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음에 관한 단상

인기검색어 : 자유칼럼, 에세이

홈 > 연재칼럼 | 김영환 사에라

소음에 관한 단상

김영환

2006년 09월 20일 (수) 00:00:00

시끄러운 것이 질색인 필자에게 지나간 여름, 며칠간의 매미소리는 정말로 견디기 어려웠습니다. 나무가 우거진 아파트 단지에 서식하는 매미 떼 울음소리가 하도 요란하여 복중(伏中)인데도 창문을 닫아야 했습니다. 주거지의 소음기준이 60데시벨인데 매미 울음이 무려 70～80데시벨로 시내버스 지나가는 소리와 비슷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소음으로 치자면 서울 시내버스와 지하철 내부가 세계에서 금메달감일 것입니다. 거기에 붉은 띠를 머리에 두른 각종 노조와 NGO 등 시위대가 진을 치고 구호를 외쳐대는 주요 건물 앞을 머리에 떠올리면 더욱 시끄럽게 느껴지는 것이 우리나라입니다.
그런데 지난 7월 벨기에 태생의 여류 디자이너 안나 마리아 코르넬리(35)가 노란 스커트를 머리 위로 뒤집어쓰고 지퍼를 잠그면 큰 호박덩어리처럼 외부의 소음을 차단해주는 희한한 의상(?)을 발표해 화제를 뿌렸습니다. 필자는 그 기발한 고안에 경탄하면서도 "유럽이 얼마나 시끄럽다고 저 호들갑일까…" 하고 자문했습니다.

서울 시내버스나 지하철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는 휴대폰 대화로 그 소음이 인내의 한계를 넘고 있습니다. 이런 시민들이 휴대폰 없던 시대엔 어떻게 살아왔는지 정말 기적이 아닐 수 없습니다. 지하철의 소음은 가관입니다. 환승 역 신호 음악, 철도청의 새로운 서비스 각오, 각종 정부기관의 홍보에다가 한강 다리 건너갈 때 '어디 어디 제공이었습니다'라는 말과 함께 짧은 명곡 멜로디마저 감상시켜줍니다. 국민들의 독서열이 낮다고 비판하지만 지하철에선 진지한 책을 읽기엔 정신이 너무 사나우니까 휴대폰으로 장난하고 무료신문이나 뒤적이는 거지요.

지하철을 혹평하자면 창의적인 사고를 방해하는 정보화 시대의 역설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제 대중교통기관은 사적 영역이 아니라 공적 영역임을 서비스 제공자나, 이용자 모두가 깨달아야합니다. 프라이버시를 존중하는 대중교통 환경을 만들어야 나 홀로 출퇴근에 집착하는 운전자가 조금이라도 줄어들 것입니다. 파리 만국박람회를 겨냥해 1900년 7월에 처음 개통된 파리 지하철이 차내에서 알리는 것이라고는 종착역에서 '테르미뉘스(종점)'라는 말뿐입니다.

우리 사회의 몰상식한 소음은 아파트 단지도 예외가 아닙니다. 오정희의 단편 '소음공해'에서 아랫집에 의해 소음으로 오해되는 지체장애자의 휠체어 같은 인간적인 소음이 아니라 날벼락처럼 울리는 승용차들의 경적입니다. 누가 건드렸는지 모르지만 차가 비싸면 얼마나 비싸다고 열 번, 스무 번씩, 온 단지의 수백, 수천 명의 고막을 흔들어놓는 것일까요. 정치권도 마찬가지입니다. 정치지도자들이 하도 독설을 뿜어대니 얼굴만 나와도 시청자들이 채널을 돌려버립니다. 국민들은 대화의 상대가 아니라 '소음'으로 홍보 당하는 객체로 전락하는데 분노하는 것이겠지요. 그런 이전투구(泥田鬪狗)의 소음이 결코 미래를 향한 승부라고 생각되지 않습니다.

개발연대를 보여주는 우리나라 영화에서는 도로에 뒤엉켜 무질서하게 빵빵대는 온갖 자동차들의 경적과 소음으로 서울의 정체성을 묘사했던 때가 있습니다. 시골에서 보따리를 들고 올라온 주인공이 서울역에서 내리면서 목격하는 첫 장면이었습니다. 그때 그렇게 서로 빨리 가려고 설쳐댄 것이 오늘 우리를 여기까지 데려온 삶의 역동성이었는지는 모릅니다. 그 때와 비교하면 지금은 길 위에서의 자동차 경적 하나만 보아도 우리 생활의 외부에 존재했던 소음이 격감했습니다. 그러나 그때는 우리 밖에만 존재했던 '소음'이 지금은 기생충처럼 우리 내부로 깊숙하게 파고들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 소름끼치는 '소음'을 떼어내야 개인이나 조직이나 진지한 미래의 설계에 몰두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음에 해당하는 게시물 댓글 등은 회원의 사전 동의 없이 임시게시 중단, 수정, 삭제, 이동 또는 등록 거부 등 관련조치를 취할 수 있습니다. [운영원칙]

욕설 및 비방, 인신공격으로 불쾌감 및 모욕을 주거나 명예를 훼손하는 내용
다른 회원 또는 제3자의 사생활 침해 및 개인정보 유출
공공질서 및 미풍양속에 위반되는 내용을 유포하거나 링크하는 경우
불법복제 또는 해킹을 조장하는 내용
영리 목적의 광고나 사이트 홍보
범죄와 결부된다고 객관적으로 인정되는 내용
지역감정이나 파벌 조성, 일방적 종교 홍보
기타 관계 법령에 위배된다고 판단되는 경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