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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나의 집 -『행복의 건축』
김이경 2010년 03월 29일 (월) 00:17:15
어릴 적 제 소원은 내 방을 갖는 것이었습니다. 좁은 방에서 형제들과 부대끼다 보니 늘 호젓한 나만의 공간이 있었으면 하고 바랐지요. 스물이 넘어 내 방을 가진 뒤에는 독립을 꿈꿨습니다. 엄마의 잔소리를 듣지 않고 내 맘대로 살 수 있는 공간을 꿈꿨지요. 서른이 한참 넘어 독립을 했습니다. 꿈이 이루어졌으니 행복해야 하련만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저물녘 남의 집에서 새어나오는 불빛에도 눈시울이 붉어지며, 지상에 행복한 나의 집은 없는 것일까, 쓸쓸해했습니다.

누구는 현재에 만족하지 못하는 제 못난 성벽을 탓하겠지요. 하지만 집을 생각하면 한없이 부풀기만 하는 게 꼭 저만의 욕심일까요? 지하방에 살 때는 햇빛 비치는 지상의 방이면 그저 행복할 것 같고, 방 두 칸이 생기면 번듯한 집 한 채가 그립고, 셋집 살이를 할 때는 내 집 마련만 하면 아무 걱정이 없을 것 같지만, 내 집은 또 다른 불만을 가져옵니다. 그러니 지금도 윗집에서는 저리 망치질을 해대는 것이겠지요.

매력적인 에세이를 쓰는 작가 알랭 드 보통은 『행복의 건축』에서 그런 우리의 마음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어떤 장소의 전망이 우리의 전망과 부합되고 또 그것을 정당화해준다면, 우리는 그곳을 ‘집’이라고 부른다. 집을 사랑한다는 것은 우리의 정체성이 스스로 결정되는 것이 아님을 인정하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물리적인 집만이 아니라 심리적인 의미의 집도 필요하다. 우리의 약한 면을 보상하기 위해서다. 우리에게는 마음을 받쳐줄 피난처가 필요하다.”

보통의 말처럼 집은 무엇보다 몸과 마음의 피난처입니다. 외부의 위험으로부터 우리의 몸과 마음을 보호해주는 은신처로서, 집은 우리에게 편안함과 위로와 안식을 약속합니다. 쾌적하고 안락한 집을 갖고 싶어 하는 욕심도 기실 이런 편안함과 안식을 찾는 마음의 발로이지요. 아름다운 집을 짓고 거기 머물고 싶은 꿈, 그것은 아름다운 사람으로 살고 싶은 꿈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아름다운 사람으로 살기가 어렵듯 아름다운 집에서 살기도 쉽지 않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뭐니 뭐니 해도 돈입니다. 집을 장만하는 데에도, 그 집을 아름답게 유지하는 데에도 돈이 필요합니다. 물론 아주 부지런하고 솜씨 좋은 이들은 큰돈 들이지 않고 근사한 집을 만들기도 하지만, 자주 볼 수 있는 예는 아닙니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을 때 좀더 편안하고 근사한 집에 살 수 있는 건 분명합니다. 그러나 돈이 모든 걸 약속하지는 않습니다. 스탕달의 말처럼 “행복을 바라보는 관점만큼이나 아름다움의 스타일도 다양”하기에 가끔은 웃지 못 할 일들이 벌어집니다.

이 책의 48쪽과 49쪽엔 두 장의 사진이 실려 있습니다. 48쪽은 엄숙한 고전주의 스타일의 저택이고 49쪽은 옛날 이야기책에 나올 법한 고딕 스타일의 저택인데, 모양도 느낌도 전혀 다른 이 두 집이 실은 한 건물의 앞뒤랍니다. 취향이 정반대인 집주인 부부를 만족시키기 위해 건축가가 짜낸 고육지책으로 이런 이상한 집이 탄생한 것이지요. 그런데 과연 주인 부부가 이 ‘두 얼굴의 집’에서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았을지는 영 의문입니다.

이 책에도 나오지만, 유명한 건축가가 지은 근사한 저택에 산다고 해서 그 삶이 외관만큼 멋진 것은 아닙니다. 예전에 제가 다니던 회사 건물은 국내의 저명 건축가가 지은 건축상 수상 작품이었습니다만, 그곳에서 1년 6개월을 보내고 제가 깨달은 것은 작품성과 실용성은 반비례한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보통도 비슷한 얘기를 전합니다. 세계적인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가 지은 빌라 사부아가 그 예입니다.

르 코르뷔지에는 시골집을 지어 달라는 사부아 부부의 의뢰를 받고, 가느다란 기둥들이 떠받치고 있는 하얀 사각형 모양의 집을 지었습니다. 강철로 만든 앞문, 알전구가 달린 천장, 강철 테를 두른 너른 창문, 장식도 가구도 거의 없는 집은 단순미의 극치를 보여주었지요. “(현대인이) 원하는 것은 수도사의 방이다. 조명과 난방이 잘되어 있고, 모퉁이에서 별을 볼 수 있으면 그만이다.”라는 평소 지론대로 르 코르뷔지에는 집을 지었고, 사부아 부부는 건축가의 뜻을 존중했습니다.

하지만 이 집에서 사부아 가족은 별을 보는 평화를 누리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끊임없이 새는 빗물 때문에 어린 아들은 폐렴에 걸려 요양원에 가고, 류머티즘에 시달리던 부부는 “제발 이곳을 사람이 살 수 있는 곳으로 바꿔” 달라고 호소했지요. 사부아 부부에게는 좀 미안한 얘기지만, 유명 건축가와 인연 맺을 일 없는 저 같은 사람에게는 꽤 위안이 되는 에피소드더군요.

굳이 빌라 사부아를 거론하지 않더라도, 엄청난 돈을 들여 지은 첨단 건축물이 안락함은커녕 불편과 불쾌감만 주는 일은 적지 않습니다. 한참 문제가 됐던 호화 청사들은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쓸데없이 높고 크고 위압적인 건물은 동선과 냉난방비만 늘려 사람들을 피로하게 할 뿐입니다. 30층을 훌쩍 넘는 고층 아파트들 역시 사람 살기 좋은 곳이란 생각은 안 듭니다.

그런데도 꾸준히 이런 거창한 건물들을 짓고 높은 아파트를 찾아가는 이유는, 그것이 부와 권력을 상징하기 때문입니다. 이때 집은 안락한 주거 공간을 넘어 자신을 표현하는 상징물이 됩니다. 보통은 그 속에 담긴 심리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건축에 나서고 싶은 가장 진정한 충동은 소통과 기념을 향한 갈망과 연결되어 있는 듯하다. 말과는 다른 기록을 통하여, 사물, 색채, 벽돌의 언어를 통하여 세상에 우리 자신을 밝히고 싶은 갈망. 다른 사람들에게 내가 누구인지 알리고 싶은,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나 자신에게도 일깨우고 싶은 야망.”

갈수록 높아만 가는 빌딩들, 부쩍 늘어난 통유리 건물들을 보노라면, 세상에 자신을 알리고 싶은 욕망 때문에 집을 짓는다는 보통의 말이 실감납니다. 안타까운 것은 그 욕망이 너무 노골적이라는 겁니다. 크고 화려해 보이고 싶은 마음이야 옛사람이라고 다르겠습니까마는, 그 마음을 에둘러 표현하던 전과 달리 요즘은 과시욕을 있는 대로 드러냅니다. 허나 노골적으로 드러난 욕망처럼 추레한 것도 없습니다.

아등바등하며 비싼 집을 장만한 뒤에는 식구들 모두 밖으로만 도느라 얼굴도 못 보는 일이 드물지 않습니다. 집을 사는 곳이 아니라 투자대상으로만 여겨, 멀쩡한 집을 툭하면 허물고 다시 짓기도 합니다. 그렇게 기를 쓰며 집을 짓고 꾸미면서, 사람들은 말합니다. 행복하게 살기 위해 좋은 집이 필요하다고.

하지만 굳이 가슴에 손을 얹지 않아도 우리는 압니다. 행복하기 위해 집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행복하게 보이기 위해 모델하우스 같은 집을 원한다는 것을. 정말 행복을 누리고 싶다면 온기와 추억이 깃든 공간만으로도 충분할 겁니다. 행복은 마음속에 집을 짓는 순간부터 이미 우리 안에 있으니까요. 그러니 오늘, 우리 마음에 작은 집 한 채 모시기로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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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3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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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orkservice (178.XXX.XXX.32)
xTNVym Thanks a lot for the blog p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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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16 20:28:48
0 0
한승국 (218.XXX.XXX.129)
네! 그러겠습니다.
언제나 좋은 글 대단히 감사합니다.
꾸뻑 <^^ ...-> 거수경례 표시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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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3-29 23:04:43
0 0
인내천 (220.XXX.XXX.128)
중학교 음악 시간에 포스터가 작곡한 "즐거운 나의 집"을 배웠는데 가사도 좋고 곡도 좋은데다 이웃 도시로 유학 온 터라서 집생각도 많이 나서 애창하던 노래였습니다. 사랑하는 부모님과 형제들이 살고 있는 집은 늘 동경의 대상이었고 그리움의 산실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의 집은 재테크의 대상이 되어 지가와 높이와 크기만을 따지고 있으니 삭막하기만 합니다. 말씀하신대로 우리들의 집은 온기와 추억이 깃든 공간이면 충분하겠죠? 따스한 글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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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3-29 02:3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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