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사회디자인연구소라는 민간 싱크탱크를 이끌고 있는 김대호대표가 『진보와 보수를 넘어』라는 책을 냈습니다. 이 책은 한국사회가 안고 있는 여러 가지 병리현상을 분석하고 해결을 위한 대안을 제시하면서 21세기의 한국이 보수와 진보를 뛰어넘어 정의와 공평을 지향할 것을 제안하고 있습니다.

책은 「현재 경제활동 인구의 20%가 넘는 사람들이 실업상태에 있다」고 분석하면서 정부가 발표한 4%선 실업률의 허구성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정부가 지난해의 실업자를 887천 명으로 발표했지만 여기에는 취업준비(299천명), 진학준비(126천명), 군입대대기(56천명), 그냥 쉰 사람(1,277천명), 기타(276천명)등을 빼고 있으며 따라서 이들을 모두 합하고, 여기에 불완전 고용자를 더하면 실업자는 5,287천명으로 늘어나 경제인구의 20%에 이르게 된다는 것입니다. 

실업율 4%와 20%는 삼척동자에게 물어도 하늘과 땅의 차이라고 말할 것입니다. 이런 차이가 드러나는 까닭은 통계를 만드는 정부가 정부에 유리한 기준을 설정했기 때문입니다. 실업통계는 670명의 조사원이 전국 33,000가구, 15세 이상 남녀, 약 71,000명을 표본으로 작성됩니다. 통계는 매월 15일이 낀 1주일동안 1시간 이상 일한 사람을 취업자로 간주하고, 조사기간 중 ‘1시간도 일하지 않고’, ‘구직활동을 계속하며’, ‘즉시 취업 가능한 사람’을 실업자로 분류합니다.

1주일에 한 시간만 일해도 취업자가 되는 통계기준은 바꿔 말하면 1주일에 한 시간도 일하지 않은 사람만을 실업자로 간주한다는 얘기가 되며 이런 기준이 실업률 4%대의 마술로 나타납니다. 그 결과 실업자가 넘쳐나는 한국에서도 정작 실업자가 실업자로서 통계 잡히기도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6만 가구를 대상으로 ‘16세 이상의 국민’ 중 ‘4주 연속 직업을 찾고 있는 사람’을 실업자로 간주하는 미국의 통계방식과도 상당한 차이를 보입니다.

단순한 통계 하나만을 봐도 세상에는 좋은 정부와 나쁜 정부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한국 정부는 건국 이래로 나쁜 정부에 가까웠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습니다. 우리 정부는 몽매한 국민들을 자주 속이는가 하면, 또 국민에게 해로운 것을 앞장서서 권하는 좋지 않은 습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컨대 정부는 국민건강에 해로운 담배를 오랫동안 독점사업자로서 팔았으며 사행심을 부추기는 경마 경륜 복권 카지노 사업을 주도하고 있습니다. 나쁜 정부의 징후는 요즈음 문제가 되고 있는 세계에서 가장 비싼 기름 값과 이동통신요금 문제에서도 나타납니다.

최근 매스컴은 휘발유가격과 휴대전화 요금 문제를 제기한 바 있습니다. 노무현 정부는 집권초기부터 언론이 떠들어도 정부 정책을 바꾸지 않는 전통을 세웠는데 이 전통은 기름 값과 이동통신요금 문제에서도 그대로 지켜지고 있습니다. 그 바람에 멍이 드는 것은 서민들입니다. 통신사업자와 정유회사는 소수의 재벌들이 키우는 황금거위에 다름 아닙니다. 재벌들은 이 사업에서 과점사업자의 지위를 향유하고 있습니다.

국민들의 가계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상품에 관해서는 정부가 선량한 중재자 역할을 담당해야 합니다. 시장경제라는 것만 내세워서는 안 됩니다. 국민이 먼저 있고 시장이 생긴 것이지 시장을 위해 국민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비싼 기름과 통신요금으로 밝혀진 이상 정부는 행정수단을 동원해서 가격인하를 유도해야 합니다. 그것이 좋은 정부가 되는 길입니다.

가격을 낮추어도 이익이 줄어들 뿐, 그것 때문에 재벌이 망하지는 않습니다. 기름 값에 붙이는 세금을 줄인다고 정부가 거덜 나는 것도 아닙니다. 국민의 가계를 피폐케 하여 재벌을 살지게 만들고 세수확보에만 집착하는 정부 시책은 어느 모로 보나 잘못 되었습니다. 이런 국민들의 어려움은 외면한 채 대통령선거에만 정신이 쏠린 정당과 국회도 비난을 면키 어려울 것입니다. 국회만 똑똑해도 국민들이 세상에서 가장 비싼 기름 값과 통신요금을 물게 하지는 않을 것이니까요.

도대체 우리에게 정부란 무엇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