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지켜야 할 소중한 것들

인기검색어 : 자유칼럼, 에세이

홈 > 연재칼럼 | 김홍묵 촌철

우리가 지켜야 할 소중한 것들

김홍묵

2010년 11월 02일 (화) 00:41:36

그리 좋다는 천리포수목원을 지난주 다녀왔습니다. 충남 태안군 소원면 모항리 해안을 끼고 닭섬을 품은 18만평 야산에 펼쳐진 수목원은 희귀하고 기묘한 수목과 육생 수생 화초가 조화를 이루어 한 폭의 그림을 펼쳐놓은 듯합니다. 초입부터 잘 가꿔진 정원에 쉴 틈 없이 전개되는 수려한 나무들의 풍치에 압도당하는 기분이었습니다.

천리포수목원은 고 민병갈(閔丙渴, Carl Miller, 1921~2002) 선생이 자력으로 이룬 국내 최초의 사설 수목원입니다. 1962년 약간의 땅을 사들인 이후 1970년부터 수목원 조성사업을 시작해 40년 동안 다듬어 만들어진 걸작입니다. 2000년 국제 수목학회가 세계적으로 12번 째, 아시아에선 처음으로 인증한 ‘세계의 아름다운 수목원’입니다.

수종만 1만 3,200여 가지. 겹우산을 펼쳐놓은 듯한 닛사나무, 낙엽이 깃털처럼 날리는 중국 낙우송(落羽松), 300종에 이르는 사랑의 열매가 달린 호랑가시나무 외에도 가막살나무, 노각나무 등 처음 보고 듣는 나무가 신비감을 더해 줍니다. ‘밀러가든’이라 불리는 고 민 선생의 고택 주변에는 만리향(萬里香) 향내가 은은히 풍겨 정취를 더해줍니다.
아기 살결처럼 보드라운 바다모래에 발밑이 간지럽고, 핏빛 노을에 눈이 시리고, 물 빠진 닭섬 주변 조개잡이에 시름을 잊고, 제철 게장 맛에 입이 즐거운 곳, 자연이 천리포에 준 선물입니다. 하지만 수목원은 만리향보다 진한 민병갈 선생의 ‘한국사랑’을 가슴에 새겨주는 곳입니다.

독일계 미국인 칼 밀러는 1945년 24세 때 한국전 참전이 인연이 돼 주한 미군총사령부 고문관(47년), 유엔 군사원조단(52~53년)과 한국은행 고문(53~82년)으로 한국에 살면서 민병갈이라는 이름으로 귀화(79년)까지 했습니다.

“인생은 길어야 백년이지만 나무는 천년까지 산다”고 강조해온 선생은 “나는 한국의 수목과 결혼했다”며 평생 독신으로 검소하게 살았습니다. 결혼해서 미국에 함께 살자는 어머님의 간절한 소망을 뿌리친 ‘불효막심’한 민 선생은 불후천년의 천리포수목원을 남겨둔 채 빈 손으로 2002년 봄 흙으로 돌아갔습니다.

그이 못지않게 한국을 사랑하는 또 한 사람이 있습니다. 4대에 걸쳐 한국에 살며 인술(仁術)과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는 인요한(John Alderman Linton) 박사입니다. 1959년 전남 순천에서 태어나 연세대 의대 교수로 재임하면서 북한 지원활동도 하고 2004년부터 미국 장로교의 한국 대표를 맡고 있습니다.

1895년 한국에 온 진외증조부 유진 벨 선교사의 사위 윌리엄 린튼의 손자인 인 박사는 한국 선교 100년을 맞아 1995년 형 스티브 린튼과 함께 유진 벨 재단을 설립, 북한에 의료용품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연세대 의대를 졸업한 그는 응급의학 전문가로 한국형 앰뷸런스를 개발했고, 의사 소방관 등 300여명을 상대로 응급의학 강의도 했습니다.

1980년 5·18 당시 대학생이던 그는 ‘광주 시민군’의 외신 인터뷰 통역을 맡았다가 강제 출국될 뻔한 적도 있었습니다. 결핵 퇴치 운동을 위해 북한에 갔을 때는 ‘미제의 스파이’로 오해 받기도 했고, 은혜를 모르는 한국을 옹호한다고 미국 출입국 당국의 블랙리스트에 올라 있기도 합니다.

그런 인 박사가 지난해 개성에서 평양으로 가는 도중에 있었던 열차 칸 강의를 소개했습니다. 안내원이 “남조선이 우리보다 좀 앞선 것을 얘기해 보라우”라는 요청에 40분간 들려준 이야기입니다. 그는 남한이 북한보다 더 잘 살게 된 이유 세 가지를 들었습니다. 박정희, 근로자, 어머니입니다.

첫째 “나는 전라도에서 컸기 때문에 박정희 대통령을 나쁜 사람인 줄 알았다. 그러나 너무 몰랐다. 박정희 대통령은 위대한 사람이었다. 인권 문제는 기본 생계가 충족되어야 논할 수 있다. 박정희는 보릿고개를 없애준 사람이다. 중국이 잘 살게 된 것은 박정희를 공부했기 때문이다. 싱가포르의 이광요도 박정희 사상을 배웠다.”

둘째 “그 시절 구로공단 근로자들은 하루 16시간 씩 일했다. 열심히 일해 번 돈을 저축했다. 여자들은 머리카락까지 잘라 팔았다.”

셋째 “남조선의 어머니들은 근면하고 절약하며 억척같이 자녀들을 교육시켰다. 그 어머니들의 열정이 잘 사는 한국의 원동력이 됐다.” 이렇게 요약할 수 있는 내용입니다.

인 박사의 열강을 듣고 난 북한 안내원의 반응이 이채롭습니다. “줄 잘 섰디 뭐. 남조선 아이들은 미국 뒤에 줄섰고, 우리는 소비에트 러시아 뒤에 줄 서 가지고 이렇게 돼 버렸디.” “그러면 필리핀은 백 년 전에 미국 뒤에 줄을 섰는데 왜 그렇게 못살죠?” 인 박사의 다그침에 안내원은 입을 다물고 말았답니다.

한국인보다 한국말을 더 잘 하고, 한국인보다 막걸리를 더 좋아하는 인 박사는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우리(한국인)에겐 소중한 것이 많다. 자기 차를 운전할 수 있는 것, 수시로 친구 만날 수 있는 것, 통닭에 생맥주를 마실 수 있는 것, 따뜻한 방에서 자는 것, 여름날 에어컨 켜고 자는 것…. 이런 나라를 우리가 잘 지켜야 한다”고.

김윤옥 (210.XXX.XXX.145)

제가 영락교회 교인이어서 인요한 박사가 영락교회에 오셔서 북한 결핵환자를 돕자고 하실 때 더러 이념의 벽을 넘지 못하는 몇몇 사람 때문에 심히 부끄러운 적 있었습니다. 민병갈 선생이나 인요한 박사의 한국사랑은 우리가 결코 사랑 받을만해서는 더더욱 아닐 것입니다.

답변달기 ▼

2010-11-03 23:25:17

0		0

정구선 (59.XXX.XXX.173)

평소에 알고 있었던 내용이지만 다시 한번 되새길만한 내용입니다.

답변달기 ▼

2010-11-02 19:59:44

0		0

김창식 (110.XXX.XXX.243)

아, 인요한 선생님! 제가 제일 존경하고 좋아하는 분입니다. 개인적으로 저와 고향도 같습니다.
어릴 때 하도 장난이 심해 동네 어른들 사이에 '개구장이 전(John)'으로 유명했다고 합니다.
그분은 아직도 고향에 남아 있는 그 시절 친구들과 흉금을 터놓고 정을 주고 받으며 스스럼없이
사투리로 이야기 합니다. 직접 뵙진 못했지만 참으로 진정성이 느껴지는 분입니니다.

답변달기 ▼

2010-11-02 11:09:58

0		0

다음에 해당하는 게시물 댓글 등은 회원의 사전 동의 없이 임시게시 중단, 수정, 삭제, 이동 또는 등록 거부 등 관련조치를 취할 수 있습니다. [운영원칙]

욕설 및 비방, 인신공격으로 불쾌감 및 모욕을 주거나 명예를 훼손하는 내용
다른 회원 또는 제3자의 사생활 침해 및 개인정보 유출
공공질서 및 미풍양속에 위반되는 내용을 유포하거나 링크하는 경우
불법복제 또는 해킹을 조장하는 내용
영리 목적의 광고나 사이트 홍보
범죄와 결부된다고 객관적으로 인정되는 내용
지역감정이나 파벌 조성, 일방적 종교 홍보
기타 관계 법령에 위배된다고 판단되는 경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