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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톤 슈낙을 찾아서 <2>
임철순 2012년 11월 29일 (목) 01:08:06
10월 31일에 쓴 글의 속편입니다. 독일 작가 안톤 슈낙(1892~1973)의 수필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Was traurig macht)의 번역 문제를 따지다가 접하게 된 주장의 요지는 다음 네 가지였습니다. 1)그는 1941년 에세이집 <젊은 날의 전설>(Jugendlegende)에 이 글을 처음 발표했다, 2)그 뒤 제 2차 세계대전 중인 1943년 재판을 찍을 때 전시상황과 맞지 않다고 판단한 듯 글을 삭제했다, 3)1946년 <로빈손의 낚시>(Die Angel des Robinson)를 낼 때 글을 재수록하면서 많이 고쳐 썼다, 4)이 글을 1948년에 처음 소개한 청천 김진섭(1903~?)의 번역은 원문과 다른 곳이 많아 글을 첨삭했다는 의심을 받았다, 하지만 그는 수정본이 있는 걸 모르는 채 첫 판을 번역했다.

   
  1941년 판 <젊은 날의 전설>.  
대체 어떻게 된 것일까? 1941년 초판본과 1946년 책을 역문과 3각 대조해보면 알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초판본 찾기에 나섰던 게 한 달도 더 전입니다. 하지만 확인 결과 <젊은 날의 전설>은 그 동안 알려진 것과 달리 1932년에 처음 나왔으며 문제의 1941년 판에는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이 들어 있지 않았습니다. 독일 국립도서관 목록에 1932년 판은 겨우 11쪽, 1939년 판과 1941년 판은 111쪽, 1943년 판은 106쪽으로 기록돼 있습니다. 11쪽짜리 책도 있을까 싶지만 기록으로는 그렇습니다. 1932년 판은 논외로 치고, 그 이후 나온 책이 내용상 변화가 없는데도 쪽수가 다른 것은 조판 방식과 사용 활자가 바뀌었기 때문이라고 판단됩니다.

칼럼을 통해 위의 네 가지 주장을 폈던 A씨에게 이런 추적 결과를 토대로 문의한 결과, 그는 자신의 주장이 착오인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독일에서 공부하고 온 친구의 형이 언젠가 그런 이야기를 해주어 사실로 믿었으며, 다른 근거는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안톤 슈낙의 글을 누구보다 더 사랑하고 독일 시를 줄줄 외우는 A씨는 번역문제를 제대로 알아내고 싶어 1943년 판을 구해서 보았지만 1941년 판을 확인하지는 못했다고 합니다.

   
  1946년 발간된 <로빈손의 낚시>와 그 책에 실린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  
그러면 그 글은 어디에 처음 발표된 것인가? 1946년에 출판된 <로빈손의 낚시>입니다.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은 146~149쪽에, 분위기가 아주 흡사한 ‘내가 사랑하는 소리, 음향, 음성들’이 150~155쪽에 실려 있습니다. 1941년 판으로 추정되는 책에는 ‘프랑켄에서 자라나다’를 필두로 14편의 에세이가 실려 있지만 그 글은 보이지 않습니다. 

이와 같은 사실을 확인한 것은 전적으로 재미동포 사업가 조규인이라는 분 덕분입니다. 1967년 경복고를 졸업한 조씨는 2009년 7월부터 고교 동기 친구들과 함께 동기회 홈페이지를 통해 이 글의 번역문제를 연구해왔습니다. 원문과 역문이 다른 이유 등을 맨 먼저 추적해온 그를 나에게 소개해준 것은 조씨의 친구인 정달호 유엔 국제훈련센터(UNITAR) 소장입니다. 조씨는 안톤 슈낙이 친필 서명해 다른 사람에게 준 책도 구해 가지고 있을 만큼 안톤 슈낙을 좋아하는 분입니다, 왜 원문과 역문이 그리 다른지를 푸는 것은 그를 비롯해 안톤 슈낙의 글을 좋아했던 경복고 친구들의 절박한 숙제였다고 합니다. 그와 나는 거의 한 달동안 새로 알아낸 것을 서로 알려주며 이 문제를 함께 연구했습니다. 아니, 실제로는 내가 일방적으로 도움을 받았습니다.

그가 구한 1941년 판으로 보이는 책에는 출판연도가 명기돼 있지 않습니다. 그런데 ‘Zur Erinnerung an dem letzten Schultag 28.III.42 von Deiner Steli’(마지막 학창시절을 기억하며. 1942년 3월 28일 너의 슈텔리가), 이렇게 학교를 졸업하며 친구에게 책 선물을 한 것으로 보이는 서명이 있습니다. 표지는 1941년과 1943년 판이 같습니다.

더 결정적인 사실은 2003년에 발행된 <안톤 슈낙 전집(전 2권)>의 서평을 쓴 독일 평론가 롤프-베른하르트 에씩(Rolf-Bernhard Essigㆍ49)이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은 1946년 <로빈손의 낚시>에 처음 발표됐다고 알려준 것입니다. 엘펜바인 출판사가 낸 전집의 제 2권 246~248쪽에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이 실려 있습니다. 조씨와 함께 이 문제를 천착해온 그의 친구가 에씩과 메일을 주고받으면서 확인한 사실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은 제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인 1946년 안톤 슈낙이 54세일 때 처음 발표한 글이며, 이를 개작한 사실은 없습니다. 50대의 감성으로 그런 글을 썼다는 게 약간 의외이긴 합니다. 그런데 청천은 1948년에 수필집 <생활인의 철학>을 낼 때 왜 원문과 다르게 어떤 대목은 빼고 어떤 대목은 본문에 있지도 않은 말을 넣은 것일까? 청천은 일본 유학을 마치고 1928년부터 성대(경성제대) 도서관에서 촉탁근무를 하는 동안 이 글을 접했을 것이라는 게 A씨의 추측입니다. 그러나 임의로 번역을 한 이유는 지금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1974년에 이 글을 다시 번역한 C씨의 책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에는 <젊은 날의 전설>(1941)과 <밤의 해후(Begegnungen am Abend)>(1940) 두 권의 책을 묶어서 냈다고 돼 있지만, C씨는 1941년 판을 보지 못했다고 합니다.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 등 두 편은 두 책 어디에도 나오지 않습니다.

더욱이 새로운 번역은 청천의 번역을 현대어로 바꾼 정도일 뿐 가감한 부분이 같습니다. 서로 다른 책에 들어 있는 글을 한 책에 실렸던 것처럼 모아 놓는 바람에 불과 20여 쪽 뒤에 거의 같은 문장이 다시 나오기도 합니다. 그가 어려서 자라난 프랑켄 마을의 밤에 들리는 갖가지 소리에 대해서 쓴 대목입니다. 번역을 하면서 그렇게 해놓은 것도 잘못이지만, 안톤 슈낙은 왜 똑같은 문장을 몇 년 후 다른 글에 또 써먹었을까? 간간이 드러나는 수학과 수학교사에 대한 라틴어학교 학생 안톤 슈낙의 적의와 비꼼은 내 정서에 딱 맞습니다. 그러나 이런 자기표절 식의 글쓰기는 그에 대한 실망을 더해주었습니다.

C씨의 번역서에는 “아이세여, 내 너를 사랑하노라…”가 “네 너를 사랑하노라…”라고 돼 있거나 피아노 운지법(運指法)을 雲脂法이라고 표기하는 등 거의 40년 동안 쌓인 오자와 비문(非文)이 참 많았습니다. 읽다가 도저히 참지 못하고 바로잡을 곳을 역자와 출판사에 알렸습니다. 출판사는 1970년대의 성숙하지 못한 번역 풍토, 제작방식의 변화로 인한 착오, 요즘 교열 종사자들의 역량문제 등이 겹친 일이라고 사과하며 지적을 고마워했습니다. 그리고 500부가 넘는 재고를 전부 폐기하고, 출처를 정확히 밝혀 책을 다시 번역해 내기로 했습니다. 출판사와 번역자 C씨가 쉽지 않은 결정을 용기 있게 내렸다고 생각합니다.

20여 년 동안 국어 교과서만을 모아왔고, 그렇게 모은 자료로 전시회도 연 바 있는 동단건축 대표 김운기 씨에 의하면‘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이 고 2 교과서에 처음 실린 것은 정부 수립 이후 최초인 제 1차 교육과정(1954~1963)에 따라 새 교과서가 쓰이기 시작한 1954년입니다. 그리고 제 4차 교육과정(1981~1987) 개정으로 1982년 교과서에서부터 빠졌습니다.

그런 명문을 교과서에서 빼다니 말이 되느냐고 분개하는 사람들이 지금도 많지만, 따져볼수록 청천의 번역은 아쉬움과 안타까움을 키워줍니다. 청천은 일본인이 번역해 놓은 것을 다시 한국어로 옮겼는지도 모릅니다. 그랬을 것 같습니다. 그분이 임의로 글을 가감했다고 생각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이 문제를 추적하면서 창작이든 번역이든 내 글이든 남의 글이든 함부로 다루면 안 된다는 점, 한번 쓴 글은 언제까지나 남는다는 점을 알게 됐고, 글 쓰는 일의 엄정함과 두려움을 새삼 절감했습니다. 이제 누구에게도 즐거움이 되지 않는 안톤 슈낙 찾기를 마무리하려 합니다. 조규인 씨를 비롯해서 안톤 슈낙의 글을 그토록 사랑하는 모든 분들께 경의를 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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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orkzz (178.XXX.XXX.32)
qjvlas Really informative blog.Really looking forward to read more. Really Gre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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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7-01 19:4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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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옥 (114.XXX.XXX.159)
삶이 키보드를 두드리면 뜨는 인스턴트 순간 같은 때에 오랜 옛 문헌을 집요하게 추적하고 정정하는 그 진지함에 경의를 표합니다.
스마트폰 카톡에 어제도 오늘도 함몰되어가는 메마른 나날 앞에 반성의 메세지로 다가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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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2-08 20:3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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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두환 (121.XXX.XXX.16)
잘 읽었습니다. 집요하고 철저한 탐구가 평소 간과한 부분에서 드러날 때 새삼 죄스러움까지 느껴지곤 합니다. 여러 가지 정황으로 보면, 추측이지만 "일본어 重譯"에서 비롯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오늘날 우리 독일문학이 한동안 '獨日문학'의 단계를 거쳐 발전된 것이 아닌가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좋은 도전에 많을 걸 느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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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2-02 07:0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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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달호 (211.XXX.XXX.129)
불의와 용렬을 미워하시는 뜻응 알겠읍니다. 몇몇 분들의 올곧지 않음이 있었다 하더라도 여전히 슈낙의 그 글은 우리의 마음 속에 남아 있을 것 입니다. 진실을 파헤쳐 밝혀 주신데 감사와 경의를 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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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1-29 14:0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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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길순 (211.XXX.XXX.129)
잘읽었습니다. 그 진지함과 냉철함 집요함에 놀랐습니다. 기왕 첨부파일쯤으로 '우리를 슬프게하는 것들'을 실었더면 더좋았을 거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감사합니다. 채길순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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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1-29 11: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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