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대지진이 알려 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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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대지진이 알려 준 것

황경춘

2012년 03월 15일 (목) 00:10:57

3월 11일은 1년 전 일본 동부 해안지대에 대지진, 쓰나미 그리고 방사능 확산의 재해가 동시에 일어나 한때 정부 기능의 혼란까지를 초래한 바로 그날입니다. 1만9천여 명의 희생자와 천문학적 숫자의 경제 손실을 가져온 일본 역사 초유의 이 재난은, 정치의 혼란과 지도력의 부재로 이제 겨우 전담 ‘부흥청(復興廳)’의 발족을 볼 정도로 뒷수습이 지연되고 있습니다.

재해 1년이 되는 지난 일요일, 수도 도쿄(東京)에서는 이례적으로 정부 주최 추도식이 열려 심장 바이패스 수술 후 퇴원한 지 1주일밖에 되지 않는 79세의 천황을 비롯한 1천여 명의 각계 지도자와 유족 대표가 참석하여 지진 발생 시간인 오후 2시46분에 추모 묵도를 올렸습니다.

이 같은 행사는 일본 각지와 뉴욕, 파리 등 외국 도시에서도 열렸고, 며칠 전에는 유엔본부에서도 반기문 사무총장을 비롯한 각국 사절들이 희생자를 추모하고 일본 국민에 성원을 보내는 모임을 가졌습니다.

지난해의 동일본 대지진이 전 세계 이목을 집중시킨 것은 진도 9라는 이례적인 강도 때문도 있었지만, 그보다도 초대형 쓰나미로 파괴된 원자력발전소에서 누출된 무서운 방사능의 확산 때문이었습니다. 게다가 집권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민주당 정부의 경험 부족에서 오는 초동 대응책의 혼란으로 있어서는 안 될 일부 사실 은폐 흔적이 알려져 내외 언론과 국민이 방사능 통제에 대한 정부 대책을 불신하게 되는 사태에까지 이르렀습니다.

사고 직후부터 총리가 주재한 정부 최고 대책회의의 의사록이 작성되지 않았다는 것이 최근에 알려지자 정부는 일부 메모와 기억을 토대로 70쪽이 되는 의사록 요점을 급거 만들었지만 오히려 일반의 빈축을 샀습니다. 미국의 원자력안전위원회의 일본 원전 사고에 관한 회의 의사록이 3천 페이지에 달한다는 것이 알려졌기 때문입니다.

방사능 사고가 분명해진 시점에도 정부는 위험지역 내에 있는 주민들에게 피난 명령을 즉각 전달하지 않아 비난과 불신을 샀습니다. 현재 후쿠시마(福島) 원자력발전소 발전기 6기 중 4개가 쓰나미로 파괴되고 일부는 원자로심(爐心) ‘멜트다운(용해)’ 현상과 수소 폭발까지 있었는데 이 자세한 사태발전을 제때 감지 못했다는 비난도 받고 있습니다.

인구 2백만의 후쿠시마현(福島縣)에서 지금 16만여 명이 현 내외로 피난해 있으며 반경 20km 위험구역 내의 거주가 금지되어, 가축이나 애완동물을 남겨 둔 채 피난한 주민이 대부분입니다. 그들의 비참한 생활을 취재한 기사와 사진이 일본 언론에 많이 보도되고 일부 우리 국내 언론도 취재를 했습니다.

발전소 부근 농지와 주거지역이 오염된 외에, 방사능 쓰레기가 해수에 의해 하와이 부근 해역까지 떠내려가고 머지않아 미국 서해안에까지 도달할 것이라고도 보도되었습니다. 발전소 부근 해역 어획물의 시장거래도 금지되어 해당 농어민에 대한 보상 문제도 미해결인 상태입니다.

사태가 이렇게 험악해지자, 민주당 전 총리 간 나오토(管直人)를 비롯한 몇몇 정부 지도자는 탈원전(脫原電) 정책을 내비쳤으나, 원자력발전소를 당장 폐쇄하기에는 현실적으로 많은 문제가 있다고 전문가들이 지적했습니다.

현재 일본에 있는 원자로 54기 중 52기가 고장이나 점검으로 가동중지 중입니다. 만일 이 발전기를 모두 폐기하는 작업에 지금 곧 들어간다 해도 2049년에 가야 모든 원전기가 폐기된다고 합니다.

작년 9월 도쿄에서는 원전 반대집회가 열려 근년에 드물게 6만여 명의 많은 시민이 참가했습니다. 이때 취재를 한 영국 일간지 가디언의 조너선 왓츠(Jonathan Watts) 기자는 이 집회의 주최자 한 사람의 말을 빌려 이 집회 주최 단체나 구성원과 전력회사 및 관련 대기업과의 인간관계나 그 밖의 여러 국내여건 등으로, 실제로 원전을 즉시 폐기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임을 알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왓츠 기자는 그의 기사에서 일본의 고령화, 경제 침체, 정치력 부재 등으로 원자력 발전을 대치할 새로운 정책 수립은 어려워 보이나, ‘죽음의 땅’을 보리라 예상하고 찾은 현지 사정은 상당히 고무적인 반면, 오히려 일본 자신이 여러 사정으로 ‘완만한 붕괴(a kind of slow decay)' 과정을 밟고 있는 듯 보였다고 염려했습니다.

1973년 일본이 고도성장의 길을 달리고 있을 무렵, ‘일본침몰’이란 공상소설이 발표되어 385만 부가 팔리는 공전의 베스트셀러가 되고, 그해와 2006년 두 번이나 영화로 만들어져 일본은 물론 해외에서도 화제가 되었습니다. 지난해 대지진이 일어나자, 많은 일본 사람이 이 과학 공상소설을 상기했고, 우리나라의 어느 신문도 이 ‘일본침몰’을 기사제목으로 뽑았다가 나중에 사과하고 취소할 정도로 이 단어는 일본사회 유행어가 되었습니다.

지각변동으로 일본열도가 물에 잠기고 일본민족이 ‘유랑민족’으로 전락한다는 것이 이 소설의 줄거리였습니다. 지난해 대지진 후 도쿄지방을 중심으로 대지진이 20년 이내에 있을 거라는 예상이 나오고, 최근에는 한 과학자가 진도 7의 강진이 3년 내에 있을 가능성이 70%라는 예상을 발표하여 일본인들을 긴장시켰습니다.

때마침 일본 유력지 아사히(朝日)신문 주필이 지난 1월 일본 최대 종합 월간지 ‘문예춘추(文藝春秋)’가 1975년에 발표한 ‘일본의 자살’이란 제목의 논문을 인용한 논설을 써 일본 정국(政局)에 경종을 울렸습니다. 이를 받아 이 잡지는 이례적으로, 37년 전의 이 논문을 3월호의 권두 기사로 다시 실었습니다. 아사히가 일본 진보세력을 대변하는 신문이고 문예춘추는 보수세력을 대변하는 월간지인 점이 저의 관심을 끌었습니다.

‘그룹1984’란 익명의 학자들이 공동집필한 이 논문은 역사상 인류문명은 외세에 의해 무너진 예가 없고 모두 내부 실정으로 멸망했다며 로마제국의 흥망사(興亡史)를 한 예로 들었습니다. 막강한 로마제국이 말기에 “빵과 서커스”를 요구한 무산대중 압력으로 기원 354년에는 무료급식 외에 한 해 175일의 무료 오락공연과 1년의 반을 공휴일로 정한 후에 멸망했다는 사실(史實)을 인용한 것입니다. 일본 뿐 아니라 우리나라도 참고할 점이 많은 글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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