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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작 대필이 필요한 것은
임철순 2016년 07월 01일 (금) 00:01:41

손글씨 이력서. 자기소개서. 제출서류. 편지 등...대필합니다.
☆노트필기(페이지 기준)- 천원, ☆편지는 1통(2장 기준) -5천원, -1장 추가시 2천원. ☆이력서 1부(2장 내외)- 6천원, ☆자기소개서(한 장당)-3천원. 편지 용지비, 우편료 불포함 가격입니다. 원하시는 부분은 충분히 고려해 써드립니다. 궁금하신 점은 있으시면 문자 주세요.

 
인터넷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대필영업 광고입니다. 읽어 보니 역시 이력서와 자기소개서 대필이 가장 비싸네요. 이력서보다는 자기소개서, 이른바 자소서 쓰기가 훨씬 더 어려울 법한데 어떤 기준으로 이렇게 대필료를 책정한 건지 잘 모르겠습니다.
 
어떤 젊은이가 올린 글을 보면 대필업체가 꽤 많은 모양입니다. “내가 원하는 공기업 공채가 떴는데 다른 스펙은 다 괜찮지만 자소서가 너무 약하다, 그래서 대필을 맡기려고 검색해 보니 업체가 너무 많아 선택하기 어렵더라, 이왕이면 실력 좋은 곳에 맡기고 싶은데 어디가 괜찮은지 추천 좀...” 이런 내용입니다.
 
글이라면 어떤 것이든 당연히 자기가 자기 이름으로 쓰는 거라는 생각만 하고 살아온 사람들에게는 참 낯설고 이상한 풍경입니다. 그런데 요즘은 이력서 자소서 외에 카톡 글까지 대필한다니 놀랍고 어이가 없습니다. 긴 글을 써본 경험이 없고 이모티콘에 의지하거나 짧은 감정 표현에 익숙하고 맞춤법 띄어쓰기에 자신이 없다 보니 점점 글 쓰는 게 어려워지고, 그러다 보니 대필에 의지하게 되는 젊은이들이 많습니다.
 
우리 학교교육은 답이 정해진 글을 요구할 뿐 사고가 필요한 글을 길게 써보도록 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런 교육과 풍토에 젖어 자라온 세대의 고민과 고충을 알만 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이해를 하면서도 잘 납득이 안 됩니다. 남의 글을 출처도 밝히지 않은 채 인용하거나 통째로 따다 붙이는 데 익숙한 세대는 글쓰기를 어려워하면서도 정작 글 쓰는 것의 어려움을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글을 쓴다는 게 얼마나 엄정하고 어려운 일인지, 지적 창작물이 왜 존중해야 할 대상인지 잘 모르는 거지요.
 
원래 대필은 글자를 아예 모르거나 신체적 장애 때문에 글을 쓸 수 없는 사람을 도와주는 행위입니다. 까막눈인 어머니가 불러주는 말을 받아쓴 아들이나 병상의 아버지를 위해 편지를 대신 써준 딸, 이런 이야기는 대개 감동적입니다.
 
이와 달리 글쓰기에 익숙하지 않거나 바빠서 글 쓸 여유가 없는 유명 인사들의 글을 직업적으로 고쳐주거나 써주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수많은 정치인 기업인 연예인들의 회고록이나 자서전, 에세이가 이런 대필작가들의 손을 거쳐 나오고 있습니다. 대필작가를 영어로 ghostwriter라고 하는데 ghost는 유령이라는 뜻이니 자기를 내세우거나 드러내면 안 됩니다. 그렇게 책을 내는 일도 아닌데 남에게 대필을 의뢰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니 우리 사회는 유령이 떠도는 세상이 돼가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옆도 앞도 안 보는 스마트폰 세상이 돼갈수록 유령은 더 많아질 것입니다. 그런데 어릴 때 스마트폰을 사용하기 시작했거나 스마트폰 의존도가 높은 학생일수록 국어 성적이 낮다고 합니다. 홍세희 고려대 교육학과 교수 연구팀이 지난해 서울의 중3 학생 4,672명을 대상으로 국어 과목의 학업 성취도를 분석한 결과, 중학교에 입학하기 전 스마트폰을 사용하기 시작한 2,293명의 국어 성취도는 35점 만점에 16.30점이었습니다. 중학교 입학 이후 스마트폰을 사용한 학생들의 17.17점보다 낮고 전체 평균 점수(16.60점)보다 낮은 수준입니다.
 
스마트폰이 없으면 불안해하거나 스마트폰 메신저 대화를 직접 대화보다 편안하게 느끼는 ‘스마트폰 의존’ 학생 366명의 국어 성취도는 15.67점으로 더 낮았습니다. 이런 학생들은 줄임말 등 언어 파괴를 자주 하고, 짧은 글을 읽고 쓰는 데만 익숙하기 때문에 성취도가 특히 낮다고 합니다. 그런 학생들이 늘어날수록 대필 수요도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대필 이야기를 하다 보니 정작 대필이 필요한 게 어떤 것인지 생각하게 됩니다. 정치 경제 등 각 부문 지도자들의 언설이나 메시지야말로 적확하고 적정한 표현과 언어구사를 위해 대필을 잘 해야 합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해 8·15 경축사에서 “정부는 우리 국민의 안위를 위협하는 북한의 어떠한 도발에도 단호히 대응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안위’는 한자로 安危, 편안함과 위태함의 준말입니다. 연설문대로라면 북한은 ‘국민의 편안함과 위태로움을 위협하는’ 도발을 하고 있습니다. 말이 됩니까?
 
이명박 전 대통령은 ‘토지’의 작가 박경리씨가 타계했을 때 빈소를 찾아가 ‘이 나라 강산을 사랑하시는 문학의 큰별께서 고히 잠드소서’라고 방명록에 썼습니다. 맞춤법도 틀리고 문장도 제대로 돼 있지 않습니다. 가기 전에 누군가에게 대필을 시켜 문장을 구상하고 빈소에 가서는 그걸 자기 손으로 쓰는 정도의 성의는 있어야지요.
 
대필사회의 부작용과 문제점을 덜려면 우리 교육이 달라져야 하고 글을 쓸 때 각자 더 노력해야 합니다. 그러나 오늘 강조하고 싶은 것은 대필이 필요한 것과 그러면 안 되는 것의 차이와 구별을 알아야 한다는 점입니다. 사회를 이끌어가는 사람들에게 대필이란 널리 지혜를 모으고 국민의 감정과 정서를 반영함으로써 바람직하고 옳은 방향을 제시하는 정치행위의 한 가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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ㅋㅋㅋ (125.XXX.XXX.177)
가짜가 대통령한지 9년 째인데
그깟 대필이 문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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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7-01 21:38:40
0 0
임철순 (220.XXX.XXX.48)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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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7-02 05:48:25
0 0
송권호 (121.XXX.XXX.86)
그래도 대필을 구하는 사람들은 글쓰기가 어렵고 글을 쓴다는 능력을 인정하는 사람으로 적절하게 지도만 받으면 글쓰는 능력을 키울 수 있는 분들이라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글쓰는 능력'을 '능력'으로 인정하지 않는 분들입니다. 갑질에 익숙한 사람들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입니다. 그 분들은 자신의 부하나 직원에게 지시만 하고 야단만 치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고 보는 습관을 갖고 있습니다. 이런 분들은 글쓰기 능력의 향상을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글쓰는 능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세상에 모든 것이 다 그러하듯이 자신만의 고민과 진지한 성찰, 시간과 노력이 투입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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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7-01 18:43:55
0 0
임철순 (220.XXX.XXX.48)
맞는 말씀입니다. 방문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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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7-02 05:48:50
0 0
꼰남 (112.XXX.XXX.25)
ㅎㅎㅎ
필자님의 지적대로라면
대필의 안위를 구분할 줄 모르는 그게 문제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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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7-01 09:51:28
0 0
임철순 (121.XXX.XXX.123)
알고 보니 다른 연설에서도 그 말을 그렇게 썼더군요. 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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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7-01 14:03:49
0 0
한 팡세 (118.XXX.XXX.250)
말을 잘한다고 지식이 풍부한 것은 아니고, 지식이 풍부하다고 해서 글도 잘 쓴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주필님의 글을 읽고 나니까 몇몇 얼굴이 떠 오릅니다. 스스로는 세상을 멋지게 산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지만, 어떤 점이 멋진 것인지는 모르시는 분들은 지금도 대필을 원하고 있겠죠.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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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7-01 07:10:36
0 0
임철순 (121.XXX.XXX.123)
내가 저자로 돼 있지만 대필한 거라고 밝히면 오히려 나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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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7-01 14:01:47
0 0
가곡 (213.XXX.XXX.92)
安慰를 위협한다고 쓴 것이 아닐까요? 나라의 安危를 걱정한다고 써야 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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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7-01 03:58:51
0 0
임철순 (121.XXX.XXX.123)
이 安慰는 정서적이고 주관적인 단어인데, 그 뜻으로 말했을 리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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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7-01 13:58:07
0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