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삼 전 대통령(이하 YS)이 22일 서거함으로써 2009년 서거한 김대중 전 대통령(이하 DJ)과 함께 양김은 모두 역사의 인물이 됐습니다. 평생을 민주화운동의 동지로, 정권 쟁취의 라이벌로 어울리고 등 돌리고 했던 두 사람은 이제 하늘에서 영원한 재회를 하고 있습니다.
 
 YS는 6년 전 DJ를 문병하고 나올 때 “이제 화해한 것으로 봐도 되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그렇게 봐도 좋다. 그럴 때가 됐다”고 말했습니다. 당시 YS는 “(DJ는) 나하고 가장 오랜 경쟁관계이자 협력관계”라며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특수관계”라는 말도 했습니다. 그의 말처럼 두 사람은 험난한 길을 걸어오면서 협력과 경쟁을 통해 민주화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던 YS의 명언대로 새벽은 결국 왔습니다.
 
 1970년대에 ‘40대 기수론’을 내세워 대통령의 꿈을 펼쳤던 YS는 통일민주당 총재이던 1990년 1월 민주정의당 신민주공화당과의 3당합당을 거쳐 1992년에 DJ보다 먼저 대통령이 됐습니다. ‘군정종식(軍政終熄)’은 1987년 대선 때도 외치던 구호였지만 그때는 양김의 분열로 노태우 후보가 당선됐습니다. 드디어 대통령이 된 YS는 ‘문민정부’라는 이름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업적은 많습니다. 금융실명제, 공직자윤리법과 공직자 재산공개제도를 도입하고, 육사 출신 엘리트 장교들의 모임 하나회를 척결하는 한편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을 수사해 전직 대통령 두 명을 동시에 구속하는 조치를 취했습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과 ‘세계화’ 추진, 군 평시작전통제권 회수, 최초 남북정상회담 합의와 추진도 그가 한 일입니다. 총독부 청사를 해체해 경복궁을 복원한 것은 과단성이 있는 그가 아니면 하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업적에도 불구하고 친인척 비리가 심했고, 한보철강 부도와 금융위기로 인한 국가 부도사태로 IMF 구제금융을 받아야 했습니다. 하늘을 찌를 듯했던 임기 초반의 인기와 지지는 후반의 여러 악재로 인해 씻은 듯 사라졌습니다. DJ의 호남지역을 포위한 ‘3당합당’이나 지역감정 조장, 상도동으로 대변되는 ‘가신정치’는 그의 나쁜 유산입니다.
 
 게다가 성수대교 붕괴(1994년 10월 21일), 삼풍백화점 붕괴(1995년 6월 29일)와 같은 온갖 대형 사고가 잇따라 “살이 끼었다”는 말이 나돌 정도였습니다. 총독부 청사를 해체한 것은 그렇다 쳐도 1979년 박정희 대통령이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에 의해 피격 사망한 궁정동 10·26 현장도 헐어 없앤 단순성 저돌성과 결기가 그런 사고를 부른 것이라고 말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는 머리는 빌릴 수 있지만 건강은 빌릴 수 없다며 평생 조깅을 했습니다. 정치적 육감은 그 건강만큼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였으나 대통령으로서 아는 게 너무 없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IMF도 뭐가 뭔지 잘 모르는 것 같았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한 언론계 선배는 그의 취임 초기에 청와대 오찬에 다녀와서 YS의 발언 중 의미가 있는 것은 “칼국수에 밥 말아 먹으면 맛있습니다” 이 한마디밖에 없더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어쨌든 YS는 인간적이고 친근한 매력이 있었고, 그를 소재로 한 ‘사오정식’ 우스갯소리가 취임 초기부터 널리 퍼졌습니다. 클린턴 미 대통령 방한 당시 영어를 잘 못하는 YS가 “하우 아 유?”라고 인사하라는 비서진의 말을 잘못 기억해 “후 아 유?”라고 했다는 게 그런 것들입니다. 일본 언론인들과 만났을 때 이 우스개를 소개했더니 자기네 모리 요시로(森喜朗) 전 총리도 그랬다고 해서 “한일 언론사 공동주최 ‘김영삼-모리 개그 대토론’을 한번 하자”는 말을 하며 웃은 일이 있습니다.
 
 대선 유세를 하면서 ‘아름다운 지하자원’이라고 하고, 충남 대천-보령을 보천-대령이라고 바꿔 말하는 식의 실수도 재미있었습니다. ‘관광’ 발음이 안 돼 ‘강간’이라 하고 ‘확실히’를 ‘학실히’, ‘위대한’을 '이대한’이라고 하고 ‘될 수 있도록’을 ‘될 수 있뚜룩’이라고 하는 것은 YS의 독특한 발음법이었습니다.
 
 1960년에 민주당 대통령 후보였던 조병옥(趙炳玉·1894~1960)은 라디오에 출연했을 때 復興을 복흥이라고 읽었습니다. 아나운서가 부흥이라고 하자 “내가 복흥이라면 복흥인 거야”라고 했다고 합니다. YS의 경우도 그처럼 오류에 신경 쓰지 않는 점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그는 1955년 민주당 창당발기인 33인에 함께 포함된 신익희(申翼熙·1894~1956), 조병옥 선생 등으로부터 정치를 배운 인물입니다.
 
 내가 YS에 대해 가장 아쉽게 생각하는 것은 퇴임 후의 가벼운 언행입니다. 국가 원로로서의 체통과 전직 대통령으로서의 품위를 지키기는커녕 DJ의 면전에서 독재정권이라고 비난하고, 그의 노벨평화상 수상을 폄훼하고, 차남 현철 씨의 복권과 정치 입문을 위해 만년까지 여기저기 비루한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늙을수록 더 아름다워지는 사람이 있는데, YS는 유감스럽게도 그러지 못하고 정반대였습니다.
 
 DJ의 국장이 끝난 직후인 2009년 8월 25일, 나는 자유칼럼에 ‘김영삼 전 대통령님께’라는 글을 써 위와 비슷한 지적을 이미 한 바 있습니다. DJ가 의외로 죽음에 대비한 게 없는 점에 놀라면서, 멋지고 존경받는 마지막 삶을 잘 설계하고 실천하기를 바란다, 정말 거북한 말이지만 쓰지 않았다면 지금부터라도 유서를 써 놓으라고 했습니다.
 
 그 글의 마지막 대목을 인용하겠습니다. “국민들에게 좋은 본보기를 만들어 주시기 바랍니다. 국가원수의 죽음은 사회발전에 기여하는 공공재산이 될 수 있어야 합니다. 아직도 DJ를 이기려는 마음이 있다 해도 이것이 그를 진정으로, 최종적으로 이기는 방법입니다.”
 
 YS의 발인은 26일이라는데, 국장이냐 국민장이냐 하는 다툼과 논란은 다행히도 필요 없게 됐습니다. 정부가 지난해 11월부터 시행되고 있는 ‘국가장법’에 따라 국가장으로 장례를 치르기로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장례방식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가 남긴 메시지가 있는지, 있다면 내용이 무엇인지, 통합 화합이라는 붓글씨를 썼다는데 그게 다인지, 그동안 어떻게 죽음을 준비해왔는지 그런 걸 정확히 알고 싶습니다. 그의 죽음이 국가와 사회에 기여하는 마지막 계기가 되기를 바라면서 영면을 기원합니다.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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