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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톤 슈낙을 찾아서
임철순 2012년 10월 31일 (수) 00:51:40

10월이 다 갔습니다. 1년 열두 달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게 10월입니다. 갖가지 꽃이 피어나고 나무가 점차 연녹색으로 물들어 가는 4, 5월도 좋지만, 10월이 가장 아름답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가을의 수확과 풍요를 겨울의 조락 침잠과 더불어 생각할 수 있는 계절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 가을에 안톤 슈낙(1892~1973)의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을 새로 읽었습니다. 표기법에 따르면 안톤 슈나크가 맞지만, 하도 오랫동안 안톤 슈낙으로 써와서 그런지 이 표기를 고집하고 싶습니다. 어떤 사람이 “서점에서 ‘안톤 슈낙’으로 검색했더니 아무것도 안 나오더라, 안톤 슈나크가 바로 그 사람인 줄 몰랐다”고 불평한 글을 읽은 일이 있는데, 나도 그 이름은 전혀 다른 사람처럼 느껴집니다.

   
  안톤 슈낙  
이 글을 다시 읽게 된 계기는 마르코글방이라는 온라인 공동체에 올라온 글 때문이었습니다. 그 글이 다룬 것은 청천 김진섭(1903~?)의 번역에 관한 논란이었습니다. 일본 호세이(法政)대에서 독문학을 공부한 수필가ㆍ독문학자 청천은 백설부(白雪賦) 주부송(主婦頌)과 같은 명 수필을 쓴 분입니다. 그런데 그는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Was traurig macht)을 처음 소개하면서 어떤 대목은 빼고 어떤 것은 멋대로 집어넣은 게 아니냐는 의심을 받아왔습니다.

이에 대해 청천을 변호한 글의 요지는 1)안톤 슈낙은 1941년에 <Jugendlegende>(젊은 날의 전설)라는 에세이집을 통해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을 처음 발표했다, 2)그러나 1946년에 <Die Angel des Robinson>(로빈슨의 낚시)이라는 에세이집에 재수록하면서 글을 고치고 몇 가지를 뺐다, 3)청천은 처음 것을 번역했는데 지금은 수정본이 정본으로 통용되고 있다, 4)그래서 원문과 대조하면 역자가 멋대로 첨삭을 한 것처럼 보이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 청천은 수정본이 있다는 걸 몰랐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1946년의 글을 살펴보면 원문에는 있는데 역문에 없거나 역문에는 있는데 원문에는 없는 것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가을날 비는 처량히 내리고 사랑하는 이의 인적은 끊겨 거의 1주일 간이나 혼자 있게 될 때.’라는 대목에서 ‘그래서 가을날 비는 처량히 내리고’라는 말은 원문에 없습니다. ‘암울한 비 오는 밤’이라고 돼 있습니다. ‘날아가는 한 마리의 창로(蒼鷺).’, ‘횔더린의 시장(詩章) 아이헨도르프의 가곡.’, ‘바이올렛 색과 흑색과 회색의 빛깔들. 둔하게 울리는 종소리. 징소리. 바이올린의 G현.’이나 ‘유랑극단의 여배우들.’, 이런 것들도 원문에는 없습니다.

반면 아버지를 잠 못 들게 했던 여러 가지 잘못 중에서 ‘빚, 형편없는 통지표’가 역문에 없으며, 공동묘지에서 묘비를 발견한 어릴 적 친구, 겨우 15세로 죽은 클라라가 ‘항상 미소를 머금은, 신비스러운 포도주 같은 아이였지.’라는 묘사가 역문에는 없습니다. ‘푸줏간 앞을 지날 때. 시뻘겋고 피가 뚝뚝 떨어지는 갈라진 고깃덩어리들, 감겨진 송아지와 양의 눈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우리는 그런 것들을 보지 말고 빨리 지나가야 한다.’는 대목은 통째로 역문에 빠져 있습니다. 학창 시절의 친구를 방문했을 때 기업주가 된 그가 우리를 알아보려 하지 않는 듯한 태도를 취한다는 대목에서도 ‘그래서 대화는 끊어지고 그는 시계를 만지작거리며 곧 중요한 회의에 참석해야 한다고 할 때.’라는 표현이 역문에는 나오지 않습니다. 그밖에 부분적으로 조금씩 다른 곳도 많습니다.

안톤 슈낙은 제 2차 세계대전 중이었던 1943년 <Jugendlegende>의 재판을 발간하면서 이 글을 통째로 뺐다고 합니다. 아마도 전황이 유리하지 않은 전시 비상시국에 맞지 않는 감상적인 글이라고 판단했던가 봅니다. 그 뒤 종전 후인 1946년, 다른 책에 이 글을 다시 수록하면서 많이 수정한 것은 앞에서 말한 바와 같습니다. 청천은 1948년에 발간한 수필집 <생활인의 철학>을 통해 안톤 슈낙의 글을 처음 소개했는데, 왜 그보다 2년 전에 나온 수정본을 알지 못했을까 하는 게 나의 의문이었습니다.

이 글에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이라는 제목을 붙인 청천의 작업이 명 번역이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하지만 1941년 최초의 글과 1946년의 수정본, 청천의 역문을 삼각 비교할 필요는 있습니다. 이 확인작업은 청천이 멋대로 첨삭을 했다는 누명이나 혐의를 벗기는 일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나는 1941년 최초의 글 찾기에 나섰습니다. 쉬운 일일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이 분야의 전문가라 할 수 있는 분의 도움도 받아 20여 일간 인터넷 검색을 했는데도 그 글은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습니다. 1946년의 글은 쉽게 찾을 수 있었고, 그 글을 빼고 낸 1943년의 재판본도 확인했지만 1941년 초판본은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2003년 베를린에서 출판된 두 권짜리 <안톤 슈낙 작품집>에도 이 글은 수록돼 있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접근 가능한 공공의 영역에서 제대로 갈무리되지 못한 채 이미 사라져 잊힌 것입니다. 그런 명 수필을 왜 이렇게 허술하고 하찮게 다룬단 말인가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습니다.

그러나 안톤 슈낙은 독일에서보다 한국에서 더 유명한 사람입니다. 독일인들은 오히려 우리만큼 그를 알지 못합니다. 독일인들은 자연사와 아동문학 작가인 그의 형 프리드리히 슈낙(1888~1977)을 더 잘 안다고 합니다. 프랑켄 지방의 리넥이라는 곳에서 역 경찰대 간부의 셋째(셋째 아들?)로 태어난 안톤 슈낙은 직업상 이동해야 하는 아버지를 따라 유ㆍ소년 시절을 여기저기에서 보냈고, 1916년 제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해 부상을 했습니다. 그의 성가를 높여준 전쟁 시는 이때의 참전경험을 바탕으로 지어진 것입니다.

신문기자로 잡지 편집인으로 활동했던 안톤 슈낙은 1924년 10월 마리아 글뢰클러라는 여성과 결혼해 살면서 연극 평론 등 여러 작품을 발표했습니다. 1933년 1월 히틀러가 총리가 되자 그 해 10월 히틀러에 충성을 맹세한 작가 88명 중 한 명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이어 제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1944년 다시 입대해 미군의 포로가 됩니다. 그러니까 입대 1년 전에 발간한 책에서 그는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을 삭제한 것입니다. 그는 종전 이후에도 소설을 쓰며 작품활동을 계속했지만 만년의 작품들은 문학성이 떨어지는 데다 하찮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더욱이 나치에 협력한 전과가 결정적으로 그의 문명(文名)을 떨어뜨리게 했습니다.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은 단기 4286년(1953년)에 처음 고등학교 2학년 국어교과서에 등장한 뒤 1982년 교과서 개편으로 빠질 때까지 근 30년간 우리나라 청소년들의 심금을 울려주었던 글입니다. 그의 글은 이 기간에 고등학교를 나온 사람들의 피와 살, 그러니까 몸 속에 들어박혀 있다고 해도 좋을 만큼 감명 깊었습니다. 지금도 수많은 모방작과 패러디 작품이 나오고 있습니다. 교과서에 실리는 글은 모두 이미 고전이거나 고전이 됩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의 글을 배울 때 그가 살아 있는 사람이었다는 사실도 새롭습니다.

만약 그가 나치에 협력한 작가였다는 사실이 진작 알려졌더라면 아마도 그의 글은 교과서에 실리지 못했을 것입니다. 우리의 감성을 키워주고 모든 사물을 새롭게 보게 만들어준 명문의 주인공이 어떤 작가였는지, 그 글의 운명이 어떤 모습이었는지 이번에 새로 알게 됐지만, 뒷맛이 개운치 않습니다. 차라리 그런 걸 전혀 모르고 종전처럼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의 그 섬세하고 감성적인 문장만을 기억하고 있었으면 좋을 뻔했습니다. 이 깊은 가을에 안톤 슈낙과 그의 삶이 나를, 우리를 슬프게 하고 있습니다. 1941년의 첫 글을 발견한다 해도 이제는 그리 즐겁지 않을 것 같아서 더 슬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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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9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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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두환 (121.XXX.XXX.16)
글 잘 읽었습니다. 청소년시절 많은 감흥을 불러일으켰던 글을 되살려 생각하게 된 것만도 다행인데, 단순한 감상이 아니라 번역상의 첨삭문제를 탐색하는 학자적 접근이 '우리를 놀라게' 하는군요. 대학 때의 전공은 언제라도 나타나게 되는 법, 독문학 전공의 김진섭이나 임철순 칼럼 필자도 다 그런 것 아니겠어요? 나도 어느 책에선가 언급한 적이 있는데 그는 분명 우리의 뭉클한 가슴과 연관하여 크게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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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1-09 00:45:13
0 0
올빼미 (121.XXX.XXX.16)
임철순 논설고문님

안녕하세요.
올려주시는 글들 재미 있게 보고 있습니다.

안톤 슈나크.
저도 독문학을 했지만
몰랐습니다.
새로운 사실이군요.

이 기회에 저도 다시 한번 읽어보고 싶군요.
건승하십시오.

김두규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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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1-02 10: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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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건혁 (211.XXX.XXX.129)
교과서에서 읽은 명수필이 또다른 명칼럼에서 우리를 쓸프게 하는군.임철순씨의 실력이야 익히 알고 있었지만 문학에도 열공이 깊은 줄은 예전엔 미쳐 몰랐어요. 모른척 있을려다 반가워서 댓글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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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0-31 16:02:26
0 0
김윤옥 (110.XXX.XXX.229)
안톤슈낙의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이 우리 청소년기 감성에 끼친 깊은 울림이 10월이 오면 다시금 우리 마음을 적십니다.
이미 발표한 글을 그토록 여러번 수정했다는 것으로 작가 자신이 자신의 작품 완성에 많은 노력을 했다는 것을 알겠습니다.
정작 임주필님을 슬프게하는 것, 나치에 가담했던 것에서 어쩔 수 없는 인간의 한계를 느낍니다.

글이 풀리지않아 이쯤에서 접을까, 실망했는데 이제야 노력이 부족하다는 것, 게을렀다는 것을 깨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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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0-31 15:4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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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순 (211.XXX.XXX.129)
반갑습니다. 글 쓰는 사람, 특히 언론인으로서의 그의 행로에 아쉬움이 크지만 그 글 자체의 매력이야 달라질 리 없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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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0-31 16: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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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모 (211.XXX.XXX.129)
고등학교 국어시간에 거의 외우다싶이 많이 읽은 글인데 나치에 협조한 전과는 이번에 처음 알았네요. 10월이면 이용의 노래와같이 꼭 이글이 생각났었죠. 10월햇쌀의 따스함이 좋긴한데 사그라지는 힘떨어진 중년의 모습인것같아 애잔하죠. 임주필님의 안톤시냑에 대한 감회가 피천득의 인연에서의 주인공느낌인것 같아요.ㅎㅎ 좋은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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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0-31 15:4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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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길순 (121.XXX.XXX.16)
10월의 마지막 날입니다.

깊어가는 가을 아침에 깊은 슬픔의 글을 접했습니다.

하지만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의 그 섬세하고 감성적인 문장'만 기억합시다.

이런 날 밤은, 사랑하는 여인과 와인 한 잔 하면 하면 좋을 것 같네요.

채길순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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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0-31 09:4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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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승철 (121.XXX.XXX.16)
하하, 어제 퇴근길, 합창단 연습실로 향하면서 안톤 슈낙이란 이름을 떠올렸습니다. 그렇지만 교과서에서 그의 글을 읽은 기억은 없습니다. 그냥 들은 이름으로 기억할 뿐이죠. 그래서인지 그의 이름과 함께 다른 시를 연관지었습니다. 그 시도 직접 읽은 기억은 없습니다. "시몬, 너는 아는가, ..." 어쨌거나 가을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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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0-31 09:2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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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용 (121.XXX.XXX.16)
자유칼럼그룹에 추천하신 임선생님과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고교시절 배운이후 지금도 아련히 남아있는 안톤슈낙과 평소 좋아하는 김진섭선생번역임을 알게되어 참고가 되는 군요 /계속 지켜보면서 좋은 분도 소개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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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0-31 09:2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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