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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펙이 뭔지...
박상도 2014년 04월 15일 (화) 00:27:58
대학생 스펙 4종 세트라는 것이 있습니다. 취업을 위해 필수적으로 갖춰야 하는 4가지 스펙으로 학점, 어학연수, 교환학생, 어학점수를 말합니다. 그런데 이 스펙 4종 세트는 이미 옛말이 됐답니다. 스펙 4종 세트에 각종 공모전 입상과 동아리 경험, 그리고 학회 활동과 복수전공이 더해져 스펙 8종 세트를 갖춰야 한다는 얘기가 나옵니다. 그러면 스펙 8종 세트가 스펙의 완결판이냐? 그것도 아닙니다. 금융사 입사를 준비하는 대학생은 이밖에도 펀드투자, 증권투자, 파생상품투자 상담사 자격증 같은 소위 금융사 입사시험 자격증 3종 세트까지 갖춰야 한답니다.

상황이 이러니 남들 못지않은 스펙을 쌓기 위해서는 대학 4년이 모자랄 지경입니다. 선행학습과 경시대회, 봉사활동까지 해가며 눈코 뜰 새 없이 달려서 대학에 들어갔더니 또다시 학점과 어학점수, 그리고 각종 공모전 준비 등등으로 주변을 돌아볼 새도 없이 내몰리는 게 요즘 젊은이들의 모습입니다. 눈가리개가 씌워진 경주마처럼 앞만 보고 내달려야 간신히 남들과 비슷한 스펙을 갖출 수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앞만 보고 달리다 보니 자연히 생각의 깊이는 얕아집니다. 요즘 각 대학에서는 동아리를 구성해 여러 개의 공모전에 참가해서 입상의 확률을 높이는 추세라고 합니다. 동아리 회원들이 발표 담당자, 파워포인트 제작 담당자, 자료조사 담당자로 나뉘는 분업시스템을 갖추는 경우도 많다고 합니다. 쉽게 설명하자면 ‘만드는 사람 따로, 발표하는 사람 따로’라는 얘기입니다. 얼핏 보면 효율적인 시스템인데 공모전에서 멘토링을 해주는 사람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웃지 못할 상황까지 벌어진다고 합니다. 공모전에 출품한 작품에 대한 내용과 아이디어에 대해 조금만 깊이 들어가는 질문을 하면, “제가 작성한 게 아니라서 잘 모르겠는데요.”라는 대답을 하는 발표자가 적지 않다는 것입니다.

과정을 통한 성장보다는 결과에서 주어지는 열매만 생각하다 보니 생기는 부작용입니다. ‘가장 빠르고 가장 쉽게 결과물에 도달하는 것이 가장 좋은 것'이라는 생각이 정신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입니다. 아나운서 후배들의 방송을 모니터해 주면서 발성 연습을 해라, 발음 연습을 해라, 또는 연기력이 필요하다는 지적을 종종 하게 됩니다. 그러면 “그래서 연기 학원에 다니고 있어요.”, “노래 학원에 다니고 있어요.” 또는 “성우 학원에 다니고 있어요.”라는 얘기를 듣습니다. 이 역시 ‘가장 빠르고 가장 쉽게 목표에 도달하는 방법’이라 생각해서 그렇게 결정한 것일 겁니다. 배우고자 하는 열정은 높이 살 일이지만 뭔가 필요하면 곧바로 학원에 달려가는 모습을 보며 ‘저런 모습이 과연 정답일까?’라는 의구심을 갖습니다.

그래도 자신이 번 돈으로 학원에 다니며 자신의 가치를 높이는 일에 재투자를 하는 경우는 그나마 사정이 낫습니다. 취업용 스펙을 만들기 위한 돈은 거의 모두 부모의 주머니에서 나옵니다. 초,중,고등학교 학원비에 비싼 대학등록금에 이미 허리가 반쯤 휘어진 부모들이 취업을 위한 스펙을 만드는 데 또 돈을 투자해야 합니다. 어학연수나 교환학생을 다녀오기 위해서는 최소한 천만 원 단위의 돈이 필요합니다. 구직자 한 사람의 평균 어학시험 응시비용도 2011년 기준으로 38만 원이나 됐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런 스펙들이 과연 제 값을 하고 있을까요? 금융 3종 세트에는 한 해에 10만3,000명이 응시하고 있는데 올해 금융 기관에 신규 채용된 사람들 가운데 금융 3종 세트를 비롯한 민간 자격증을 보유한 비율은 3.2%에 그쳤다고 합니다. 불필요하게 너무 많은 시간과 비용을 금융 3종 세트 등의 자격증 취득에 낭비하고 있는 것입니다.

요즘 웬만한 공모전과 경시대회를 보면 정부부처나 산하기관의 후원으로 민간 단체가 주최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름도 낯설고 듣도 보도 못한 자격증과 경시대회와 공모전이 얼마나 많은지, 마치 온 나라가 시험 공화국이 되어 버린 것 같습니다. 쉽게 생각하면 이게 다 장사가 되니까 생겨나는 것 아니겠습니까? 입사 원서에 한 줄이라도 뭔가를 더 써야 할 것 같은 강박관념과 이러한 심리를 이용한 상술이 결합해서, 3종 세트, 4종 세트, 8종 세트 같은 말들을 만들어 낸 것은 아닌지 생각해 봐야 할 문제입니다.

필자가 멘토링을 해주는 대학생들에게 “스펙이란 무엇이냐?”하고 정의를 내리게 해 봤습니다. ‘나 자신을 알리기 위한 것’이라는 긍정적인 대답도 있었지만, ‘나를 다른 사람과 비슷하게 만드는 것’, ‘남이 하니까 하는 것’이라는 대답이 많았습니다. 또한 스펙의 부작용으로 ‘돈이 많이 든다’, ‘불안하게 만든다’, ‘필요 없는 것을 하게 만든다’, ‘경쟁을 부추긴다’는 이야기도 나왔습니다.

청년 실업 문제가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보니 남보다 조금 더 앞서가야 경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리고 다양한 스펙이 겉보기에 화려한 포장지 역할을 해주던 시절이 있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런데 말 그대로 포장지에 그친 스펙이 얼마나 많은지, 각종 시험의 점수와 실제 실력의 괴리는 얼마나 큰지, 알 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습니다. 필자가 유학했던 미국의 대학에는 해마다 토플 만점을 받은 중국 학생들이 유학을 오곤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친구들에게 에세이를 쓰게 했더니 토플 만점을 받은 학생의 실력이라고 생각하기엔 너무나 형편없었다는 것입니다. 알고 봤더니 수 년 동안의 토플 기출문제를 달달 외워서 시험을 본 덕에 만점을 받을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과정은 생략하고 결과만 좇은 셈입니다.

스펙은 영어 Specification의 약자로 주로 컴퓨터의 사양이나 자동차의 제원같이 기술적인 특성을 나타낼 때 쓰던 말이었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사람에게 이 스펙이라는 용어를 쓰기 시작했고 사람을 계량화해서 평가하기 시작했습니다. 명확하게 점수화할 수 있는 것들 즉, 어학성적, 학점, 출신대학, 공모전 입상 같은 것들로 그 사람의 능력을 평가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을 평가하는 데 계량화가 불가능한 요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인간성, 배려심, 꿈, 신뢰, 착한 마음 등등…

사람마다 살아 온 이야기가 다른데 스펙이라는 획일적 잣대로 평가를 한다는 것이 과연 완벽할 수 있을 까요? 그리고 남이 하니까 뒤처지지 않으려고 만들어 내는 스펙에 자신의 미래와 꿈을 실었을 리 만무합니다. 최근 대학생들과 대화를 나눈 신세계 정용진 부회장은 스펙 쌓기에 몰두하는 요즘 젊은이들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했다고 합니다. 신입사원 면접에 들어가 보면 화려한 스펙의 지원자들이 모두 앵무새처럼 모범답안만을 말한다는 것입니다.

남들과 대동소이한 스펙으로 인사담당자의 마음을 얻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내가 어디에 있고 어디를 바라보고 있으며, 가고자 하는 곳에 가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으며 그 과정에서 어떤 실패를 맛보았는지, 그리고 실패를 극복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 무엇보다 지원하는 기업을 위해 내가 어떤 기여를 할 수 있는지를 설명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먼저 마음을 열어야 상대도 내게 마음을 연다는 평범한 진리를 깨닫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은 앞만 보고 달려가며 스펙 쌓기에 골몰한 사람들에겐 너무나 부족한 소양들입니다.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 고은 시인의 이 시구가 요즘 회자되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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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K (14.XXX.XXX.111)
전쟁없이 60년 넘도록 평화시대를 살면서 고 학력자는 넘치고 취업문은 좁고 인간 인플레이로서 살기위한 몸부림으로 스펙을 요구하나 과연 실력으로 인정할 수 있을까요?
요즘 세상 돈으로 못하는 것 없는 상황에서 과연 얼마나 신뢰할 수 있는지...의아심도 증폭되나 현대 젊은이들에게 동정심을 느낍니다.이젠 젊은이들은 고국만 안주하지 말고 전 세계로 진출하는 패기가 필요하다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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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7-08 18:5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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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topco (117.XXX.XXX.92)
정말 심각한 문제입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답이 없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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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4-16 19:5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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