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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산(泰山) 기행
김수종 2007년 05월 11일 (금) 03:01:02
사월이 끝날 무렵에 중국 산동성을 2박3일 동안 번갯불에 콩 구어 먹듯이 여행하고 왔습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몇 차례 중국 방문 중 가장 인상에 남는 여행이었고, 다른 사람에게 권하고 싶었습니다. 만약 앞으로 살아갈 날이 살아온 날보다 많은 젊은이들이라면 중국의 경치 좋은 다른 어떤 곳보다 먼저 구경하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나이 든 분들이라면 인생을 관조하는 기회로서 꼭 이 코스 여행을 권하고 싶습니다.

산동성은 남한에서 가장 가까운 중국 땅입니다. 넓이가 15만 평방킬로미터에 인구가 무려 9천500만 명이 삽니다. 중국의 성(省) 중에서 하남성(河南省)에 이어 인구가 두 번째로 많습니다. 옛날부터 인구는 많고 먹을 것은 적어 중국 통치자들이 신경을 써온 곳입니다.

   
  <봄의태산등정로>
비행기를 타고 청도에 도착하여 제남(濟南)까지 고속도로를 타고 4시간을 달리는 내내 산은 고사하고 구릉 하나 볼 수 없을 정도로 광대한 평원이 펼쳐졌습니다. 이 지루한 경치를 보라고 산동성 여행을 권하는 것은 아닙니다. 중국의 중심부를 만주에서 황하까지 태행(太行)산맥이 뻗어 있습니다. 이 거대한 산맥의 동쪽에 있다하여 지명이 산동(山東)입니다. 

산동성에는 구경할 두 곳의 명소가 있습니다. 태산(泰山)과 공자의 고향인 곡부(曲阜)입니다. 태산은 자연이긴 합니다마는 한 편의 중국 역사로 볼 수 있고, 곡부는 공자의 숨결이 느껴지는 유적지입니다. 두 곳 모두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 목록에 등재되어 있는 곳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태산과 곡부 두 곳 모두 중국 역대 황제들이 특별한 목적을 갖고 방문하고자 했던 곳입니다.

하늘 아래 뫼

“태산이 높다하되 하늘 아래 뫼이로다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 리 없건마는
사람이 제 아니 오르고 뫼만 높다 하더라”

연변출신 가이드가 청도공항에서 우리 일행을 맞고 관광일정을 말하면서 시조를 읊어 댔습니다. 금강산을 좋아해서 자신의 호도 봉래(蓬萊:금강산의 여름 이름)라 붙였던 조선조 문인 양사언(楊士彦)의 운문으로, 한국 사람이면 거의가 다 외는 구절입니다.

태산과 곡부 관광을 안내하기에는 역부족으로 보이는 가이드였지만 이 시조로 태산관광의 묘미를 돋우는 것은 마음에 들었습니다. 어쨌든 우리 일행은 이튿날 태산 꼭대기에서 옥황상제를 만나기로 되어 있기 때문에 말입니다.

이 시조도 그렇지만 태산은 우리 언어생활 속에 녹아 있는 존재입니다. “티끌모아 태산”이란 속담이 생각납니다. 지금 젊은이들도 쓰고 있는지 모르지만 “갈수록 태산”이란 관용어도 있습니다. 한국의 언어생활에까지 영향을 주었으니 중국역사에서 태산의 위상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바위마다 붉은 글자>

 
태산 정상부근에는 이 산을 상징하는 수많은 글들이 조각되어 있습니다. 그 중에 ‘오악독존’(五嶽獨尊)이란 글이 있습니다. 고대 중국인들이 신처럼 떠받들어 모시는 다섯 개의 산이 태산 숭산(崇山) 형산(衡山) 항산(恒山) 화산(華山)인데, 태산이 그 중 으뜸이라는 뜻입니다.

오악의 다른 산을 보지 못했으니 형체를 비교할 수는 없습니다. 높이 1545미터. 산동성의 평원 위에 우뚝 솟아 높이 느껴지기는 합니다. 그러나 중국의 서역이나 티베트의 8000미터 고봉과 비교하면 태산은 새끼 산입니다. 우리나라 산과 비교해도 결코 빼어나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태산이 중국인들에게 으뜸으로 보이는 것은 산수가 빼어나서라기보다는 그 역사적 배경, 즉 황제의 산이기 때문입니다.

중국의 역대 황제는 천하를 통일하고 나서 태산 정상에 올라 옥황상제에게 제사를 지냈습니다. 이것을 봉선(封禪)이라 합니다. 하늘로부터 집권의 정통성을 인정받는 의식이었습니다. 진시황도 그랬고, 여자로서 최초로 천하의 대권을 쥔 당나라의 측천무후도 태산 꼭대기에 올라가 봉선을 했다고 합니다. 황제가 아닌 공자는 태산 꼭대기에서 “태산에 오르니 천하가 작아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여기가 태산 정상>  

태산에 오르는 등정 코스는 4개가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시간이 빡빡한 일반 한국 관광객이 정상에 올라가는 방법은 태안(泰安)시에서 출발하여 마이크로버스를 타고 해발 700미터의 중천문(中天門)까지 가서 그 곳에서 돌계단을 따라 정상까지 올라가는 방법과 케이블카를 타고 남천문(南天門)까지 쉽게 이동하고 난 후 정상에 이르는 짧은 코스를 돌계단을 걸어 올라가는 방법이 있습니다.

   
  <정상으로 오르내리는 계단>
몸이 불편한 사람은 철가마(케이블카)를 타고 가는 게 좋겠지만, 이왕 어려운 태산 등정을 생각했다면 돌계단을 오르는 것을 권하고 싶습니다. 이게 바로 역대 황제들이 봉선의식을 치르기 위해 걸어갔던 등산로입니다. 지금의 돌계단은 물론 현대 중국인들이 만들어 놓은 것이지만 그 길은 원래 수 천 년 전부터 닦아 놓은 길입니다. 만약 태산의 역사와 유래를 아는 해설가만 있다면 이 돌계단을 오르며 중국역사를 배워도 대단한 지식을 쌓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두어 시간에 걸쳐 3000여 계단(산밑에서는 약 7000계단)을 오르니 기진맥진할 정도였습니다.

태산 꼭대기를 옥황정(玉皇頂)이라고 부릅니다. 놀랍게도 옥황정은 자연 그대로의 상태가 아니었습니다. 옥황상제를 모신 사당이 바위 위에 세워져 있었습니다. 정상에 오른 중국의 선남선녀들이 옥황상제 동상을 향해 절을 하고 있었습니다. 정상 일대는 상가, 호텔이 즐비했습니다. 장사하는 사람들의 호객과 등산객들의 떠드는 소리로 시장바닥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우리 일행 중 누군가 말했듯이 “자연을 어떻게 파괴하는지 수범을 보여주는 곳”이었습니다. 바위마다 글자가 새겨지지 않은 곳은 거의 없었습니다. 황제가 귀엽다고 지어준 이름을 가진 바위도 있고, 싯귀가 새겨진 것도 있고 가지각색이었습니다. 보는 눈에 따라 다를 것입니다. 관광자원을 잘 활용하는 중국인다운 개발이라고 칭송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정상 부근 정자 이름이 관일정(觀日亭)이었습니다. 우리나라 같았으면 일출정(日出亭)이란 이름이 아니었을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어쨌든 태산을 오르는 것은 자연을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중국의 역사와 정신을 들여다 보는 것이라고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설악산을 몇 번 더 오르는 게 더 의미 있을 겁니다.

역시 봄이라는 계절은 태산 산행에 더없이 좋았습니다. 구경하기도 좋았지만 만약 비가 온다면 화강암 돌계단이 대단히 미끄러워서 오르는데 애를 먹었을 것입니다. 고대 봉선의식을 치르는 황제를 위해 동원되었을 백성들이 얼마나 고생했을까 상상하고도 남을 만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 여행객 중에서도 비가 오는 태산을 오르기를 갈망하는 사람이 있는 모양입니다. 야망을 품은 정치인들이 그렇다고 합니다. 태산에서 비를 맞는 것을 용의 승천에 비유하는 덕담을 누군가 퍼뜨린 모양입니다. 10년 전 김대중 대통령이 야인일 때 태산을 찾았는데 마침 비가 내려 기분 좋은 얘기를 들었다고 합니다. 일부러 태산에서 비를 맞기 위해 일기예보를 보고 여행하는 한국 정치인도 있었다고 합니다.

아무리 문명이 발달되어도 사람은 이렇게 초월적인 것에 대해서는 약한 모양입니다. 우리 팀은 비는 고사하고 아주 맑은 하늘 아래 태산에 올랐으니 권력하고는 인연이 없는 사람들인가 봅니다.

곡부의 인상

   
  <곡부의 성곽>  
태산을 오른 후 곡부에서 하루 밤 유숙하는 것은 퍽 기분 좋은 일입니다. 태산에서 중국 역대 황제들의 봉선의식을 상상해보는 것만큼이나 곡부에서는 2500년 전 공자가 숨쉬고 생각하고 가르쳤던 분위기를 맛보는 것은 재미있는 일이었습니다.

오늘날 곡부는 시내 인구가 5만 명밖에 안 되는 소도시입니다. 춘추전국 시대의 곡부는 노(魯)나라의 수도였습니다. 고대 지식인들이 학파를 형성하고 천하를 논하며 사상의 꽃을 피웠던 곳이나 지금은 관광객에게 물건을 파는 사람들이 더 많은 것 같습니다. 지금 노나라의 흔적은 ‘魯’가 산동성 자동차 번호판의 심벌이라는 것뿐입니다. 어쨌든 오늘의 곡부를 독차지한 것은 공자인 것만은 분명합니다.

나는 이스라엘도 가본 적이 없고 불교의 성지도 가본 적이 없어 예수나 석가모니가 태어나 자랐던 곳의 현재 분위기를 알 수 없습니다. 그런데 곡부를 보면서 성지순례의 욕구란 것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유교에 유독 관심이 있는 것도 아닌데 “공자의 고향에서 그의 체취를 맡아 보는구나”라는 자위를 할 수가 있습니다.

   
  <공묘의 대성전>  
현란하게 발전하는 중국의 산업도시와 견주면 지금의 곡부를 보는 것은 영화에서 보는 20세기 초엽의 중국의 북경이나 상해를 보는 것과 비슷하다고 상상해볼 수 있습니다. 잘 포장된 도로만 제외하면 거리를 메운 저층 기와집, 시내를 둘러싼 성곽, 꾀죄죄한 복장의 시민들이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모습이 곡부와 공자를 연상시키는 데는 오히려 도움이 된다는 생각도 해보게 됩니다.

곡부의 정수는 공자의 사당 겸 기념관인 공묘(孔廟), 공자의 후손들이 대대로 살았던 공부(孔府), 공자의 가족 공동묘지격인 공림(孔林) 등입니다. 관광객들은 처음 곡부라는 도시의 겉모습을 보게 되고, 다음 공묘와 공부를 둘러싼 상가와 상인들을 보며 죽은 공자가 많은 사람들을 먹여 살리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울타리에 둘러싸인 공묘와 공부에서 200년 전 또는 2000년 전의 공자를 보게 됩니다.

공자를 2500년 전 춘추전국시대의 사람으로 생각하지만 공묘와 공부를 보고나면 왠지 공자가 진시황때 사람 같기도 하고 당송(唐宋)시대 사람 같기도 하고 명청(明靑)대의 사람 같기도 한 착각에 휩싸입니다. 그것은 중국의 연대기적 역사지식이 없는 탓도 있지만, 공자가 얼마나 중국역대 왕조에 영향을 미쳤는가를 공묘와 공부에서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북경의 자금성을 보며 중국대륙을 지배하다가 소멸된 근대 제국의 과거를 느낄 수 있다면, 곡부에서는 고대의 공맹사상이 오늘에 새롭게 살아 숨쉬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공묘에는 여러 채의 비각이 죽 늘어서 있습니다. 그 안에 크고 작은 비석들이 수없이 보관되어 있습니다. 그게 모두 역대 중국 황제들이 공자에 바친 비석입니다. 기록에 의하면 12명의 황제가 공묘를 방문했고 여러 차례 찾은 황제도 있다고 합니다. 특히 청대의 명군인 강희제(康熙帝)는 공자를 좋아한 사람입니다. 얼마나 좋아했느냐 하면 그가 베이징에서 만들어 곡부까지 보낸 비석이 증명합니다. 큰 비각을 차지하고 앉은 이 비석은 무게가 600톤입니다.

   
  <공자의 술>                                                                    <공림의 공자묘>

이 큰 비석을 어떻게 그 먼 거리를 운반해 올 수 있었을까요. 대 운하가 얼어붙을 때 장정 500명과 소 500두가 동원되어 끌어왔다고 합니다. 죽은 공자가 산 제왕을 움직였던 것입니다. 이 비각이 늘어선 곳을 보며 중국에서 공자와 황제의 관계를 한번 음미해보는 것도 관광의 묘미라고 생각합니다.

자금성의 황제집무실에 해당하는 태화전을 보고 우리나라 사람들은 경복궁 근정전의 초라한 크기를 생각하게 됩니다. 공묘의 대성전은 태화전과 더불어 중국 3대 전각의 하나입니다. 공자에 대한 예우가 황제에 준했다는 것을 뜻합니다.

공부는 공자가 태어나 자란 곳으로 공자의 가족이 자자손손 살았던 장원입니다. 물론 공부도 역대 황제들의 기부나 지원으로 지금과 같이 웅장한 규모가 되었습니다. 공부에는 옛날 재판소가 있습니다. 공자 가문이 곡부일대에서 대단한 봉건 권력을 행사는 세력으로 대대손손 살아왔음을 말해줍니다. 역사적 사실을 기초로 하면, 공자의 유품과 사상을 담은 소프트웨어가 수난을 당한 것은 진시황의 분서갱유와 모택동의 문화혁명입니다. 그 외의 시간에는 공자는 아무도 건드릴 수 없는 사상의 집을 갖고 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며느리의 길>  
공씨가문의 여자들은 궁궐의 여자들처럼 후원을 무대로 거의 외부와 절연된 생활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여자들의 거처와 다른 건물과의 사이에 있는 통로가 매우 비좁아 한 사람이 조심스럽게 걸어야 겨우 통과할 정도입니다. 공씨 집 며느리가 되려면 이 통로를 통과할 정도로 날씬해야만 했다고 합니다. 도둑이 들어도 물건을 들고 이 통로를 빠져 나갈 수 없도록 하는 일석이조의 설계라는 설도 있습니다.

곡부를 보면서 좀 엉뚱한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4대 성현으로 일컫는 석가모니 공자 예수 소크라테스 중에서 가장 현실적으로 출세하고 자자손손 부와 권력을 누린 사람이 공자가 아닌가하고 말입니다.


21세기 공자의 부상

곡부에서 예기치 않은 구경거리를 덤으로 보았습니다. 태산도 오르고 공묘도 구경한 후 호텔 식당에서 저녁을 먹는 우리 일행에게 새로운 관광정보가 소개되었습니다. 밤에 ‘공자 공연’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공자와 관련된 것이 무대에 올려진다고 들었을 때 나를 포함한 일행 모두의 머리에 들어오는 인상은 따분한 동작과 느린 음악이었습니다. 더구나 옛 건물로 가득 찬 소도시인데 그 무대 또한 답답한 실내일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럴 때 상상력을 발동한 발언은 위력을 발휘하게 됩니다. “문화혁명당시 홍위병들이 곡부를 유린하여 많은 유물이 파괴됐고, 그래서 중국이 오히려 우리나라 성균관에서 공자에 제사지내는 것마저 배워갔다고 하던데 그런 공연일지 모르죠.”

그 말이 맞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도 공자 마을에 왔으니 무엇을 어떻게 하는 지 한 번 보자는 생각에서 몇 사람이 공연구경에 나섰습니다.

공연장에 들어섰을 때 우리의 상상은 여지없이 깨졌습니다. 무대는 좁은 건물 안이 아니라 수천 명이 관람할 수 있는 야외 원형극장이었고, 신비로운 조명아래 펼쳐지는 공연은 따분한 공자의 제례의식 같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공자쇼>

 

그것은 무용과 음악으로 펼쳐지는 현란한 한판의 쇼였습니다. 중국 역대 왕조가 다 재현되고, 변방 소수민족의 기예가 소개되었습니다. 물론 조선족 춤과 노래도 나왔습니다. 인도춤, 중동의 벨리댄스, 중국의 곡예 묘기도 공연되었습니다. 이 쇼를 보면서 얼핏 라스베가스 쇼가 떠오르기도 했고, 퓨전쇼 같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러나 단순히 재미만을 제공하는 쇼가 아니었습니다. 인구 5만의 이 소도시의 힘으로는 연출을 할 수 없는 경지의 무대였습니다. 쇼의 구성도 헷갈리게 만들었습니다. 고대 중국병사들과 로마병사들이 무대를 휘젓고 다시 어울리는 내용이 있었습니다. 왜 로마병사가 등장하는 지 의아스러웠습니다.

쇼가 끝날 무렵 모든 출연자들이 거대한 무대를 꽉 메웠습니다. 그 가운데로 한필의 말이 끄는 수레에 하얀 옷을 입은 공자(孔子)가 관중에게 다가서며 손을 벌렸습니다. 중국병사도 소수민족 무희들도 로마병사도 인도의 배꼽춤 소녀도 미국의 엉클 톰도, 그리고 조선족 출연자도 모두 관중을 향해 머리를 조아렸습니다.

목청 좋은 너레이터가 중국어로 쇼의 피날레를 선언했습니다. 중국어를 모르니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큼직한 전광 자막판에 “벗이 있어 먼 데서 오니 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평화롭고 조화로운 사해(四海)”라는 한글 글자가 나오고 어느새 너레이터의 중국어가 나의 언어로 변해버리는 착각에 빠졌습니다. 아마 미국인이 있어도 “Harmonious World" 어쩌고저쩌고 하는 전광판 자막을 보며 비슷한 착각을 느꼈을 것입니다.

무대를 꽉 메운 출연진은 150명은 됨 직했습니다. 그러나 수 천 명이 들어갈 관중석에는 300명도 차지 않은 것 같았습니다. 이런 관객 규모에 힘이 빠질 만도 한데 출연자들은 관중들이 좌석을 떠날 때까지 조금도 자세를 흐트러뜨리지 않고 손을 흔들었습니다.

2500년 전에 살았던 공자가 21세기에 다시 화려하게 나타난 이유는 무엇일까 생각해보았습니다. 후진타오 체제 출범이후 강조되는 화평굴기(和平崛起)와 화해세계(和諧世界)라는 중국의 새로운 국가 이미지를 디자인하기 위해 공자가 다시 살아나고 있구나 하고 생각해보았습니다.

공자를 부정하고 비판했던 모택동의 문화대혁명과 홍위병의 광란, 30년 후 다시 공자사상을 21세기 국가이념으로 도입하는 후진타오 체제, 곡부의 관광 상점가에 내걸린 공자와 모택동의 초상화가 어지러움 속에서 21세기 중국의 이미지를 그려내는 것 같습니다. 그들은 미래를 위해 과거와 현재를 부정하지 않고 변형시키는 전략적 수완을 발휘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게 우리의 사고체계와는 아주 다르게 느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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