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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우기 안 잊어 버리기
임철순 2007년 03월 23일 (금) 11:59:28
자유칼럼에 글을 쓰면서, 걸핏하면 남의 시를 베껴 먹고 오려 먹고 지져 먹고 찜쪄 먹고 하다가 지난 번에는 30여년 전에 내가 쓴 것까지 끌어냈습니다. 안 나가려고 버티는 강아지의 목줄을 억지로 당겨 집을 나선 기분입니다.

그런 남루 같은 것들이 더 있긴 하지만 속옷을 자꾸 보이면 남들에게 혐오감을 주게 됩니다. 앞뒤와 제목이 기억나지 않는 청마 유치환의 글에 ‘속옷이 보이지 않게…’ 그런 말이 있는데(또 베껴 먹었다!), 사람은 되도록이면 누추한 속옷이 보이지 않게 잘 여미고 살아야 합니다.

하여튼 그렇게 남의 시를 울거먹다가 어느 날 점심식사 자리에서 시를 몇 개나 외우고 있느냐는 후배의 질문을 받았습니다. 글쎄, 한 열 개쯤? 이렇게 말하고 나서 금세 후회했습니다. 에이,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내가 열 개밖에 못 외울까? 이런 생각이었지요.

그럼 몇 개나 될까? 잘 모르겠습니다. 일 삼아 손 꼽으면서 읊어 보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다만 가문의 명예와 개인의 인격을 걸고 말하건대, 열 개는 훨씬 넘는다는 걸 이 자리를 빌려 강력히 천명해 두는 바입니다.

시를 외우는 일이라면 은퇴한 회사선배가 생각납니다. 그는 견습기자 면접을 할 때, 좋아하는 시를 흔히 묻고 외워 보라고 했습니다. 그의 자전에세이가 참 좋더라고 말한 후배에게 어느 대목이 좋더냐고 캐묻고는 그 대목을 외워 보라고 해서 여러 사람을 질리게 만들었던 분입니다. 나도 후배들에게 자기가 쓴 기사를 왜 못 외우느냐, 한 번 쓰면 외우는 거 아니냐고 따진 적도 있지만, 이제는 그러고 싶지 않습니다.

어쨌든 그 분은 ‘울음 우는 아이는 우리를 슬프게 한다…’로 시작되는 안톤 슈낙의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을 줄줄 외웁니다. 특히 ‘세번째 줄에서 떨어진 광대’라는 표현에 감탄하며 시처럼 읊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그 분의 생각은 이런 것 같습니다. 좋아하면 자꾸 읽게 되고 자꾸 읽으면 저절로 외우게 되는 것 아닌가. 그러나 자꾸 읽게 되는 글로는 사랑하는 여인의 편지 만한 것이 없을 것입니다. 읽고 또 읽고 더 읽고 다시 읽고 하다 보면 머리 속에 깊이 새겨지게 마련입니다.

어쨌든 시를 외우는 데는 역시 짧은 게 좋습니다. ‘너무 길다’가 전부인 르나아르의 <뱀>보다 더 짧은 게 있을까요? 안도현의 <너에게 묻는다>는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가 전부입니다.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는 정현종의 <섬>이나 고은의 절창 <그 꽃>,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은 매우 짧지만 울림이 아주 큰 작품입니다.

그렇다고 시만 외우고 살 수 없습니다. 대한민국은 시 말고도 외워야 할 것들이 참 많은 나라입니다. 구구단은 당연하지만, ‘우리는 대한민국의 아들딸 죽음으로써 나라를 지키자’라는 우리의 맹세를 외워야 했고, ‘반공을 국시의 제일의로 삼고…’라는 혁명공약은 물론,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는 국민교육헌장, ‘나는 자랑스런 태극기 앞에…’라고 다짐하는 국기에 대한 맹세 등등. 이런 걸 못 외운다고 선생님께 혼이 났던 기억이 저마다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기억은 얼마나 부정확한 것인지 모릅니다. 미당 서정주의 시 <밤이 깊으면>의 시작을 나는 ‘밤이 깊으면 순아 너를 생각한다. 달래마늘같이 쬐끄만 순아’라고 외우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연히 다시 보니 미당이 부른 것은 순이가 아니고 숙이였습니다. 달래마늘같이 쬐끄만 그의 부인 이름은 방옥숙이었지요(최근 작고한 오규원의 시에는 ‘물푸레 나무 한 잎같이 쬐끄만 여자’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달래마늘과 물푸레나무 한 잎의 차이가 재미있지 않습니까).

언젠가 고등학교 선ㆍ후배들이 저녁을 먹을 때 ‘이화에 월백하고…’로 시작되는 고려시대 문인 李兆年(이조년)의 시조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초장 중장에 이어 종장은 ‘다정도 병인 양 하여 잠 못 들어 하노라’로 나는 알고 있는데, 선배 한 분이 ‘다정도 병이런가 하여’가 맞다고 우겼습니다. 한 동안 입씨름을 하다가 다른 사람이 “뭘 그렇게 자꾸 따져? 다정도 병인개벼, 잠이 안 온당게, 이러면 되잖여?” 그래서 한바탕 웃었습니다.

두 가지 중 어느 표현이 더 좋은가. 원래가 한시인 것을 우리 말로 옮긴 데다 국어교과서가 고쳐져서 서로 다르게 배우게 된 것 같습니다. 그러나 결국 사람은 저마다 자신에게 절실한 쪽으로, 필요하고 편한 쪽으로 기억을 쌓고 그 기억을 유지ㆍ보수하며 사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모든 시는 저마다 사람의 기억 속에서 그 사람을 위해 자라나고 나이 먹고 그러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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