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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에게서 인간을 본다
박시룡 2010년 03월 19일 (금) 00:23:18
사람에게 동물의 모습이 있다면 당연한 거라고 여기지만, 동물이 사람처럼 행동하고 있다면 그건 예사로운 일이 아닙니다. 인간은 동물들이 갖고 있는 본능을 갖고 있습니다. 음식을 먹고, 짝짓기를 하고, 자신의 영역을 주장하는 것은 동물이나 인간이나 다 같습니다. 사람들이 이웃과 담을 치고 자기 영역을 주장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동물들도 소리 냄새 등과 같은 것으로 자기 영역을 주장합니다.

이런 점은 누구나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동물들에게서 사람의 모습을 발견할 경우 모두 신기해합니다. 나는 최근에 황새들의 사회생활을 관찰하면서 인간들에게서 볼 수 있는 그런 모습을 봤습니다.

어떤 황새부부의 일입니다. 말이 부부이지 아직 아기가 없는 부부입니다. 사실 황새가 부부를 맺기란 사람이 부부가 되는 것보다 훨씬 더 까다롭습니다. 그 조건을 나는 알지 못하지만, 황새들이 아무하고나 짝을 맺지 않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런데, 이 부부는 2008년 바다 건너 일본에서 왔습니다. 그곳에서부터 한 쌍이 맺어진 거죠. 작년에 새끼가 없었습니다. 부부가 한 방에 살고 있었지만 특별한 짝짓기 행동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예를 들어 둥지를 함께 만든다거나, 서로 털을 골라주거나 하는 이런 특별한 징조는 없었습니다.

금년은 달랐습니다. 3월이 되면서 수컷의 행동이 예사롭지 않아졌습니다. 열심히 나뭇가지를 물어다 집을 짓기 시작했습니다. 집 짓기는 보통 부부가 함께 하는데, 암컷은 집 짓는 데 별 관심을 보이지 않고 수컷만 애가 탄 듯했습니다. 둥지는 곧 아주 멋지게 완성됐습니다. 그리고 수컷은 암컷 가까이 가려고 노력했지만 암컷은 자꾸 도망만 다녔습니다. 수컷은 인내심을 갖고 둥지 짓기를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 인내심에도 한계가 있었나 봅니다. 마침내 수컷은 자기 곁에 와 주지 않는 암컷을 향해 분노를 표출하고 말았습니다. 암컷의 한 쪽 날개를 부리로 물고 끌어당겼고, 그것도 여의치 않자 뾰족한 부리로 몸통을 찍어대기까지 했습니다. 구애가 증오로 변한 셈입니다. 결국 이 부부는 혼인 후 3년 만에 갈라서고 말았습니다.

이 부부를 더 이상 한 우리에 함께 둘 수 없었습니다. 계속 내버려뒀다면 분명 수컷이 암컷을 찍어 몸에 큰 상처를 낼 것이 뻔했기 때문입니다. 심하면 죽이기까지 하니까요. 애당초 짝이 아닌데, 잘못 맺어 준 건가요? 그건 아직 알 수 없습니다.

다른 한 쌍의 황새는 마치 우리 인간의 연인관계를 보는 듯 다정했습니다. 1,500㎡의 우리에 아직 짝을 맺지 못한 여덟 마리 황새를 기르고 있습니다. 여덟 마리 중에서 네 마리가 암컷이고 네 마리가 수컷입니다. 작년 가을에 우연히 이 무리 가운데 짝이 생겨났습니다. 나는 이름을 지어줬습니다. 수컷을 황돌이, 암컷을 황순이라고요.

황돌이는 무리 가운데 힘이 센 편입니다. 황순이는 반대입니다. 무리의 다른 녀석들에게 늘 공격을 당하는 편입니다. 어쨌든 둘은 작년부터 친해졌습니다. 둘이 만나는 시간도 잦아졌고, 만나면 부리로 깃털을 서로 다듬어 주면서 부부애를 다져갔습니다.

그렇게 이들이 짝이 된 후, 황돌이는 황순이한테 대단히 헌신적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황순이는 평소에 사람만 보면 멀리 달아날 정도로 겁이 많은 편입니다. 그래서 식사시간에 사육사가 먹이통을 갖고 들어가면 우리의 입구에서 반대쪽으로 멀리 달아납니다. 사육사가 먹이통을 입구 근처에 놓고 한참 지난 다음에야 먹이통에 다가와 먹이를 먹습니다. 물론 다른 녀석들은 사육사가 먹이통을 놓자마자 얼른 달려들어 먹이를 먹습니다.

황돌이가 황순이를 자기 짝으로 받아들인 이후, 사육사가 갖다 놓은 먹이통에 다른 녀석들이 달려들지 못하게 막고 서 있는 것을 목격하고 어안이 벙벙해졌습니다. 우리들 인간과 너무도 같은 모습 때문이었습니다. 황돌이는 다른 녀석이 먹이를 먹으려 하면 부리로 공격해 막았습니다. 이런 행동은 사육사가 먹이통을 갖다놓은 지 몇 분이 지나 황순이가 먹이통으로 다가올 때까지 계속됐습니다. 황돌이는 황순이가 먹이를 다 주워 먹을 때까지 다른 녀석의 접근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황새를 보면서 우리 인간을 보는 듯했습니다. 황새의 뇌가 사람의 뇌에 비해 너무 작아 이런 행동을 할 수 있을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황새를 더 관찰하고 있으면 이보다 더한 인간적인 모습을 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동물이 말을 못한다고 해서 사고능력도 없을 거라고 보는 선입견은 크게 잘못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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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3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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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덕희 (121.XXX.XXX.236)
동물의 잘못된 만남에서 애증을 보니 놀랍네요.애증과 사랑에 대해 환상이 없이 평이하게 표현해 주셨습니다.세익스피어의 작품에서 볼 수있는 복잡성보다 쉽게 닦아옴니다.애정 역시 단순해서 사람의 위치가 윗길이라 할 수 없네요.감사히 읽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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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3-19 18:2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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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휘동 (211.XXX.XXX.129)
인간은 인간이 사는 방식대로 살면서 생각하고 말합니다. 동물들도 인간과 똑같은 하나님의 창조물로서 그들만의 생각과 말을 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우리 인간들이 인간의 잣대를 들이대며 동물을 인간의 아래로 보는 것이지요. 그들 동물들도 마찬가지로 인간을 보지 않을까요? 동물에 대한 연구를 많이 하여 우매한 인간들이 겸손해지는데 도움을 주십시오. 글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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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3-19 16:3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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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민부 (211.XXX.XXX.129)
보내주시는 메일을 하루의 양식으로 삼아 열심히 정독하고 있습니다
아름답고 의미있는 글을 탐독하다보면 자신에게 힘과 에너지가 솟아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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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3-19 16:37:01
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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