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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절; 위키피디아(Wikipedia)의 추억
박상도 2013년 03월 29일 (금) 03:52:57
나이 사십이 넘어서 공부를 하겠다고 낯선 미국 땅에 건너가서 대학원 과정을 시작한 첫 날이었습니다. 대학원생 지도교수인 빨간 머리의 낸시 새미 라이스트(Nancy Sami Reist)교수가 대학원 과정 전반에 관한 주의사항을 알려주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초.중.고등학교와 대학교를 졸업하고 요즘 학생들에겐 필수와도 같은 해외 어학연수니 미국인 영어 교습이니 하는 것들은 하나도 해본 적이 없이 방송사에 첫 직장을 얻어서 16년을 열심히 우리말로 방송을 한 아나운서에게 새미 교수의 강의는 말 그대로 딴 나라 말이었습니다. 학창시절에 방송사 시험 준비를 하면서 줄기차게 외웠던 ‘Vocabulary 33000’은 알아듣지 못하는 영어발음 덕에 완전히 무용지물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와중에도 그녀가 했던 요상한 단어는 귀에 쏙 들어왔습니다. 그녀는 그 요상한 단어를 틈날 때마다 들먹였는데 아무것도 알아들을 수 없던 제게 그 단어는 정말 중요한 단어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래 오늘 이 단어 하나만큼은 확실히 알아두자. 지금 저 빨간 머리 선생님이 벌써 스무 번쯤 이 단어를 언급했으니 정말로 중요한 단어일 거야’라고 생각하고 소리가 나는 대로 스펠링을 추측해서 영어사전을 뒤적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큰일났습니다. 사전에 그 단어가 나오지 않는 거였습니다. 제가 이 궁리 저 궁리를 해가면서 스펠링을 추측하며 연신 사전을 뒤적였는데 그 단어는 야속하게도 사전에서 찾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네 시간의 긴 강의가 끝나고 끝없는 절망감이 엄습해 올 때 버클리에서 학부과정을 마쳤다는 데이비드라는 친구가 제게 “Are you OK?”하고 물어오는 것이었습니다. 아마도 창백하게 변한 제 얼굴이 걱정스러웠나 봅니다. 저는 구세주를 만난 것처럼 기뻤습니다.

“아까 교수님이 어떤 단어를 계속 반복해서 강조하시던데 그 단어가 사전에 나오지 않네..”

“그 단어가 뭔데?”

“위키.. 뭐라고 했는데.”

“아, 위키피디아?”

“그래, 그거야. 위키피디아. 그런데 그게 뭐지?”

데이비드는 너무나 걱정스런 표정을 하며 친절하게 가르쳐주었습니다.

“위키피디아(Wikipedia)는 인터넷 백과사전 같은 거야. 집에 컴퓨터 있지? 내가 인터넷 주소를 써줄 테니 집에 가서 한번 확인해 봐.”

대학원 수업 첫날, 동기가 써준 wikipedia.org라는 메모지를 손에 쥐고 집으로 돌아오는 열차 안에서 얼마나 많은 생각을 했는지 모릅니다. ‘아, 내가 과연 졸업할 수 있을까?’, ‘그동안 배운 영어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었구나!’, ‘어떻게 강의를 한마디도 알아들을 수 없었던 걸까?’... 만 가지 생각이 가지에 가지를 치며 머리가 한없이 복잡해질 무렵이 되어서야 집에 도착했습니다. 밤에 잠자리에 누워서도 걱정은 계속되었습니다.

며칠 후 스탠포드 대학교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매건(Maegan)이라는 친구가 이렇게 걱정을 하고 있는 내 모습을 보면서 무심히 한마디를 던졌습니다.

“Hey, Sangdo. You came here to study!”

참으로 단순한 말이었는데 그 속에 정답이 있었습니다. 저는 공부하는 것이 두려웠던 겁니다. 그래서 공부할 생각은 안 하고 쉬운 길만 찾으려고 했던 것입니다. 공부를 하러 왔으니 공부를 하면 될 일이었습니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은 적당히 공부를 하고 학위를 받겠다고 마음을 먹을 때 생기는 것이라는 걸 그때 깨달았습니다.

하지만 낯선 미국에서 아무도 도와주는 사람이 없는 상태에서 시작하는 것은 정말 힘들었습니다. 미국 아이들은 반나절에 끝내는 에세이를 저는 사흘 동안 고쳐가며 써야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인터넷 수업이 있는 날은 영어 자판을 치는 것이 익숙하지 않은 제가 수업 중 한마디라도 거들려고 하면 이미 논쟁의 주제는 바뀌어 있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대부분의 유학생들은 이렇게 갖은 고초를 겪고 나서야 졸업식에서 ‘석사(Master of Arts)’또는 ‘박사(PhD)’학위를 받게 됩니다. 그냥 보기엔 달랑 종이 한 장인데 그 속에는 학문을 위한 인고의 세월이 녹아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간난신고(艱難辛苦) 없이, 학위가 주는 이득만을 취하려는 사람들이 우리 주위에 많았던 것 같습니다.

몇 해 전에는 학력 위조가 큰 이슈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논문 표절이 새롭게 이슈가 되고 있습니다. ‘오십보백보’라고 학력 위조나 논문 표절이나 누가 더랄 것도 없는 나쁜 짓입니다. 그런데 참으로 다양한 계층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표절을 하고 있었습니다. 정치를 하겠다고 나서는 사람들이나 굳이 학위가 필요 없어 보이는 연예인에 이르기까지 표절은 광범위하게 만연하고 있었습니다. 논문 네 개를 짜깁기했다는 사람은 그 네 개의 논문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답을 못했습니다. 표절이 아니라 대필을 했다는 얘깁니다.

공부의 즐거움은 과정 속에 있는데 결과만을 좇다 보니 벌어진 일들입니다. 공부를 하겠다는 사람이 학생이 되어야 되는데 학위를 받겠다는 사람이 학생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사회의 병폐가 이번 논문 표절 속에도 숨어 있었던 것입니다. 인류를 질병에서 해방시키고 환자를 돌보는 마음이 있는 학생이 의대를 가야 하는데 경제적으로 안정된 미래를 보장하기 때문에 의대를 갑니다. 국민을 섬기는 마음이 우선이어야 하는 공무원이 접대를 우선적으로 받고 있습니다. 염불은 뒷전이고 잿밥만 챙기는 꼴입니다. 물론 전부 다 이런 식이라면 이 나라는 이미 기둥이 뽑혔을 것입니다.

썩은 곳은 도려내야 하듯 이 기회에 표절 문제는 확실히 털고 가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대학의 자성도 필요합니다. 아울러 준엄한 심판으로 기본을 바로 세우는 일도 반드시 필요합니다. 표절이 발각되어 받는 처벌이 그로 인해 얻는 이익보다 작다면 또 다른 표절이 발생할 테니 말입니다.

대학원 수업 첫날 새미 교수가 위키피디아를 언급하면서 했던 얘기는 ‘원전(原典)을 찾아서 인용하라’와 ‘Copy and paste(카피 앤드 페이스트; 남의 글을 복사하는 것)는 용납 못한다’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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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1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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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내천 (183.XXX.XXX.130)
바야흐로 지금은 표절정국 같습니다
박선생님 말씀마따나 공부가 목적이 아니라 학위가 목적인 사람들이 지천에 깔려있는 것 같습니다
정치 하려는 사람들이야 명함을 채우려고 그런다쳐도 연에인들이, 스포츠맨들이,종교인들이,문학인들이 왜 박사학위가 필요할까요?
물론 그분들에게도 공부할 수 있는 권리와 자유가 있지만 자신이 몸담고 있는 분야에는 하등 필요한게 아닌데....
그것은 자신에 대한 존재감 부여가 동기일 수 있지만 그보다는 우리 사회가 학벌을 중시하는 폐습 때문일 것입니다!
자본주의사회에선 수요와 공급이 상존할 때 어떤 행위가 성립됩니다
표절이든 대필이든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학위를 따려는 수요가 있기에 거기에 상응하는 불건전한 공급이 횡행하는 것입니다!
함량 미달인 사람이 어떤 자리를 꾀차는 짓이나 자격 미달인 사람에게 자격증을 부여하는 행위는 동일한 범죄이기에 아니 나라와 자신에 대한 예의가 아니기 때문에 엄하게 다스려야 합니다!
요즘 박사들이 너무 흔해 가치절하 현상을 초래하고 있어 안타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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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4-01 02: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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