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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니까 길이더라
신아연 2017년 01월 17일 (화) 00:09:45

지난 주 금요일(13일), 본 자유칼럼에 실린 박상도 SBS 선임 아나운서의 글 ‘내 친구 권태준'은 제게  적잖은 여운과 감동을 주었습니다. 주인공 권씨의 삶의 여정으로 인해 오래전 제가 쓴 ‘위기의 중년 남자들’이란 글과 최근 제 블로그 이웃의 글이 겹쳐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제 것은 그만두고 블로그 지인의 진솔한 마음을 그대로 옮겨 보겠습니다.

“만 33년을 근무한 회사를 떠납니다. 무려 3분의 1세기를 한 회사에서 일했습니다. 퇴직을 결정하고 난 후 오늘까지 하루하루가 정말 소중했습니다. 인간이란 묘해서 좋지 않은 기억은 재빨리 지우고, 좋은 기억만 남기는 기억편집기계라고 합니다. 고통은 최소화하고 행복은 극대화하기 위해 이렇게 진화해왔다고 합니다. 저 역시 오랜 직장 생활에서 수없이 겪었던 어려움과 고통은 그다지 생각나지 않고, 좋았던 일만 새록새록 떠오릅니다.

동료들과 자연휴양림에서 하룻밤을 즐겁게 보내고 맞이한 아침, 단풍나무 숲으로 비치는 가을 햇살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승진하고 어깨를 으쓱이면서 귀가한 날, 수십 개의 색 색깔 풍선으로 집안을 장식해 놓고 나를 기다리던 아내와 아이들이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묻습니다. 회사 그만두고 나면 뭘 할 거냐고 말입니다. 저는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일을 마음껏 해보려고 합니다. 우리나라 교육제도 상 우수하다는 말은 남이 닦아 놓은 길로만 다니고, 수상한 곳에는 일체 눈길도 주지 않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수의 편에 안전하게 서서 홀로 가는 소수를 그저 바라보는 것이 지금껏 우리가 사는 방식이자 가장 에너지를 덜 쓰는 생존법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런 방식의 삶은 창의력을 키우는 데는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창의력을 키우려면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일을 해봐야 합니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결론을 가지고 있다. 주어진 길을 따라가다 보면 예정된 결론에 이르게 된다. 지금 그 길을 이탈해서 다른 길을 가면 완전히 다른 결론에 이르게 된다.’- 스크루지 영감이 크리스마스 아침에 한 말입니다. 은퇴로 인한 사회적인 고립감이 솔직히 두렵습니다. 그렇지만 이제 예정된 길에서 한 발 벗어나 또 다른 결론에 이르는 발걸음을 내디뎌 보려고 합니다.”

권씨와 제 블로그 지인은 익숙하게 가던 길을 수정하거나 아예 버린 후 다른 길을 가게 된(될) 사람들입니다. 인생 후반전이니, 은퇴 후 설계니, 노후 준비니, 백세 시대니 하는 말도  ‘새 길, 다른 길, 가지 않은 길’을 마주하거나 맞닥뜨리는 시기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입니다.

박희채의 장자 인문학 에세이 <다니니까 길이더라>에는 ‘길은 다니니까 생기는 것’이란 장자의 인용이 나옵니다. 애초에 길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다님으로써 생기는 것, 내가 감으로써 길이 되는 것이란 뜻입니다. 또한 길에는 가야 할 길, 가고 싶은 길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옷감의 씨줄날줄처럼 묵묵히 가다 보면 가야 할 길이 어느새 가고 싶었던 길로, 가고 싶은 길이 곧 가야 할 길이 되어 있더라는 것이 저자의 경험입니다. 문제는 지속성이며 연속성입니다. 내가 원했던 길이 아니라며, 애초 내가 품었던 지도와는 다른 길이라며 도상에서 주저앉지만 않는다면 길은 어떤 식으로든 열리고 이어지기 마련이라고 저자는 당부하듯 말합니다.

최근에 읽은 건축가 임창복 씨가 쓴 <알파 하우스를 꿈꾸다>에는 '이동한 방향에서 돌아서서 자신의 이동 경로를 다시 보는 것이 인간의 체험에서 가장 감흥을 주는 일'이라는 내용이 있습니다. 건축과 공간에 관한 담론이지만 삶의 체험도 별반 다르지 않다고 봅니다.

이력서를 다시 써야만 했던  권태준 씨나 새로운 스타트 라인에 선 블로그 지인처럼 저 역시 가정이라는 울타리, 남편이라는 난간이 허물어진 후 이제는 글을 써서 밥을 먹는 이른바 전업 작가의 길을 가고 있습니다. 비록 가난에 시달리고 암중모색을 거듭하지만 거뜬히 자존감을 지키며 옹골지게 내면을 다져나가는 제 경험도 권태준 씨와 닮았습니다. 다녀 보니 길이고, 다니니까 길이더란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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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촉한가슴 (223.XXX.XXX.5)
좋네요.
편안히
나에게 주어진 삶과
내가 서있는 공간과 가는 길을
다시한번 생각하게 하는군요.
맛깔나고 정갈한 글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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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18 14:54:37
0 0
신아연 (210.XXX.XXX.217)
요즘 '꽃길'이란 말이 유행하던데, 달리 꽃길일까요? 말씀하신 것처럼 나에게 주어진 삶, 나의 공간, 나의 가는 길, 그것이 꽃길일테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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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18 17:01:55
0 0
한글로망 이돈규 (115.XXX.XXX.100)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황금기를 목표를 잃고 살아왔읍니다.
이젠 경제력도 있고 가족의 울타리도 있는데
정작 체력과 나이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합니다.
세상은 부패하고 부정한 규칙을 지키지 않으면 소외되고 피해받는데
늙고 비겁해진 지혜의 한계를 넘지 못하고 저 한 귀퉁이에
변명아닌 변명의 웅얼거림으로 자위합니다.
내 인생은 내것이 아니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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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17 11:3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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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아연 (210.XXX.XXX.217)
외람된 말씀이지만 누구에게나 아직도 시간이 남아있지 않은가요?... 생명이 있는 한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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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18 13:4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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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우 (121.XXX.XXX.50)
울타리, 난간 익숙한 곳이기도 합니다. 인간의 기본 욕구 중에 안전을 추구하는 속성이 있지요. 익숙한 곳이 안전하고 익숙한 길이 안전한 길입니다. 가족을 생각하며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하며 안전한 길을 택해야 했을지도 모릅니다.

창조는 자유에서 나올 수 있지요. 그래야 도약과 발전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나이가 들어 모두 둥지를 떠난 후에야 그런 기회를 가져볼 수 있다니!!
젊음의 열정과 패기만 곁들일 수 있다면 이보다 좋을 수는 없을 텐데 말입니다. 조금 모자랄지는 모르지만 열정 하나만은 지녀볼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혼자 중얼거려봅니다. '내 나이가 어때서?'

젊어서 만드나 늙어서 만드나 길은 길이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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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17 10:2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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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아연 (210.XXX.XXX.217)
맞습니다. 어떤 길이든 죽는 날까지 어차피 가야 한다면 재미있고 흥미로운 길을 택하겠습니다, 저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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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18 13:4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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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우 (121.XXX.XXX.50)
공감, 동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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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19 10:3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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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관우 (110.XXX.XXX.106)
삶에도 급이 있는 것같습니다.
말그대로 높은 곳만 바라보고 살다보면, 한쪽밖에 얻지 못한다는 것.
맛에도 맵고, 시고, 짜고, 달고 등 여러 맛이 있듯이, 삶의 질에도 다양한 맛이 있습니다.
경험해보지 않고는 다른 쪽을 논하기는 어렵지요.
창의적인 생각이란, 어린아이의 호기심어린 마음으로 나이들 때까지 추구할 경우
그곳이 미지일 때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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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17 07: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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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아연 (210.XXX.XXX.217)
이제 우리에게 다양한 길이 열려있습니다. 다양한 맛을 볼 수 있는 길이요, 용기를 내어 가봐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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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18 13:4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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