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를 빼앗긴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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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를 빼앗긴 사연

황경춘

2012년 08월 20일 (월) 01:15:45

“당분간 컴퓨터 사용은 절대 안 됩니다.” 진찰을 마친 뒤 젊은 의사가 카리스마 넘치는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을 때 저는 아찔했습니다. 무엇보다 나흘 뒤로 잡혀있는 자유칼럼 글 쓸 차례를 어떻게 하나 하는 생각부터 들었습니다.

일요일 아침 눈을 뜨자 평소처럼 두 주목을 꽉 쥐었다 폈다 하는 맨손체조부터 시작하려 했습니다. 그런데 왠지 오른손의 감각이 이상했습니다. 팔목에 통증이 있고 손등이 많이 부어 있었습니다.

원래 왼손 손목 관절이 가끔 시큰거려 자판을 칠 때 불쾌감을 느꼈기에 아내가 다니는 정형외과 병원에 가볼까 했었는데, 이렇게 갑자기 오른손에 통증이 오니 걱정이었습니다. 응급실에 갈 정도는 아니니 하루를 참고 다음날 일찍 아내의 단골 병원을 찾았습니다.

통증 전문의인 원장은 문진(問診)이 끝난 뒤, 일단은 퇴행성 관절염으로 보이나 혹시 통풍이나 세균 감염일 수도 있으니 혈액검사와 방사선 촬영부터 하자고 했습니다. 여러 각도에서 찍은 사진을 본 뒤, 주사와 물리치료를 받게 하고, 오른손은 절대 안정이 필요하니 간이 깁스로 고정하도록 했습니다. 팔 골절 환자가 사용하는 어깨띠까지 사용하게 했습니다. 그러니 당연히 컴퓨터는 사용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가 말한 ‘당분간’이 언제까지인지 알 수 없는 것이 답답했습니다.

그러나 집으로 돌아오자, 80 평생 오른손만을 주로 써온 생활습관 때문에 오는 불편이 당장 저를 당혹케 했습니다. 우선 점심 먹는 일이 큰 소동이었고 뒤이어 이를 닦을 때에도 여러 가지 수법을 시도해야 했습니다. 자유칼럼에는 왼손으로 인터넷 메일을 보내 사정을 보고했습니다.

하루의 생활 리듬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지압을 포함한 아침 식전 건강 프로는 중단하고 컴퓨터와 독서도 멀리했습니다. 오전에는 병원에서 몇 가지 물리치료를 받고 오후에는 집에서 세 시간 간격으로 열탕 찜질을 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깁스를 풀어야 했습니다. 혈액검사 결과 통풍이나 세균에 의한 질환이 아닌 것이 판명되어 일단은 안심했습니다.

마침 런던 올림픽에서의 한국선수들의 활약 모습이 방송으로 중계되어 손목 질환에서 오는 우울했던 심정을 많이 잊게 해 주었습니다. 동시에 치료의 효과가 눈에 보이게 나타나 본인은 물론이고 아내와 담당 의사를 기쁘게 하였습니다.

사람은 죽을 때까지 배우고 성장한다고 하지요. 평소에 건강에 많은 관심을 가지는 저였지만 이번 일로 새롭게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자기의 건강에 약간의 만심을 가진 것도 반성하였습니다. 신체의 변화는 아주 작은 징조가 나타날 때 서둘러 대처해야 한다는 것을 젊을 때부터 수없이 들었지만 이를 실천에 옮기지 못한 제가 부끄러웠습니다. 고령에 따른 어느 정도의 노쇠현상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혈압이나 당뇨 수치 같은 상식적인 숫자에만 집착한 종래의 건강법을 크게 반성하였습니다.

일요일을 빼고 매일같이 병원을 찾아 열심히 치료를 받은 결과 열흘째 되던 날, 의사는 이제는 깁스가 필요 없으며 물리치료도 이틀에 한 번정도 받으면 된다는 반가운 말을 했습니다. 컴퓨터를 쓰라 말라 아무 말이 없기에 저도 굳이 물어보지 않고 바로 화제를 바꾸었습니다. 집에 돌아와 인터넷 메일을 점검하니 그동안 어렵게 처리한 긴급 연락 몇개를 빼고도 50여 통이 처리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수년 전 늦깎이로 시작한 칼럼 쓰기 공부를 계속할 수 있다는 기쁨이 무엇보다 컸습니다. 부모로부터 받은 신체의 각 부분이 모두 이렇게 소중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극히 평범한 진리를 다시금 깨달은 것이 이번 삼복더위 속의 값진 경험이었습니다.

난청 증세가 있는 대학선배들과 만날 때마다 신체 오관(五官)이 아직은 비교적 정상으로 기능하고 있는 저 자신을 행운아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일상생활에 커다란 즐거움을 주는 신체부위가 이렇게 더 있다는 것을 이번 기회를 통해 절실히 느끼면서, 인생은 죽을 때까지 새로운 발견의 연속이라는 교훈을 되새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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