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 안보 문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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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 안보 문제입니다

김수종

2007년 05월 23일 (수) 01:52:29

요새 신문과 방송에서 지구온난화 보도를 많이 보고 들으실 겁니다. 오늘 그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이미 세계는 ‘온난화’라는 말 대신에 ‘기후변화’라는 구체적 용어를 많이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아이쿠, 그 공상과학 같은 환경쟁이들 주장에 귀기울이라구?” 이렇게 중얼거리며 모니터에서 눈을 떼려는 분이 꽤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2분만 시간을 주십시오.

지난 4월 18일 미국 뉴욕에 있는 유엔본부에서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가 열렸습니다. 유엔 안보리는 15개 이사국이 매달 순번대로 의장국이 됩니다. 4월 의장국은 영국이었습니다. 보통 의장국의 유엔 대사가 안보리 회의를 주재합니다마는 이날 의장석에는 영국의 여성 외무장관 마가레트 베케트가 앉았습니다. 베케트 장관은 영국이 의장국이 된 것을 이용하여, 지구온난화에 의한 기후변화를 세계 안보를 위협하는 의제로 유엔안보리에 올려놓을 요량으로 뉴욕에 나타난 것입니다.

안보리 하면 중동전쟁이나 북핵문제 같은 세계평화에 긴급한 의제를 놓고 강대국 몇 나라가 중심이 되어 토론하는 모습이 떠오를 겁니다. 그런데 이날 회의 의제는 ‘기후변화’였고, 참석 국가는 15개 이사국을 포함하여 무려 56개국이었습니다. 안보리 이사국인 중국과 인도는 “안보리는 전쟁과 평화의 문제를 다루는 곳이지 기후변화를 논의할 곳이 못 된다”며 의제상정에 반대해왔습니다.

베케트 장관은 안보리 회의 직전에 먼저 유엔출입 기자들 앞에 나타났습니다. 그는 “기후변화는 지구 전체의 안전과 평화를 위협하는 이슈입니다. 그러니 안보리가 이 문제를 토의할 가장 적절한 곳입니다” 며 기선을 잡아 나갔습니다.

안보리 토론에서 베케트 장관은 “기후변화에 의한 홍수, 질병, 기근으로 인류는 역사상 경험하지 못했던 대규모 난민이동 사태가 발생할 것이며, 이는 어느 특정국가의 안보문제가 아니라 매우 상호의족적인 세계에서 집단안보를 위협하는 심각한 문제”라고 목청을 높여갔습니다. 그리고 연설 말미에 “기후변화는 빈국을 상대로 한 부국의 공격행위”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이 말은 바로 무세비니 우간다 대통령이 선진국을 향해 퍼부은 독설입니다.

토론 참가국들의 반응은 엇갈렸습니다. 유럽 국가들은 베케트 장관을 높이 평가했습니다. 몰다이브 등 온난화로 바다에 잠길 위기에 처한 섬나라들과 방글라데시 멕시코 일본 등도 영국 편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남아공 파키스탄 브라질 등 소위 ‘77그룹’으로 불리는 개발도상국들은 “그런 의제는 총회에서 다룰 경제 문제”라며 영국을 비난했습니다. 러시아와 산유국들도 안보리가 기후변화를 다루는 것은 부당하다고 지적했습니다.

영국이 하는 일이면 항상 편을 들어주는 미국은 어떻게 나왔을까요.

미국은 영국의 손을 들어주지 않았습니다. 미국의 알렉한드라 울프 유엔 대리대사는 “기후변화는 심각한 정치적 문제임이 분명하지만 유엔의 다른 토론장(유엔환경계획을 뜻함)에서 논의되고 있다”며 중국 쪽으로 기울었습니다. 그는 “개도국과 선진국의 경제발전을 통해 환경문제와 에너지 문제에 대응할 수 있다”는 부시 대통령의 메시지를 되풀이했습니다.

안보리의 정치역학 구조로 볼 때, 미국이 소극적인 판에 기후변화를 심도 있게 계속 논의하는 것이 쉽지는 않아 보입니다.
그렇지만 이 에피소드를 보면서, 기후변화가 안보리의 의제가 되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부간 기후변화협의회(IPCC)의 제4차 평가보고서가 지적했듯이 기후변화는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인류를 위협해오고 있습니다. 유럽과 섬나라들은 심각하게 위기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부시대통령이 안보리 논의에 소극적이라고 지구온난화가 멈추어주는 선의를 베풀지는 않을 것입니다.

기후변화가 안보문제로 대두될 수밖에 없는 또 하나의 징조는 군사전문가들이 걱정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2006년 작 스터럽 영국 함참의장은 “기후변화에 의한 사막화, 물 부족, 해안침식, 경작지 축소, 극단적 기상에 의한 인프라 파괴 등이 안보를 훼손할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더욱 놀라운 일은 부시대통령 밑에서 미군을 지휘했던 기라성 같은 퇴역 장성 11명이 지난 4월 보고서를 통해 기후변화에 의한 대규모 난민발생으로 아시아와 아프리카에서 안보위협이 발생할 수 있다 지금 온실기체 감축에 나서야 한다고 경고한 것입니다.

2004년 2월 영국의 일간지 ‘가디언’이 앞으로 20년 내에 기후변화가 전쟁을 초래하면서 수백만 명의 인명희생을 부를 수 있다는 미국 국방부의 비밀 보고서를 입수하여 보도한 적이 있습니다. 이 보고서는 급격한 기후변화에 직면한 세계 여러 나라가 식량, 물, 에너지 자원을 확보하거나 지키기 위해 핵무기 개발에 나서면서 지구는 무정부의 혼돈상태가 될지 모른다며 기후변화가 현재 세계를 뒤덮고 있는 테러리즘보다 훨씬 더 위험하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이 보고서를 누가 만들었는지 아십니까. 1973년 닉슨대통령에 의해 미국 국방부의 싱크탱크인 ONA국장직에 임명된 후 7명의 대통령 아래서 그 자리를 고수해온 신비의 군사전략가 앤드루 마샬이란 사람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방위논쟁을 일으킨 부시정부의 미군재배치 계획과 미사일방어(MD)구상도 이 80대 노인의 머리에서 나왔다고 합니다. 이런 것을 보면 기후변화는 미국 국방 전략가들의 뇌리에 깊이 입력되고 있는 안보변수라 하겠습니다.

또 하나 관심을 가질 일은 지구온난화에 대한 미국의 국민정서가 상당히 고조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최근 뉴욕타임스와 CBS방송이 공동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는 놀랐습니다. 민주당원의 90%, 중도계층의 80%, 공화당원의 60%가 기후변화위기에 대처하기 위해 당장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응답했습니다. 미 국민의 위기의식은 바로 세계를 때리게 되어 있습니다. 분명 부시가 퇴임한 후에는 누가 대통령이 되든지 기후변화는 미국 대외정책의 우선순위에 오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2차대전 이후 국제사회는 핵 군비를 매개로 한 동서냉전 시대에서 테러리즘의 시대로 안보문제가 변해 왔습니다. 이제 곧 기후변화가 안보문제의 중요 변수로 떠오르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인 것 같습니다.
세계가 이렇게 변해갑니다. 그 전략적인 의미를 다각적으로 분석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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