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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오파트라의 남자들(2) -마르쿠스 안토니우스
방석순 2007년 10월 18일 (목) 09:57:00

사랑의 밧줄로 꽁꽁 묶어놓았던 최고의 ‘백’ 카이사르가 피살되자 클레오파트라는 허둥지둥 알렉산드리아로 도망쳐야 했습니다. 로마의 대혼란이 이 ‘이방의 요녀 탓’이라고 믿은 로마 군중들의 노호가 거셌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클레오파트라는 이집트에서 자신의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카이사르에게도 로마 왕위에 오르도록 부추겼던 것입니다.

혼란이 진정된 로마에서는 카이사르의 후계자로 지명된 카이사르 여동생의 손자 옥타비아누스와 카이사르의 옛 부하 안토니우스, 레피두스에 의해 두 번째 삼두정치가 시작됐습니다. 아프리카와 중근동을 맡은 안토니우스는 통치지역을 순방하면서 이집트의 클레오파트라를 호출합니다. 카이사르 피살 직후 그녀가 반란군을 후원한 혐의에 대해 법정에 불러다 놓고 물을 작정이었습니다.

그러나 여왕을 실은 이집트 왕실의 초호화판 선박이 나타나면서 사정은 180도로 바뀝니다. 클레오파트라가 영장을 들고 법정에 출석하기는커녕 안토니우스가 초대장을 받아들고 여왕의 배에 오르게 된 것입니다. 뱃머리와 꼬리에 금박 은박을 입히고, 은색 노를 저어 항구에 도착한 여왕의 배에서는 은은한 하프 소리와 향기로운 연기가 흩날리고 있었습니다. 여왕은 요정 같은 시녀들 가운데에 마치 아프로디테 여신처럼 비스듬히 누워 전쟁에만 골몰해온 거친 사내를 포근히 맞아들였습니다.

그날 밤 여왕은 안토니우스로부터 지중해의 키프로스섬과 페니키아(시리아 레바논 일대), 동방의 아라비아반도 통치권을 얻어냅니다. 옥타비아누스와 로마의 패권을 다투던 야심은 저 멀리 사라지고 여왕의 치마폭 속에서 흐물흐물해진 안토니우스는 여왕을 따라 알렉산드리아로 들어가고 맙니다.

이 대목에 대해서는 이견도 있습니다. 클레오파트라는 국내에서 정권의 안정을 굳하기 위해 로마군대의 지원이 필요했고, 안토니우스는 옥타비아누스와의 경쟁은 물론 동방의 패권을 굳히기 위해 이집트에서의 재원 염출이 필요했다는 것입니다. 1960년대 가장 널리 읽힌 로마통사 '로마인의 역사(A History of the Roman People)를 쓴 역사학자 프리츠 하이켈하임의 해석입니다.

어쨌거나 클레오파트라의 충동질에 넘어가-아니면, 그녀를 보다 확실하게 이용하기 위해- 안토니우스는 클레오파트라와 결혼합니다. 그리고 화평의 사절로 옥타비아누스가 시집보냈던 그의 누이 옥타비아를 로마로 돌려보냅니다. 로마와 옥타비아누스에게 절교장을 보낸 셈입니다. 한 술 더 떠서 카이사르와 클레오파트라 사이의 아들 카이사리온에게는 이집트 왕위 계승권을, 자신과 클레오파트라 사이의 딸들에게는 중동의 속주들을 나눠줍니다.

로마에 대한 안토니우스의 이같은 배신행위에 격분해서, 또 옥타비아누스의 선동에 휘말려서 로마는 결국 이집트에 선전포고하고 기원전 31년 9월 역사적인 악티움 해전을 벌입니다. 자신만만하게 응전했던 안토니우스는 옥타비아누스군의 눈부신 기동작전에 참패했습니다. 뒤늦게 화의를 구했지만 카이사르의 젊은 후계자는 냉정하게 거절했습니다.

30년 8월 1일 마침내 알렉산드리아 성문이 부숴지고 여왕이 죽었다는 소문이 돌았습니다. 실의에 빠진 안토니우스는 단검으로 자결을 시도합니다. 뒤늦게 달려온 연인 앞에서 한때 로마의 가장 촉망받던 실력자 안토니우스는 숨을 거둡니다. 여왕이 옥타비아누스와 흥정하기 위해 안토니우스를 살해했다는 설도 있지만 그다지 미덥지는 않은 이야기입니다.

여왕은 안토니우스의 시신을 수습하고 옥타비아누스와의 회견을 요청합니다. 어느덧 서른아홉 살이 된 그녀는 로마의 새 권력자와의 대면을 위해 마지막 몸단장을 하고 나섰습니다. 그러나 서른세 살의 이 냉혈한은 그녀를 로마로 개선하는 전차에 태워 시민들 앞에서 처형할 것이라고 선언합니다.

여자로서, 여왕으로서 모든 자존심을 잃은 클레오파트라는 먼저 간 연인 안토니우스의 무덤에 누워 바구니에 든 독사를 꺼내 가슴 위에 올려놓았다고 합니다. 관능과 성으로 원하는 모든 것을 얻으려던 여인답게 자신의 최후를 극적으로 마감한 것입니다.

물론 클레오파트라의 사인이 역사적인 기록으로 확인된 것은 아닙니다. 그녀보다 100 여년 늦게 그리스에서 태어난 저술가 플루타르코스는 그녀의 에로틱하고도 신비로운 죽음에 대해 이런 기록을 남겼습니다- “무화과 바구니를 든 농부가 여왕을 방문한 직후 갑작스럽게 죽었다.” 그러나 오늘날까지도 많은 화가들이 아름다운 여인과 독사가 기이하게 어우러진 사디즘의 한 장면으로 그녀의 죽음을 화폭에 그려내고 있습니다.

클레오파트라 7세를 보는 시각에 이집트와 로마 사이에는 적잖은 차이가 있습니다. 이집트를 연구하는 사람들은 여왕이 왕조의 가장 어려웠던 시기에 탁월한 외교력으로 로마를 이용하고 한편 견제하며 나라를 지키려 했다고 풀이합니다. 그녀의 매력과 재능에 대해서는 플루타르코스도 “목소리는 현악기처럼 달콤하고 주변 어느 족속의 것이든 모르는 언어가 없었다”고 찬사를 아끼지 않습니다.

세기의 여인 클레오파트라와 최고의 문명을 자랑하던 이집트왕국은 그렇게 사라지고 북부 아프리카에는 로마의 기름진 속주만 남게 되었습니다. 옥타비아누스는 이 변란에 종지부를 찍은 공로로 ‘임페라토르’, ‘아우구스투스’라는 칭호를 받습니다. 공화정을 지키려던 자들의 기도가 오히려 제정의 길을 열어놓게 된 것입니다.

‘신정아 파문’에서 클레오파트라의 연상은 지나친 비약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신정아 씨 측이 “변양균 정도의 백은 수도 없이 많다”고 말했다지만 ‘신정아 정도의 스캔들’이야말로 우리 역사에서도 수없이 많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의 허황된 욕망을 이루려는 여인들의 집요함과 그 덫에 너무도 손쉽게 허물어지는 남성들의 어리석음과 만용이 주는 교훈은 동서고금에 다름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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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6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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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현우 (123.XXX.XXX.231)
항상 제게 아리송하던 부분이 시원히 뚤린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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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0-22 21:52:42
0 0
haeddulnal (168.XXX.XXX.66)
재미 있게 읽엇습니다.그런데 그러그러한 관계 속에서 인류사가 발전되고 이루어져 왔다는 것이 더 잼 있지요???아마도 영원히 풀지 못할,,아니 풀면 안되는 숙제일지도,,,,, 역사는 밤(?)에 이루어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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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0-22 12:06:46
0 0
hipark386 (211.XXX.XXX.231)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시사성때문에 신정아씨가 논해졌지만 신정아씨는 위 글에서 논할 가치조차 없는, 클레오파트라에 대한 내용만으로도 훌륭하고 감동적이고 교훈적인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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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0-21 00:19:53
0 0
방민준 (61.XXX.XXX.28)
정말 재미있게 감명 깊게 읽었습니다. 클레오파트라에 대한 상식을 재정립할 필요를 절감했습니다. 두 번에 걸쳐 쓰신 글은 웅장한 소설을 방불케 했습니다. 이참에 소설로 꾸며 보실 의향은 없으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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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0-20 20:16:24
0 0
김용섭 (59.XXX.XXX.145)
'신정아 정도의 스캔들'이야말로 우리 역사에서도 수 없이 많았을 것입니다.라는
부분에 동의할 수 없습니다.
조선조와 그 이전의 역사에 대해서는 보기나름이겠으나, 적어도 대한민국에서는 이토록 복합적이고 종횡무진의 스캔들은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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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0-20 12: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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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 (65.XXX.XXX.15)
역사의 진리를 말씀 하셨습니다.
그래서 남성은 여성보다 더 약하고 어리석은 이면이 있지 않나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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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0-18 11:33:24
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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