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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북'을 읽는 사람
김수종 2010년 03월 18일 (목) 02:00:55
지난 2월 하순 어느 날 지하철 5호선을 타고 자리를 잡았습니다. 잠시 후 다음 역에서 40대 후반으로 보이는 남자가 내 옆 자리를 잡고 앉더니 가방에서 책과 비슷한 크기의 물건을 꺼내어 무릎 위에 올려놓고 클릭하는 것이었습니다. 모니터에 책의 한 쪽 면이 펼쳐졌습니다. 그 물건은 ‘e북’ 단말기였습니다.

나는 e북 얘기는 신문에서 자주 보았지만, 지하철에서 그 실체적 존재를 처음 보았습니다. 클릭해서 쪽을 옮기며 읽으니 책을 펼쳐놓고 보는 것보다 더 간편해 보였습니다. 종잇장을 넘기는 감촉을 상실한 대신 여러 사람이 이용하는 지하철에서 읽기는 더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하철 승객들의 모습은 시대의 변화를 읽게 합니다. 일간지를 펼쳐든 승객이 많던 시절은 아마 20세기 말이었을 겁니다. 휴대전화기가 처음 보급되면서 지하철 안은 수다를 떠는 남녀의 목소리로 시끄러운 적이 있었습니다. 한 때 스포츠신문이 지하철 객차를 덮었고, 이어 승객마다 타블로이드 무가지를 들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DMB폰으로 지하철에서 연속극을 보는 여성들과 스포츠 중계를 보는 남성들이 많아졌습니다. 그리고 지난 동계올림픽 기간 중에는 스마트폰으로 김연아의 경기 중계를 보거나 인터넷으로 실시간 뉴스를 보는 승객들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이제 e북 또는 디지털북이 지하철에 등장하기에 이른 것입니다. 종이 문화의 상징이 신문과 책이었는데, 1990년대 초반 인터넷이 등장하더니 종이 신문이 인터넷 신문에 잠식당하는 중이고 이제 전자책이 종이책을 대신하겠다고 나선 형국입니다. 삼성전자도 e북을 미래 성장분야의 하나로 꼽고 대대적인 투자를 하고 있다니 큰 변화가 아닐 수 없습니다.

모니터 위에서 읽히는 문자는 신기루처럼 나타났다 사라집니다. 보관용 문서로서 뭔가 불안해 보입니다. 그래서 e북은 제한적이며 종이책은 오래 오래 그 기능과 가치를 유지할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종이 책이 주는 즐거움은 큽니다. 즉 책장을 걷을 때 손가락에 전해지는 종이의 감촉을 느끼거나 서가에 가득 꽂힌 장서를 보며 지적 활동의 궤적을 반추하는 것이 오늘을 사는 보통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어릴 때부터 e북에 익숙해지면 어떻게 될까요. 미국에서는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태어나면서 엄마 아빠가 e북을 읽는 것을 보며 자란 아이들이 종이책이 아니라 e북을 가리키며 “엄마 책” “아빠 책”이라고 말한답니다. 그들의 머릿속에 입력된 책과 그들 부모의 머릿속에 입력된 책은 그 이미지가 다른 것입니다. 전자책이 보통 책이고, 종이책은 일종의 골동품이 되가는 것입니다. e북은 어른들에게는 첨단의 책이지만 아이들에겐 보통 책입니다.

영어책을 읽거나 어려운 한문이 들어간 책을 읽을 때 종이책으로 된 사전이나 옥편을 펴 놓는 것보다 인터넷으로 찾는 것이 훨씬 편리합니다. e북을 읽을 때는 어려운 단어나 새로운 용어를 클릭을 통해 전자책 안에서 그 뜻을 알아내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기술은 e북을 편리하게 계속 업그레이드시킬 것이며, 모니터의 질감을 더욱 종이와 같게 만들거나 기존 종이를 뛰어넘는 품질로 바꾸어 갈 것입니다.

작년 말 아이폰(iphone)의 상륙으로 이를 쓰는 사람과 못 쓰는 사람 사이의 문화적 격차가 엄청 벌어진다고 합니다. 책도 비슷한 양태로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심리를 무척 압박해 올 것입니다. 우리 시대의 사람들이 종이 책이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지만, 기대하는 것과 현실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은 일치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가격과 편리함으로 인하여 e북의 효용성은 높아진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앞으로 지하철에서 e북을 읽는 사람을 더욱 많이 보게 될 것이고, 도서관의 모습도 크게 변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디지털 혁명이라고 하지만 관점을 달리해서 생각해보면, 우리가 쓰는 문자가 변한 것은 아니니 안도하며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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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1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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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덕희 (121.XXX.XXX.236)
겨우 컴맹을 면해서 낯선 세계로의 입문 같습니다.책벌레와 먼지는 않생기 겠지만 책수집가 들은 어느쪽 일까요? 양피지도 존재하는 시대에요.장점 단점이 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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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3-19 20:3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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