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에서 인심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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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에서 인심 난다

김홍묵

2010년 10월 14일 (목) 01:39:04

‘척척척척척 발걸음/ 우리 김 대장 발걸음…’
지금 북한에선 보름 전 노동당 대표자회의에서 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과 당 중앙위원회 위원으로 임명된 김정일의 3남 김정은을 찬양하는 노래 ‘발걸음’이 울려 퍼지고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북한 인민들의 반응은 냉소적 부정적입니다.
“스물 몇 살짜리가 세습권력의 후계자가 됐다니까 동네 사람 모두가 기막혀하는 눈치지만 공개적으로 말은 하지 않고 있다”, “가족끼리는 나라에 망조가 들었다고 푸념하고 있다” 베이징 발 보도 내용들입니다.

경험 부족과 어려운 북한 경제를 연계시키는 불안도 있습니다. “먹고 살기도 바쁜데 그런 후계 문제엔 신경 쓰기도 귀찮다”, “나이가 어려 무슨 경험이 있어 북한을 이끌겠냐”는 것입니다. 알려진 업적도 없는 데다 지금까지 어디서 무엇을 했는지도 몰라 불안하다는 반응입니다.

더욱 노골적인 불만도 있습니다. 한 국경경비대 군인은 “누구는 부모 잘 만나 누릴 것 다 누리고 사는데 나는 부모 잘못 만나서 이 젊은 나이에 배나 채우려고 다니니…”라고 체념했습니다. 또 다른 주민은 탈북한 형제에게 “아들도 뭣한데 군대하곤 동떨어진 여동생 김경희까지 대장으로 승진한 것을 보면 정말 말세다. 나라가 다 미쳐가고 있다”고 전화로 불평을 털어 놓았다고 합니다.

20세기 지도자들 중 사후에 방부처리 돼 미이라로 남아있는 인물이 4명 있습니다. 사상 최초로 공산 혁명에 성공한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레닌(Vladimir Lenin: 1870~1924), 베트남을 통일한 호치민(胡志明: 1890~1969), 중국을 공산화한 마오쩌둥(毛澤東: 1893~1976) 그리고 북한의 김일성(1912~1994)입니다.

공통점은 모두가 혁명가이자 정치가입니다. 동족끼리 전쟁을 한 주역들입니다. 레닌을 제외한 3명은 동양인입니다. 혁명에 성공한 이후 모두가 죽을 때까지 최고 권력자의 지위를 누렸습니다. 레닌이 동상을 철거 당하는 수난을 겪었지만 나머지 동양 지도자들은 사후에도 인민의 존경을 받고 있는 것 같습니다.

다른 점은 시기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국력도 강화하고 경제도 발전시켰지만 북한만은 숙원인 ‘쌀밥에 고깃국’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어느 누구도 시도조차 하지 않은 세습정치를 북한만 이어가고 있습니다. 허기진 인민이 3대를 이어 배를 곯리는 세습 지도자에 대한 눈길이 곱지 않은 이유도 짐작이 갑니다.

당연한 일이지만 김정일의 장남 김정남도 “세습에는 반대”라고 분명히 말했습니다. 맏이로 아버지의 인정을 받지 못하고 해외에서 떠돌이 생활을 하고 있는 그가 아버지가 챙겨주는 그나마의 생활비마저 보장해 줄지 모르는 둘째 동생 체제에 찬사를 보낼 리는 만무하기 때문입니다. 충녕대군(세종)에게 양위했을 때 태종의 맏아들 양녕대군의 심경이 그러했을지 모르겠습니다.

공교롭게도 김정은의 ‘세자 책봉식’날인 지난 10일 망명 정객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가 타계했습니다. 김일성의 측근으로 ‘주체사상’의 틀을 마련한 황씨는 두 달 전 “어린아이를 후계자로 내세우는 3대 세습은 권력 다툼의 명분이 돼 ‘김씨 왕조’는 망하게 될 것”이라고 단언했습니다. 그런 그가 자신의 염원과 달리 진행되는 김정은 체제의 공식화를 두 눈 뜨고 볼 수가 없어 스스로 눈을 감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저 쪽 걱정만 할 때가 아닌 것 같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가공할 일들도 나라를 다 미치게 할 망조는 아닌지 걱정스럽습니다. 공맹(孔孟)의 윤리 도덕을 강요할 수는 없지만 윗물이 맑지 않아 아랫물이 흐려지는 악순환이 확대 재생산되고 있으니 안팎으로 염려를 놓을 수가 없습니다.

서민법안 처리는 뒤로 미룬 국회가 지난 2월 자신들의 노후보장 연금액을 월 120만원으로 올리는 헌정회 육성 법안을 슬그머니 통과시켰습니다. 그것도 재적의원 191명중 187명 찬성(반대 2명, 기권 2명)이라는 압도적 지지로 말입니다. 비리 사건 연루 등으로 의원 자격을 상실한 전직 의원들에게까지 혜택을 주는 법입니다. 샐러리맨이 20년간 반부담한 국민연금보다 많은 돈입니다.

법무부는 8ㆍ15특사 대상 명단에 비리 연루 법조인 8명의 명단을 빼고 자료를 발표했습니다.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전직 부장판사 부장검사들인데도 “유명인이 아니어서”그랬다는 것입니다. 이밖에도 전직 교육감·군수·구청장·경찰서장·공기업 사장·은행총재 등의 이름도 빠졌습니다. 해명은 “통상 사면 대상자 모두를 보도 자료에 포함시키지는 않는다”였습니다.

청문회에서 외교수장 내정자가 부정교합으로 병역 면제된 사실을 두고 입을 벌려 확인하려 한 사태나, 국정감사에서 국방장관이 “내 말은 안 믿으니 대통령에게 물어보라”고 숨통 터지는 말을 내뱉은 처사도 우리가 바라는 국회의 위상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지역 주민을 위한다며 산낙지를 들고 와 ‘먹물낙지’ 발설을 한 자치단체장과 함께 먹는 모습은 국감이 아닌 코미디로 밖에 비치지 않습니다.

신체는 정상이 아닌데도 위장 전입과 부동산 투기에는 능한 사람들이 고위 공직에 곧잘 올라가서 그런지 재수생들의 위장 전입이 부지기수라고 합니다. 서울의 학원에서 공부한 지방 출신 재수생들이 주민등록을 서울로 옮겨야 서울에서 수능시험을 볼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대학도 들어가기 전부터 그런 탈법을 저지른 청소년들이 늘어나면 위장 천국이 되지나 않을지 우려됩니다.

‘대양 해군’을 자처한 지 1년도 안 돼 적함인지 새떼인지 구분을 못해 함정이 두 동강 난 해군은 슬그머니 그 구호를 내렸다고 합니다. 탱크는 포신이 찢어지고, 전투화는 물이 새고, 하극상 사건은 해마다 기하급수로 늘어나고 있습니다. 심지어 전직 육군 중위가 카지노에서 18억 원을 탕진하고는 “대통령을 암살하고 할복하겠다”고 협박하는 지경입니다.

‘강성 대국’이든 ‘공정한 사회’든 백성이 배가 부르고 신뢰가 돈독해야 가능합니다. 곧고 단단한 재목으로 기둥을 세우면 서까래가 뒤틀려 비가 새거나 용마루가 내려앉지 않습니다. 잘 지은 집 주위에는 수려한 나무와 화초를 심게 되고 이웃이 부러워합니다. 그런 대갓집에서는 과객들에게 밥과 잠자리를 제공하는 노블리스 오블리제도 솔선하게 됩니다. 신뢰가 깨지고 배가 고프면 갈등이 증폭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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