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은 사람에게 이로운 것을 갖다 주기도 하지만, 가끔 해를 끼치기도 합니다. 얼마 전 서울 시내 한 고등학교에 멧돼지가 나타나 수업을 받던 학생들이 놀라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진 적이 있습니다. 멧돼지의 도시 출현은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최근 멧돼지의 숫자가 늘어나면서 야생에 있어야 할 멧돼지가 자꾸 인가로 내려와 사람들과의 잦은 충돌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언제부턴가 이런 사고의 원인을 모두 동물 탓으로 돌리는 데 익숙해져 왔습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모두 인간들 탓인데도 말입니다. 개발이 동물들의 터전을 빼앗은 게 첫째 원인이고, 생태계 파괴로 인해 천적이 없어진 게 두 번째 원인입니다.

이것들 모두 우리가 저지른 것이 아닌가요? 이 원인의 치유 없이는 멧돼지의 극성은 날이 갈수록 더 심해지면 심해졌지 수그러들지 않을 것 같습니다. 어쩌면 ‘적과의 동침’이 불가피한 선택일지 모르겠습니다.

사실 동물들은 사람을 가장 무서워합니다. 맹수들도 사람을 무서워합니다. 맹수든 온순한 동물이든 동물들은 사람을 발견하면 먼저 피합니다. 그런데 피하는 행동은 거리에 따라 달라집니다. 이것을 동물행동학에서는 ‘도주거리’라고 합니다. 이 도주거리의 크기는 그 동물이 적을 얼마나 무서워하느냐 하는 데 따라 정도가 달라집니다.

어떤 특정한 동물의 도주거리 내로 특정한 적이 들어왔을 때, 그 동물이 도망간다는 것은 미리 알 수 있을 만큼 규칙적입니다. 그리고 그 적이 도주거리보다 훨씬 적은 어떤 거리 내로 들어온다면 그 동물이 도망가지 않고 이제는 적을 공격한다는 것도 단정할 수 있을 만큼 규칙적인 일입니다. 이 도망을 포기한 짧은 거리를 ‘위기거리’라고 합니다.

자연상태에서 적이 이 위기거리 내로 들어오는 일은 다음 두 가지 경우에만 발생합니다. 첫째는 인간을 포함한 우세한 적이 약한 동물을 습격했을 때, 다시 말하면 약한 동물이 모르는 사이에 극히 가까운 거리까지 적이 접근해 왔을 때입니다. 둘째는 그 동물이 막 다른 골목에 갇혀 도망갈 수 없을 때입니다.

멧돼지가 고등학교 건물로 돌진해 왔다면, 분명 무엇인가 놀라서 피신 중에, 다시 사람들을 만난 것입니다. 멧돼지는 사람들이 너무 무서워서 흥분하기 시작했습니다. 만일 이 도주거리에서 사람들이 뒤쫓아와 위기거리에 이르면 멧돼지는 완전 돌변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이르게 됩니다. 위기거리 내로 적이 들어감으로써 불러 일으키는 약한 동물의 공격은 그가 취할 수 있는 가장 위험한 공격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도주거리는 가끔 창살로 표현됩니다. 창살 속에 갇혀 있어 창살의 불가침성을 확신하고 있는 동물원 동물에게서 다음과 같은 위험한 반응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사람과 동물 사이에 창살이 있기 때문에 그 동물은 자기가 안전하다고 느낍니다. 즉 그의 도주거리가 침범 당하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창살 앞에 서 있는 사람과 다정한 사회적 관계를 맺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만일 사람이 창살 안으로 들어가게 되면 그 동물이 놀라서 도망치거나 공격해 오는 일이 발생합니다. 왜냐하면 창살이 제거된 상태에서는 도주거리가 침범 당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위기거리도 침범 당하기 때문입니다.

아! 나는 무분별한 개발로 동물들이 누려야 할 터가 사라지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더 이상 생태계 파괴가 없으면 좋겠습니다. 그렇지 못할 경우 우리는 그 어떤 대가도 감수해야 하니까요. 

박시룡 :경희대 생물학과 졸, 독일 본대학교 이학박사. 현재 한국교원대 교수ㆍ한국황새복원연구센터 소장. 대표 저서「동물행동학의 이해」, 「과부황새 이후」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