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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그 영원한 노마드
김영환 2006년 12월 01일 (금) 00:00:00
오랜만에 재개봉관에서 국산영화를 보았습니다. 영화의 줄거리는 88년 가요대상을 받았으나 대중에게서 잊혀져가는 왕년의 인기 가수(박중훈 분)가 동강이 흐르는 영월의 라디오 방송국에서 DJ로 재기한다는 것으로 가수와 매니저(안성기)의 끈끈한 애정과 가족의 소중함이 라디오라는 매체를 통해 확연히 드러나는 영화였습니다. '라디오 스타'라는 제목의 이 영화가 상영되는 내내 객석에서는 건강한 웃음이 터졌습니다. 라디오를 좋아하여 라디오를 수집해온 저에겐 우리나라의 새로운 영화세계를 보는듯하여 기뻤습니다. 영화 속의 대사인 첫 눈과 첫 키스처럼 상큼했습니다.

필자는 우리나라 일부 감독들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영화적인 표현의 자유를 마치 성교(性交)의 자유로 오인한 양 헐리웃보다 더 야하게 밤낮없이 헐떡거리는 장면을 일삼는 섹스 코드에 식상했습니다. 영화를 종합예술이라고는 하지만, 독창성보다는 흥미를 최고도로 높이기 위해 어딘지 집체(集體)작품 냄새를 풍기면서 사실과 공상을 교묘히 배합하여 이상한 정서를 주입하고 수백만 명을 하나의 우리로 몰아넣는 것 같은 일부 감독들의 영화에도 애정이 식었습니다. 그런 차에 얼마 전 어느 젊은 여성 문화인이 한국 문화는 위기다라는 외침은 울려야할 때 울리는, 뜻 깊은 경종처럼 들렸습니다. 그 말에 필자는 다른 영화와 다른 영화를 보고 싶다는 남다른 관객의 욕심으로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이 영화를 보면서 라디오와 라디오 방송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언제 보아도 귀여운 외모인 맥 라이언이 신문기자로 나오는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을 떠올렸습니다. 많이 보셨겠지만 성탄절 전야 맥이 자동차를 타고 가다가 아내를 잃고 실의에 빠진 아버지를 위해 새 엄마를 구해달라는 아이의 라디오 방송사연을 듣고 그 아이의 아버지(톰 행크스)에 흥미를 갖게 되면서 약혼자와 헤어지고 운명적인 사랑에 빠지는 영화입니다.

라디오 프로그램을 청취하면, 필자는 구세대인지는 몰라도 봄날 고향의 들판에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듯 아련한 향수를 느낍니다. '밤을 잊은 그대에게'라던가, '0시의 다이얼'이라든가 하는 고전적인 심야 DJ프로를 통하여 팝송 영어를 배웠고 친한 사람들에게 편지를 보냈고 펜팔을 맺어보았습니다. 군대에서는 트랜지스터 라디오를 끼고 살았고 결혼 한 뒤에는 알람 클락 라디오를 선물로 받아 아침에 기상 시간이 되면 라디오 방송이 나오도록 했었습니다. 라디오가 생활의 반려였습니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라디오는 사양화한 미디어로 취급되지만 선진국들은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미국에서 나스닥에 상장된 시리우스 위성 라디오는 자체 인공위성 3개를 띄워 라디오방송을 하고 있습니다. 프랑스의 프랑스 엥포는 24시간 뉴스만 하는 전문방송으로 서유럽에서 애청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시청료를 세금처럼 받는 KBS는 인천 근교의 섬에서도 지상파 텔레비전방송이 잘 안 잡힙니다. 음영지역인지는 몰라도 라디오조차 서울보다 춘천 쪽의 KBS가 잡힙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위성 DMB니 지상파 DMB니 하다가 지상파 DMB는 수익성이 없어 사업을 접을 판입니다. 하나를 완전하게 숙달하기도 전에 계속 다른 단계로 뛰는 것은 기업수익을 위한 모험으로서는 의미가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기술이 스스로 기술에 취해 달려 나가다보면 나중에 아무도 따라오는 소비자가 없음을 뒤돌아보고 놀라지 않을까 걱정됩니다.

라디오는 이미 오래전부터 유목민(nomade)이었습니다. 고가의 단말기도, 때론 회선도 필요 없는 자유인들의 애용물이었습니다. 따지고 보면 지금 화두로 떠오른 디지털 유목민의 선구자입니다. 필자는 '라디오 스타'를 보고나서 영원한 노마드 라디오의 화려한 부활을 꿈꾸어 보았습니다. 문득 1인 방송국을 차리고 싶다는 욕구가 되살아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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