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리를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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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리를 보라!

오마리

2011년 06월 04일 (토) 01:00:29

이 세상과의 마지막 작별을 하기 위한 준비를 할 수밖에 없는 절박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빌딩의 가장 높은 곳에서 수십 미터 아래의 땅을 바라보며 서 있을 때, 비장한 마음으로 자신의 목을 매달기 위한 도구, 끈을 준비하고 있을 때, 아무리 노력을 해도 도저히 세상 안으로 돌아올 수 없음에 절망하여 자살이란 마지막 카드를 시도하려는 절체절명의 시각, 그 시간에 무엇을, 어떻게 느끼고 있었는지 그들의 심연을 헤아릴 수 있을까요?

생명은 소중한 것이다, 생명은 내 임의로 끊을 수 없는 것일 뿐더러 우리의 뜻대로 할 수 없는 신의 영역이며 인간의 영역 밖이다, 라고 사람들은 말합니다. 나도 그렇게 말한 적 많습니다. 그런 내가 어느 시점, 그들처럼 높은 빌딩 발코니에 서서 무섭도록 아득한 땅을 내려다 본 적이 있었습니다.
내 생애에서 잊어버릴 수 없는 그 밤, 아버지를 부르며 울었던 밤이었습니다.

껍질만 남은 청춘과 정열이 마치 질척거리는 빗길 위에 이리저리 휘몰리다 찢어진 낙엽처럼 처량해
보였고 살아온 그 많은 날들이 허위이고 가식이었다는 생각으로 삶에 회의를 가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왜 그렇게 살아왔는지, 앞으로 왜 살아야 하는지, 긍정적인 답을 얻을 수 없어 나는 어둔 밤 사무실 창을 열고 나가 발코니에 섰습니다. 그러기를 며칠 밤을 계속했습니다. 어찔어찔한 높은 곳에서 아득한 길거리를 내려다보며 오만 생각을 다 했고 별의별 상상이 떠올랐습니다. 머리통이 박살나겠지, 팔다리는 다 떨어져 나가겠지, 코가 뭉그러지겠지, 목을 매다는 것 그 또한 흉측하고 무서운 일이다, 그런 모습에서 어머니, 형제들, 지인들은 어떤 충격에 빠질까, 내일 아침 신문에 대문짝만하게 대서특필되어 죽은 다음에 더 유명세를 톡톡히 치르겠지. (이런 생각까지 한 사람이 어디 죽겠습니까!)

발코니 위에서 쳐다본 밤하늘 위로 은하계의 별들이 총총히 떠있는 모습을 보다가 갑자기 강물에 투신자살했던 버지니아 울프를 그린 영화에서 그녀가 엎어져 있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별들을 바라보자 제 정신이 돌아왔는지, 나는 결코 울프처럼 엎어져 물에 불어터진 모습으로는 죽지 않겠다, 아니 땅에 떨어지는 끔찍한 짓도 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든 것입니다. 사실은 무서웠거든요. 타인들에게 무서운 모습을 보이고 죽는다는 것도 싫었지만 저렇게 무수한 아름다운 별들 앞에서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렇다고 결코 죽고 싶은 마음이 절실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불면의 날들, 식음을 전폐했고 일도 수행할 수 없을 만큼 하루하루가 죽음과 같았으니까요.

“너는 결코 자살할 여자가 아니야.”
자살을 하겠다고 하는 내게 누군가가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 뜻은 두 가지로 해석해볼 수가 있었습니다. 첫 번째는 ‘너는 생에 집착이 강해 결코 죽지 않을 여자다.’ 두 번째는 ‘너는 겁쟁이여서 결코 투신 같은 것은 못할 여자다.’ 나는 생에 집착 같은 것은 없었고 훗날 생각해보니 겁이 무척 많은 여자였던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겁이 많아서인지 아직도 골골 팔십이라고 골골거리며 이렇게 살아 있습니다. 그런데 나와 가까웠던 세 명이 빌딩 꼭대기에서 떨어져 세상을 이미 떠났고 또 한 사람은 네덜란드 유학 중 자살을 했습니다. 먼저 떠나고 싶었던 나는 아직 살아있는데 오래 살 것 같던 사람들이 먼저 가버린 것이었습니다.

아나운서 송지선, 가수 채동하, 한국 축구계를 충격으로 몰아넣은 프로축구 승부조작 사건의 전직 프로축구 선수 정종관, 젊은이들이 줄줄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 충격적인 사건으로 입이 다물어지지 않습니다. 이곳 캐나다에서는 몇 년에 한 번이나 일어날까 말까 하는 유명인, 그것도 젊은이들의 자살이 한국에서는 자주 일어나고 있으니까요. 나약한 개인의 의지도 문제이지만 이렇게 자살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사회적 풍토는 그냥 지나칠 수 없는 현실입니다. 개인의 사생활에 문제가 생기면 직업조차 잃게 되고 그 사람의 품성까지 매도당하는 사회, 인터넷과 트위터는 인간성 파괴의 괴물로 전락할 위험도 깊어갑니다. 그런데도 자살 사건마다 인터넷, 언론 방송은 물론 한국사회는 실의에 젖어 있는 사람들을 오히려 파헤치고 발겨내어서 자살이란 막다른 골목으로 내모는 느낌이 듭니다. 돌아설 수 없는 길까지 가도록.

한국은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중 자살률 1위 불명예 국가입니다. 40분마다 1명씩 자살한다고 합니다. 아직도 살아가야 할 날들이 살아온 날보다 훨씬 많은 젊고 아름다운 세대들이 자신의 목숨을 초개처럼 내던지는 것은 충격이며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부자나 가난한 자, 노소,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자살자가 급증하고 있는 한국 사회에서 이 병리적 현상의 원인에 대해 우리 모두가 자성해야 합니다.
자살은 분명히 '사람의 생명’을 죽이는 행위이며 반사회적 반윤리적입니다.

나는 어떻게 지금까지 살아 있는가를 말하겠습니다.
발코니에 서 있기를 그만 둔 후, 성형외과의에게 달려갔습니다. 어느 날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은 나의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총기와 순수함을 잃은 사십대 초반, 병이 깊게 든 낯선 여인이 거울 속에 있었습니다. 어쩌다 내 얼굴이 이리 변하였을까, 성형을 하자, 그러면 삶이 달라질 것이야, 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의사는 얼굴을 요리저리 뜯어보다가 갑자기 내게 한 권의 책을 내밀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얼굴은 고칠 곳이 한 군데도 없어요.”
“마음의 병을 고쳐야 합니다.”
“분노와 미움을 모두 거두십시오.”
“이 책을 당신은 세 번 꼭 읽어야겠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한 번만 읽으라고 했지만 세 번 읽은 후 다시 만나지요.”

존 키호의 저서 '마인드 파워'(Mind Power, John Kehoe), 나는 지금도 그 책을 가지고 있으며 그 의사를 잊을 수 없습니다. 그때는 그랬습니다. 환자가 원하는대로 수술이나 하고 돈이나 벌면 될 일이지, 의사가 무슨 책을 준담. 그러나 그 의사를 만나지 못해 최후에 수면제라도 먹었더라면 지금 자유칼럼의 독자들을 만나는 행복감을 느끼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그 책을 읽고 명상을 시작한 후 드디어 악성(惡性)이 가득했던 지옥에서 벗어나 참 모습을 찾았습니다. 거기까지 도달하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이 필요했습니다. 스스로 살아야 한다는 의지, 일회(一回)의 삶 앞에서 혼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깨달음을 얻게 된 것입니다.

존재의 고귀함은 당신만의 특별함이다, '지금' 이라는 좁은 문을 통과해야만 한다, '이것' 또한 지나간다, 존재하는 모든 사물에 깃든 충만한 신비감과 신성함을 통하여 나의 본질을 보라, 지금 이 순간에 모든 생을 걸고 살아야 한다, 라고 흐르는 물처럼 <지금 이 순간을 살아라>의 작가 에크하르트 톨레는 잔잔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21세기에 '생명존중 사상’은 자연으로의 회귀와 함께 생각하는 사람, 현대문화의 주인공, 이성적 사고를 하는 우리, 호모사피엔스에게 중요한 이슈입니다. 자신의 생명을 존중하는 사람이 자연을 사랑할 수 있고 사람도 사랑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그 때, 절망의 시기에 노력도 해보지 않고 삶을 포기했더라면 바람이 흘러가고 붓꽃이 피어나는 초여름, 고귀한 이 시간의 가르침을 알지 못할 것이며 구름따라 천리 길을 떠도는 넉넉한 마음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림 (1.XXX.XXX.117)

버지니아울프 왜 자살을했을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