만 이번에 그 가치가 한계를 만났다. 아마도 공평의 기준을 용인할 수 있는 어느 선이 있는 것 같다. 넘어가면 도저히 견딜 수 없는, 사회적 용인의 선이 선명히 드러났다. 그 분노의 용인선이 조금씩 하향 조정되기를 기대하고 싶다.

하지만 보다 근본적으로는 앞에서 말했듯이 삶의 지향성을 재조정하는 시민운동이 전개되었으면 한다.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는 물질적 성공이 유일한 구원의 길이 되었다. 삶도 구원도 참 초라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웃에 대한 시민적 보살핌의 정신, 공평함에 대한 기대를 바탕으로 공식화된 시대의 신념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이들이 있다. 나는 비록 소수지만 누군가가 여전히 그런 질문을 던지고 있다는 사실이 감사하다.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는 ‘잘사는 것이 제대로 사는 것’이 되어 버렸습니다. 잘살게 해 준다면 약간의 부정이나 부조리는 눈감아 주는 사회를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그러한 낡은 생각에서 벗어나야 할 때입니다. 필자가 고발 프로그램을 하며 노점상 단속 현장에 동행 취재를 할 때, 거리에서 가장 뼈아프게 들은 말이 “왜, 큰 도둑들 앞에서는 벌벌 기면서 우리 같은 힘없는 사람들만 괴롭히냐?”였습니다. 그 사람들이 말한 큰 도둑들을 시민의 힘으로 기소해서 이제 법의 심판대에 올렸습니다. 이러한 경험이 큰 자산이 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경험이 계속 이어져서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공정한 사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정치하는 사람들의 말은 숨소리 빼고 다 거짓말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스스로 정신 차리는 법이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박 교수님이 해결책으로 제시한 명문장을 올립니다.

선출된 권력자들을 끊임없이 불편하게 만들어야 한다. 이제 깨어 있는 시민의 목소리를 감당할 그릇이 못 되는 정치인은 정치할 생각을 하지 말아야 한다. 깨어 있는 시민들이 삶의 주도권을 끌고 가야 한다. 끊임없이, 정치를 시민 앞에 불러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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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7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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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smos (175.XXX.XXX.85)
안녕하세요 박아나운서님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항상 어떤 문제든 집고 넘어가야 할 관건들을 설득력있게 잘 말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강물처럼 흐르는 공정한 사회 정말 희망합니다
대한민국 국민 모두 힘을 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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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4-09 01:16:57
1 0
고효석 (121.XXX.XXX.133)
가끔씩 올려주시는 글들이 항상 곁에두고 싶을 정도로 자주 반복해서 읽어봅니다. 민감한 사안들도 우리의 일상처럼 담담하게 풀어주는 것도 너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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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4-06 11:05:22
1 0
김종우 (121.XXX.XXX.50)
오 감사합니다. 이런 글 정치인들과 우리 모든 국민 다 읽기를 바랍니다.
정말 이제부터 두 눈을 부릅떠야 할 때입니다. 또 다시 기회를 만들어 남 좋은 일 해서는 안 되지요. 우리 국민 모두가 행복할 수 없다 해도 최소한 기회 균등의 나라를 만들어야 합니다. 누구나 해볼 기회는 가져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몇 사람 좋으라고 정치하게 만들어서는 안 됩니다.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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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4-05 16:42:36
2 0
꼰남 (220.XXX.XXX.208)
<용인 선>이란 단어를 화두로 삼고 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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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4-05 10:28:02
0 0
두리반 (125.XXX.XXX.11)
항상 좋은 글을 잘 읽고 있습니다.

매일 받아보는 글들 중 어떤 것은 스팸메일 같은 느낌이 드는가 하면

선생님의 글은 궁금하고, 읽고 싶게 만드는 매력이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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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4-05 09:46:20
0 0
ehlsehf (113.XXX.XXX.197)
바람직하기는 정치인과 관료들이 제 역할을 잘 하여
국민들의 촛불집회 수고를 할 필요가 없게 되기를 바랍니다.
국회가 보수 진보의 갈등이 첨예하게 논의되고 타협되고 해소되는 장소가 되기를 바랍니다.
국회의석을 사욕을 좇는 소인배들에게 맡긴 것도 오도된 민중과 우중에도 책임이 있지만,
이러한 오도된 역사를 이끌어낸 더러운 과거를 지닌 상당수의 지도층에 있는 자들을 국민들이 이제는 바꾸고 있습니다.
박스필드 교수님의 통찰력있는 지적에 공감합니다.
이 시대의 교육이 보편적 정직함을 전혀 보장하지 못하고 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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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4-05 09:28:57
3 0
자작나무 (221.XXX.XXX.190)
잘 읽었습니다.
인용된 내용의 글은 <비판사회학>의
관점에서는 상식에 속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광장의 두 세력이 모두
권력에 대한 견제라는 입장은 동의하기
어렵군요.오도된 권력에 대한 저항과
그 권력을 옹호하는 입장이 동일선상에서
논의된다면, 이 세상의 사법적 정의는 어디에
발을 붙여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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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4-05 08:00:03
2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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