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는 재미와 고민

인기검색어 : 자유칼럼, 에세이

홈 > 연재칼럼 | 황경춘 오솔길

글을 쓰는 재미와 고민

황경춘

2012년 07월 20일 (금) 00:47:52

자유칼럼에 글을 올리는 차례가 4일 앞으로 다가왔는데, 아직 글을 시작도 못하고 있었습니다. 벌써 5년째가 되는 칼럼 쓰기인데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습니다. 항상 마감 1주일쯤 전에는 글을 대강 마치고 마무리 다듬기를 하다가 마감 4~5일 전에는 초교를 위해 먼저 필진들의 글방에 준비된 원고를 올리는 것이 정해진 순서였습니다.

그러던 것이 이번에는 어떻게 하다가 마감이 촉박해질 때까지 글을 시작도 못하고 있었습니다. 써야 할 글 주제도 정하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이것저것 쓰고 싶은 게 너무 많아 그중 하나를 결정 못하고 있었습니다.

5년 전, 제가 글을 쓰기 시작할 때는 11명이었던 필진이 지금은 16명으로 늘었습니다. 그러니 한 달에 두 번꼴로 찾아오는 차례입니다. 전보다 더 여유가 있을 법한데 어찌된 셈인지 갈수록 글쓰기가 어려워집니다. 어쩌면 이것저것 너무 많이 다루어 이제 소재가 고갈됐는가 하고 과거에 쓴 글 제목을 쭉 훑어보았습니다. 개중에는 한 가지 소재를 두 번 세 번 중복해 다룬 것도 눈에 띄었습니다. 그러면서 어쩌다 제가 이 길에 들어섰는지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원래 글짓기에 관심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초등학교 시절 담임교사의 추천으로 글짓기 대회에 나가 두세 번 입상한 적도 있습니다. 그러나 30대 초반에 신문기자를, 그것도 우리말도 아닌 영어를 쓰는 외국 언론사 기자를 시작한 것은, 그 직장에 자리 잡고 있던 친구의 강력한 추천에 의한 것이기는 했지만 상당한 모험이었습니다.

그러나 기자생활에서 은퇴하고 꽤 오래 있다가, 우연하게 자유칼럼에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은 더욱 큰 모험이었습니다. 이미 80대 중반에 접어든 저의 건강은 꽤 좋은 편이었으나, 그 나이에 평소에 해보지 않은 칼럼 글을 그것도 정기적으로 쓴다는 것에 저 자신 상당한 고민을 하였습니다.

부끄러운 일입니다만, 저는 일제강점 시 일본 교육은 받았지만 광복 후 우리나라 교육, 그것도 우리의 자랑스러운 훈민정음에 관한 체계적 교육을 받지 못했습니다. 게다가 제가 일한 곳은 한 2년을 빼고 전부 영어를 쓰는 외국기관들이었습니다. 그러니 그때까지 우리말로 외부에 발표하는 글을 써 본 경험이라고는 언론 친목단체의 기관지가 부탁한 가벼운 글들뿐이었습니다.

그러니 아무리 글쓰기에 흥미가 있다고는 하지만, 한글의 그 까다로운 철자법이나 띄어쓰기에 자신이 없는 저로서는 자유칼럼의 쟁쟁한 필진의 한 사람이 된다는 것이 기쁘기는 했지만 두려움도 많았습니다.

사실, 영문이나 일본글은 잘 쓴다는 것보다 우선 제가 쓴 글이 문법적으로 옳고 그름을 판별할 수 있는 기본 지식은 있습니다. 우리말 글에 대하여서는 그렇지 못한 제 실력으로 감히 자유칼럼에 글을 쓴다는 것은 여간 배짱이 없으면 못하는 일이지만, 교정을 맡아주시는 분들이 계시기 때문에 용기를 잃지 않는 것입니다.

자유칼럼은 공개된 사이트이지만 필자가 추천하는 독자에게 직접 메일로 자기 글을 보내주는 제도가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글 받을 독자를 추천한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그건 물론 제 글을 자신 있게 추천할 용기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 가족이 운영하는 카페에는 모든 제 글을 올리고 가족들의 평을 듣습니다.

가끔 모임 같은 데서 만나는 분들로부터 제 글을 재미있게 읽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 부끄럽기도 하고 반갑기도 합니다. 저는 필진 중 가장 연장자입니다. 자연 다른 분들보다는 인생경험이 많을 테지요. 요는 그런 희소가치를 이용하여 유창한 표현은 아니지만 다른 분이 다루지 않는 경험이나 문제를 독자와 공유하고 싶다는 것이 제가 글을 쓰는 목적이고 보람이기도 합니다.

앞에서 한 말대로 어쩌면 쓰고 싶은 것이 너무 많아 글쓰기가 힘드는지 모르겠습니다만, 구닥다리 늙은이가 횡설수설한다는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서라도, 글 소재 선택을 신중히 합니다. 어법에 맞는 올바른 글을 쓴다는 문제와 더불어 계속 노력해야 할 부분이 바로 이거라 생각합니다.

그러기 위해 자연 인터넷이나 책을 통해 공부하는 시간도 많아지니, 이것이 치매 예방을 비롯한 노인 건강 유지에도 도움이 되지 않나 생각되어, 매일같이 느끼는 기억력 감퇴에도 불구하고 체력이 허락하는 한 글쓰기를 계속할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