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법권은 국회에 속합니다(헌법 제40조). 그렇죠? 2015년 11월 6일 기준으로 19대 국회에 제출된 법안의 일련번호가 17,640번입니다. 19대에 들어와 42달이 지났으니 달마다 줄잡아 420건, 상임위가 15개이니 한 상임위원회에 평균 1,100여 건입니다. 앞으로도 계속 법안이 제출될 것이니 상임위가 다루어야 할 법안 수는 더욱 많아질 것입니다.
해당 법안에 관련된 사람이나 단체, 기업은 법안이 어떻게 언제 처리될 것인지 마음을 졸이며 기다립니다. 국회의 법률심의 과정을 지켜보면 한 해를 통틀어 법안을 심의할 수 있는 날짜가 정말 몇 날 되지 않습니다. 각 상임위의 법률심사소위원회는 정기 국회나 임시국회 기간에 2~3일이 열리니 한 해 내내 다 꼽아도 20일 안쪽일 것 같습니다. 상임위마다 심의해야 할 법안이 수백 개씩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니 심의안건에 올라가기조차 어렵습니다. 어쩌다 어렵사리 심의안건에 올라도 심의된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돌발 상황 때문에 심의 일정이 취소될 수도 있습니다.
변리사법 개정안(변호사에게 자동으로 주는 변리사 자격을 폐지하는 것)은 6월 29일 심의하도록 일정이 잡혀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6월 25일 대통령이 개정 국회법에 거부권을 행사했고, 이에 야당은 ‘국회 일정 전면 거부’를 선언했습니다. 심의 일정이 취소됐습니다. 심의를 애타게 기다리던 우리는 참 허탈했습니다. 다음주 7월 1일에는 일본 변리사회 행사에 참석하기로 약속돼 있었습니다. 당장 심의일정이 재개될 것 같지 않으니 일본에서 열리는 초청행사에 참석하는 것은 별 문제 없을 거라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비난 여론 탓이었는지 6월 30일 다시 국회 일정을 재개할 것이라 했습니다. 이어 7월 1일 심의 회의가 갑자기 잡힙니다. 더구나 이날 관련 단체장이 국회에 출석하라 했습니다. 참 난감했습니다. 어쩔 수 없이 일본 출발을 밤늦게 늦추었습니다. 행사에 참석하지 못하게 돼 일본 변리사회에 사정을 설명하고 양해를 구했습니다. 지식재산 5대국 단체장을 초청했고 가기로 약속했는데 결례였습니다. 일본 회장은 “국회 일정이니 이해한다.”고 말했다지만 낯 뜨거웠습니다.
지난 11월 첫째 주에는 국회 본회의 일정이 있었습니다. 법원조직법과 민사소송법 개정안(특허침해소송을 특허법에서 집중하여 처리하는 법)이 국회 본회의에서 다뤄질 것으로 예상하였습니다. 그런데 정부가 국정교과서 행정고시를 예고기간을 줄여가면서 앞당겨 확정 발표했습니다. 야당이 이에 반발하여 꺼내 든 수단이 ‘국회 일정 거부’입니다. 지난주 예정됐던 국회 본회의는 열리지 못했습니다. 해당 법안도 처리되지 못했습니다.
걸핏하면 ‘국회 일정 거부’를 저항 수단으로 쓰는 게 옳은가요? 법안은 국민의 생활, 기업의 활동에 영향을 줍니다. 모든 법안이 상대방을 곤란하게 하는 것이 아닐 텐데, 모든 일정을 거부하는 것이 반발 수단이 되는 것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상대가 통과시키려고 애를 쓰는 법안을 골라 그 법 심의를 거부하는 게 더 효과가 있겠습니다. 전면 거부라는 칼을 빼 드는 순간에 피해를 보는 국민이 참 많습니다. 국회가 입법 기관이라면 입법 기능을 흔드는 일은 되도록 줄여야 합니다.
다음은 각 상임위의 법률심사소위원회 의결 방법을 짚어보죠. 어떤 법안이든 심사에 참여하는 의원 모두가 찬성하기 어렵습니다. 대부분 의원이 찬성하는데, 한두 의원이 반대한다고 ‘전원합의’라는 관행을 들어 의결하지 않습니다. 다수결 원칙을 존중하는 게 민주주의입니다. 그러지 않으면 힘이 센 어느 집단의 소수 목소리 때문에 제도를 개선할 수 없습니다. 또 특정 집단과 얽혀 있는 의원은 특정 집단과 관련된 법안 심의에 참여하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변리사법 개정안 심의에 변호사 출신 의원은 빠져야 합니다. 그리고 찬반이 엇갈릴 때에는 표결하여 다수결로 처리해야 합니다. 소송이나 민간 심의에서는 제척이나 기피제도가 자연스러운데, 법안 심의에는 없습니다.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민간 경제활동에서 처리할 일이 많으면 어떻게 합니까? 처리 인원을 늘립니다. 처리 시간을 늘립니다. 시한 안에 처리해야 다음 활동에 지장이 없습니다. 불필요한 비용이 생기지 않습니다.
그런데 국회는 어떻습니까? 처리인원을 늘리지 못한다면 심의 시간을 더 잡아야 합니다. 심의 시간이 모자라면 날짜를 더 잡고, 밤샘해서라도 심의해야 합니다. 법안이 처리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는 기업이나 시민을 생각하면 이 정도는 해야 합니다. 국민에 대한 가장 기본 자세입니다.
19대 국회가 끝날 날이 머지 않았습니다. 이번에도 회기가 끝나 자동으로 폐기되는 법안이 얼마나 많이 생길지 궁금합니다. 법안 하나에 들어가는 노력과 비용이 얼마입니까? 심의하지도 않고 폐기하는 법안을 볼 때마다 가슴이 쓰라려야 합니다. 국회가 '국가이익을 우선하여 양심에 따라 직무를 행한다.'는 헌법의 명령, 알고 있나요!?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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