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과 함께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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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과 함께 살기

황경춘

2010년 04월 26일 (월) 00:27:35

아내가 암 진단을 받고 위 전체를 절제하는 수술을 받은 것이 벌써 11년 전 이야기입니다. 아내의 경우, 다행히 암을 조기에 발견했고 재발의 위험을 덜기 위해 수술부위를 당초 예정보다 넓힌 덕분에 수술 후의 항암치료는 일절 없었습니다. 암환자들이 보통 많이 겪는 항암치료의 고통은 그래서 면할 수 있었습니다.

암 치료는 일반적으로 5년을 하나의 고비로 삼아 그때까지 재발이나 타 부위 전이(metastasis)가 발견되지 않으면 일단 성공했다고 봅니다. 그러나 그 뒤에도 정기적인 정밀검사를 계속하는 것은 5년이 훨씬 지나도 재발이나 전이를 경험하는 예가 많기 때문입니다.

암 수술 후 5년이 지나도 ‘완치’를 장담할 수 없으니 자연히 암의 공포가 본인은 물론이고 주위 가족들을 노상 괴롭히기 마련입니다. 일종의 PTSD(외상 후 스트레스장애) 현상까지가 관련자를 괴롭힙니다.

아내의 금년도 정기 검진은 4월 7일에 있었고 주치의와의 면담은 우리 집안 행사가 끼어있는 관계로 2 주일 후인 4월 21일로 결정했습니다. 검사결과를 기다릴 때의 심정은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반나절이 넘게 걸리는 네댓 가지 검사를 마치고 나면 전날 밤부터 물을 포함한 일체의 음식을 들지 않은 아내는 긴장과 허기증으로 그야말로 초주검 상태가 됩니다.

아내는 암에 대한 불안감이나 공포감 같은 것을 내색하지 않는 냉정한 성격으로 우리를 놀라게 했습니다. 아내의 경우 환자에 대한 ‘암의 고지’에 따른 문제는 없었습니다. 어떤 경로를 통해서인지 모르지만 환자가 먼저 자기 병을 알아버린 것입니다. 그리고도 아내는 평정심(平靜心)을 잃지 않고 평소의 유머감각도 그대로 유지했습니다. 수술을 받는 날도 평소와 별 다른 기색 없이 “갔다 올게요”하며 손을 흔들며 수술실로 들어가는 아내를 보며 모두 그럴 수가 있느냐고 놀랐습니다.

저는 1960년대 초 당시로는 희귀한 구강암(口腔癌)으로 선친을 잃은 뒤부터 암에 대한 독서를 많이 하고, 따라서 암에 대한 두려움도 유난히 많이 가지게 되었습니다. 70년대인가 80년대에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암보험이 도입되자 별 주저 없이 가입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니 아내의 암 발병에 본인보다 더 겁을 먹은 것이 저일 것입니다.

5년이라는 고비가 일단 지난 뒤에도 아내의 건강에 대한 불안은 여전히 계속되었습니다. 아내의 사소한 몸 상태 변화에도 암 관련 가능성을 먼저 생각할 정도로 소심했습니다. 이번 검사에서는 결과를 기다리는 시간이 2주일이나 되기 때문에 불안한 시간도 그만큼 길어 더욱 초조했습니다. 한편으로는 급한 이상(異狀)이 있으면 의당 병원에서 연락이 오겠지 하며 초조한 마음을 달랬습니다. 당일 아침 TV에서 암의 재발과 전이로 고생한 두 쌍의 부부 이야기가 방영되어 불안이 가중되기도 했습니다.

주치의와의 면담이 종래의 외래병동이 아니고 새로 생긴 이 병원의 암센터로 옮겨진 것도 불안했습니다. 시간이 되어 상담실로 들어가니 주치의는 옆방에서 다른 환자와 아직 면담 중이었습니다. 간호사가 두 대의 대형 컴퓨터 화면에 아내 검사결과를 불러냈습니다. 습관적으로 저는 그 화면 아래쪽에 있는 ‘진단 결론’이란 부분에 눈을 돌렸습니다. 그러자 영어로 ‘within normal limit’(정상)이라고 쓰여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순간 “살았구나”하는 생각부터 들었습니다.

아내의 수술을 직접 담당했던 첫 번째 주치의는 4~5년 전에 뇌졸중으로 돌아가셨습니다. 경상도 말씨의 이번 주치의는 검사결과를 좀 더 친절히 설명하는 편입니다. “별 이상이 없습니까”하고 묻는 저에게 “그럼요. (수술 후) 10년이나 되지 않았습니까”하고 다짐하는 그의 모습이 이날따라 더욱 다정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동안 10년이란 세월이 흘렀습니다. 아내와 저는 처음 2년간은 3개월마다, 다음 3년간은 6개월에 한 번씩, 그리고 다음 5년간은 1년에 한 번씩 지하철로 한 시간 거리에 있는 이 병원을 찾았습니다. 5년이 지나서는 주치의가 이제는 보통 정기 건강진단을 받는다는 가벼운 기분으로 오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어디 그렇게 가벼운 마음으로 오게 되는 병원문턱입니까. 검사 결과를 기다릴 때의 심정은 입시 합격자 발표를 기다리는 학생이나 판결 선고를 받는 피고인 마음에 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나라도 네 사람 중 한 사람이 각종 암에 걸리고, 세 명의 사망자 중 한 사람의 사망원인은 암 관계 질환이라고 합니다. 옛날보다 병원을 찾는 사람이 늘고, 현대인의 식생활과 생활습관의 변화로 통계상의 암환자 수가 늘고 있다고 합니다. 암은 이제 희귀병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렇게 보편화한 암에 대한 인간의 결정적 대항수단은 아직 개발되지 않았습니다. 이런 사실에 비추어 이제는 암에 대한 우리의 태도를 암과 투쟁한다는 자세가 아니라 암과 공존(共存)한다는 쪽으로 바꾸어, 인간과 암 사이의 공존의 지혜를 연구하는 편이 더 현실적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10년 전 주치의로부터 될 수 있는 대로 같이 여행을 많이 즐기라고 권하는 말을 들었을 때 좀 이상하게 느꼈지만 이제 와서 생각하면 긍정적인 생활태도를 가지라는 뜻과 함께 시사(示唆) 받는 점이 많습니다. 암과 사생결단 싸우지 말고 같이 살아가는 여유 있고 긍정적인 마음을 가져볼까 합니다.

차덕희 (121.XXX.XXX.158)

연세에 부부가 해로하시는 것은 복이있으신 것임니다.황선생님 글은잔잔해서 고통조차 순화시켜 줍니다.어떤분[김흥숙의"동행"]은 사회문제를 보는 시선인데,가끔 한번씩 겪으신 세월에 대해 글도 부탁드림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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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4-26 15:2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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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203.XXX.XXX.199)

감사합니다. 노력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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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4-29 11:3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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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내천 (112.XXX.XXX.244)

제 주위에 지인 한 분은 뇌종양이 있는데도 수술도 하지 않고 음식도 가리지 않으면서 "암아, 나랑 같이 살자~" 이러면서 정말 태평스럽게 지낸답니다. 그래서 그런지 더 이상 악화되지 않고 지낸답니다. 마음으로 병을 제압하는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면 암도 별 것 아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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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4-26 09:4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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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203.XXX.XXX.199)

예, 수술도 필요하지만 긍정적 마음가짐도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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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4-29 11:3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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