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 기증..,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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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 기증.., 할까요?

신아연

2012년 03월 28일 (수) 00:21:18

남편이 운전면허증을 갱신했습니다. 기간이 제일 긴 5년짜리로 했다길래 “그때까지 살 자신이 있나보네.” 라고 슬쩍 농을 하면서 물었습니다. “장기 기증란에는?” “한다고 표시했어.” 순순한 대답에 마음이 아주 약간 흔들립니다.

한국은 어떤지 몰라도 호주의 운전면허증에는 본인의 장기 기증 의사를 묻는 난이 있습니다. 운전면허증이 곧 신분증인 나라이니 거기에 ‘Yes’ 라고 한다면 꼭 교통 사고가 아니더라도 어떤 상황에서든 사망할 경우 유족의 동의 없이 장기 적출을 허용하겠다는 서약인 셈입니다. 물론 그 약속은 면허증을 새로 발급받을 때마다 번복할 수 있지만 말입니다.

살아 있는 한 죽음은 우리와 함께 있지 않고 죽음이 찾아오면 우리는 이미 존재하지 않으니 산 사람은 절대 죽음과 마주칠 일이 없다는 궤변도 있지만 살아서 미리 ‘생각하는' 죽음은 언제나 공포스럽고 거북하기에 면허를 갱신할 때마다 장기 기증을 묻는 항목에 이르면 잠시 펜을 놓고 숙연해집니다. 오장육부를 떼어 내는 도중에 마취에서 깨어나는 일이라도 벌어질 것처럼 뇌사 후의 장기적출 순간을 두려워한다는 것이 우습고 터무니없지만 말입니다.

지금 ‘yes’라고 했다 해도 길어야 5년인 다음 면허 갱신 때까지 실제 그런 일이 발생할 거라는 실감이 안 든다면 장기 기증 의사는 그 자체로 무의미하거나 가장 소극적인 나눔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 일이 실제 상황이 된다면 그보다 더 숭고하고 적극적인 나눔의 행위는 없을 것이란 점에서 별 생각없이 할 수 있는 가벼운 결단일 수 없습니다. 제 경우 면허증을 처음 취득한 후 몇 년 단위로 새로 만들 때마다 ‘yes’, ‘no’를 오가며 되작이고 번복해 오던 것을 몇 년 전부터는 ‘yes’로 마음을 굳히게 되어 그나마 죽을 때는 사람 도리를 좀 하게 되려나 봅니다.

얼마 전 일곱 장기를 동시에 이식받아 새 생명을 얻었다는 7세 여아 생각이 납니다. 수술 전 정상적인 영양 섭취가 불가능했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오동통한 볼과 초롱한 눈매를 가진 아이를 보며 동시에 그 아이에게 자신을 전부 내어주고 세상을 떠난 비슷한 연령의 또 다른 아이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두 아이의 부모는 사지를 헤매는 자식을 놓고 똑같이 절실하게 기적적 회생을 간구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한 아이는 다른 아이와의 깊은 인연으로 삶을 얻고 또 다른 아이는 생명을 그 아이에게 주고 떠났습니다. 그 이유를 따지는 것은 인간의 영역이 아니니 누구도 두 아이의 운명에 대해 어떤 말을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럼에도 살아난 아이는 죽은 아이에게 크나큰 빚을 졌다는 것과 그렇기 때문에 싫든 좋든 이제부터 두 몫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말은 해 주어야 할 것 같습니다. 한 사람의 생명에 또 다른 사람의 생명이 고스란히 스며들었으니까요.

산 자는 누구나 죽은 자들에게 빚이 있으니 직접적으로 생명을 주고 떠난 경우야 말할 것도 없겠지요. 우스개지만 하물며 참새도 전깃줄에서 떨어져 죽어가며 “내 몫까지 살아주!”를 유언으로 남겼지 않나요.

회복기의 아이가 햄버거, 피자, 과자 등등 이것도 먹고 싶고 저것도 먹고 싶다며 재롱을 피울 때, 좋아하던 연예인을 직접 만났다는 기사를 접할 때 그 아이에게 일체의 장기를 주고 떠난 아이의 부모 마음을 헤아려 봅니다. 장기를 기증받은 아이가 또래의 보통 아이처럼 자라는 것에 보람을 느끼면서도 순간순간 쓸쓸함과 황량함, 박탈감을 감당하기가 몹시 힘들 것 같습니다. 들리는 소식에 따라서는 때때로 상처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운전면허증을 통해 장기 기증을 서약한 후, 이사하고 나서 전에 살던 내 집에 어떤 사람이 들어와 사는지 슬쩍 궁금한 것처럼 내 몸의 ‘소유권’이 어떤 사람에게 이전될지 은근히 궁금해질 때가 있습니다.

아무리 더 이상 내 집이 아니라 해도 내가 정성껏 가꾸며 살아온 집을 소홀히 하거나 함부로 쓴다면 무척 실망스럽고 화가 날 것 같습니다. 마찬가지로 내 장기를 이식받은 사람이 ‘이제는 내 몸’이라며 엉터리로 막 산다면 괜히 주었다고 죽어서도 후회를 할 것 같습니다. 물론 그 전에 나부터 깨끗하고 훼손 없이 내 몸을 사용해야 하겠지만요.

신아연 (110.XXX.XXX.249)

김윤옥님, 제가 이 글을 쓰고 이런 진지한 나눔을 갖게 된 것이 얼마나 기쁜지 모르겠습니다. 지나쳤던 나의 경험이 어떤 글을 통해서 다시 상기되고 그 속에서 의미를 찾게 되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가요? 저는 기독교인로서 이런 것을 감히 '거룩한 부담감'이라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우리 속에 좋은 것들을, 주변의 의미있는 것들을 드러내고 나눠야 한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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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3-29 14: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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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아연 (110.XXX.XXX.249)

marius님, 소박한 제 경험의 글에 이렇게 의미를 부여해 주시니 글쓴이로서 가슴 벅차고 글을 쓰는 '의미'를 되새기게 되었습니다. 글의 힘이라고 할까요? 주변에 아주 작은 불씨를 만드는, 아주 작은 씨앗을 뿌리는 그런 일이 시작될 것같은 가슴 벅참에 있지 않나 싶습니다. 가슴깊이 감사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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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3-29 14: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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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아연 (110.XXX.XXX.249)

인내천님, 존경까지 받을 일은 아니구요, 운전면허증에 그런 란이 있으니 아무래도 결정하기가 쉬웠습니다. 마음 뒤집어지지 않도록 기도해 주세요.^^
한국에도 이런 시스템을 도입해 보는 것이 어떨까요? 인내천님처럼 애국심이 뛰어나신 분이 발벗고 나서보면 어떨까요? 진심입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선거, 인내천님의 간구가 헛되지 않기를 소망하며 국민의 마음을 읽을 줄 아는 선량들을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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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3-29 14:0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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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정욱 (110.XXX.XXX.249)

평생 한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장기기증이란 문제를 생각해보려합니다.
이 아침에 화두를 던져주셨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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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3-29 08:0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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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웅 (110.XXX.XXX.249)

제가 가지고 있는 한국 운전면허증에는 '장기기증' '각막기증' 조그만 스티커가 붙어 있습니다. '사랑의장기 기증 운동본부'에 장기 기증 서약서 보내면 이렇게 스티커 보내오면 자발적으로 붙이도록 권장합니다.

지난번 김수환 추기경 돌아가시면서 한국에 장기기증 붐이 있엇고 그 이후로 저도 제가 속한 GP 선교회 선교후보생 허입난에 '장기기증했는지' '각막기증했는지' 여부를 묻는 난을 신설하였습니다. 여론이 이렇게 중요합니다. 저 한사람이 의식이 생기니 여러 사람에게 권유하게 되더군요.

부활 신앙을 가진 그리스도인이라면 이런 좋은 일에 자발적으로 나서야지요.

신선생님의 좋은 글이 다른 사람들의 장기 기증 운동에 좋은 도구가 되기를 바랍니다. 이용웅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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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3-29 08: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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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완 (110.XXX.XXX.249)

선생님의 글을 흥미 있게 읽었습니다. 살아서 남을 돕는데 죽어서도 남의 생명을 살린다는 것이 얼마나 보람 있는 일입니까. 나도 내 운전 면허에 장기 기증한다고 했습니다. 나 같은 늙은이의 것도 쓸모가 있을지 모르지만 말입니다. 좋은 글 많이 쓰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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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3-29 08: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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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옥 (1.XXX.XXX.200)

우리교회 경로대학에선 장기기증 신청을 단체로 한다고 합니다. 구역 권사님이 생전에 장기기증을 하고 돌아가신 뒤 입관 발인 없이 장례예배를 드리면서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저도 반드시 장기기증을 하리라 맘은 먹었지만 실제로 기증 절차를 차일피일 미루고 있습니다.
내겐 아직 시간이 좀 남았다고 굳게(?) 믿으면서.
올 초 65세 부터 지하철 무료승차 혜택을 받게되어 여유가 생긴 지하철 교통요금을 교회 자선단체에 자동 납부 신청을 은행에 가서 했는데 담당자가 기한을 10년으로 하자고 하면서 그안에 돌아가시면 자동으로 지급정지 된다 해서 웃었습니다. 속으론 10년 넘게 자동 지급 되겠지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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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3-28 23:5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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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ius (220.XXX.XXX.219)

전에는 별로 심각하게 생각 안한 문제를 이 글을 읽고는 깊이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조만간 장기기증을 나도 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결론내리기로 했습니다. 이 글에 대한 고마움을 느낍니다. 우선은 내 부실한 장기가 환자의 아픔을 단 얼마간이라도 덜어줄 수만 있다면 얼마나 다행일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내가 아플 때의 고통을 생각하면 그런 생각이 듭니다. 장기 기증을 한다면 아무 다른 생각없이 단지 그 생각만 갖고 응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생명의 존엄성이니 하는 고차원적인 생각은 지금은 별로 들지 않습니다. 아픔을 줄여줄 수만 있다면 하는 생각 뿐입니다. 이제부터라도 내 장기를 조금이라도 성하게 유지하고 관리해야지 하는 결심부터 해봅니다. 뜻깊고 좋은 글에 대해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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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3-28 17:5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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