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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왔다리 갔다리’는 일본말?
황경춘 2010년 03월 16일 (화) 01:47:09
얼마 전 우리집 아이 하나가 ‘왔다리 갔다리’가 일본말이냐고 물어왔습니다. 나는 그것이 일본말은 아니나 일본말 용법을 우리 말에 접목시킨 것으로, 사용하지 않는 게 좋겠다고 일러 주었습니다. 일제의 강점(强占)에 의해 식민지로 35년을 보내고, 해방된 지 65년 가까이 되었습니다만 우리말 속에는 일본어 낱말과 용법이 아직도 많이 남아 있어 안타깝습니다. 일제통치 말년에는 소위 ‘국어상용’(國語常用)이라 하여 공공장소뿐 아니라 일반 가정에서까지 일본말을 쓰도록 강요하고, 학교 교과목에서 우리말을 완전히 없앴으니 해방 후 얼마 동안 일본어 잔재(殘滓)를 일상생활에서 깨끗이 씻어내기가 어려웠습니다.

특히 광복 후 수립된 새 정부 일꾼의 대부분이 일제 때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었다는 사실이 우리말의 순화(醇化)작업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게다가 해방 후 우리나라에서 교육을 받은 사람도 교과서나 관청 공문서에 남아 있는 일본 색을 완전히 불식하지 못한 환경에서 생활했기 때문에 뜻있는 지도자나 한글학자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우리 주변에는 알게 모르게 일본말에 오염된 것이 많습니다.

관청 공문서나 법전(法典)에서 사용되는 일본말투 용어의 개선을 서두르고 있는 정부작업에 국민의 관심이 쏠리고 있는 것은 당연합니다. 일본이 그들의 메이지유신(明治維新) 후 서구에서 수입한 학술어 법률용어 등에 쓰이는 많은 한자어와 한글전용 정책을 어떻게 조화시키느냐의 문제도 만만치 않습니다.

그러나 일제 때의 잘못 알려진 많은 외래어를 우리정부가 바로잡아 일상생활 속에서 자리 잡게 한 것을 감안하면 우리말 순화작업의 장래에 큰 기대를 걸어보게 됩니다. 일본식의 ‘아루코루’ ‘인푸렌자’ ‘세멘토’ ‘그라운도’(운동장) ‘에레베타’ ‘푸랏토호무’(플랫폼) 외 일본식 발음으로 된 많은 외래어가 정부의 노력으로 현재 형태로 바뀌게 된 것을 요즘 젊은 세대는 별로 느끼지도 않고 있을 것입니다.

그런 한편 글머리에서 소개한 ‘왔다리 갔다리’ 외에 ‘앗싸리’ ‘쇼부’ ‘쇼바’(자동차의 shock absorber) ‘파마’ ‘고데’ ‘단도리’ 등 그것이 일본말에서 왔다는 사실조차 모르며 사용하고 있는 젊은 사람들을 만나면 악간 걱정될 때도 있습니다. 일본말을 좀 아는 나이 많은 세대가 다 가기 전에 이런 것들이 바로잡혀야 할 텐데 하는 노파심이 든다는 말입니다.

편협한 소승적(小乘的) 민족주의에 사로잡힌 생각이 아닙니다. 이 개방된 세상에 비행기로 두 시간도 안 걸리는 곳에 있는 이웃 나라의 영향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불가능하며 또 좋은 것은 피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러나 공산품이나 식품의 원산지에 관심을 두듯이 우리는 언어나 풍습 그 밖의 여러 문화현상의 기원(起源)도 충분히 알고 사용하거나 감상해야 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현재와 같은 다문화시대에 국가의 발전에 필요한 외국문화는 적극 수입하고 활용해야 하겠지요.

‘한류’라 하여 우리나라 문화의 인기가 일본이나 일부 외국에서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막걸리가 새롭게 관심을 모으고 있습니다. 보컬그룹 ‘신화’에서 솔로로 독립한 신혜성이 일본말로 된 앨범을 내놓았다고 합니다. 한때 한일 간의 특수한 과거 때문에 거의 전면 금지되었던 서적을 비롯한 일본문화 수입이 많이 완화되고, 일본 전통의 ‘스시’집이나 이사카야’(居酒屋)가 서울 한복판에 나타날 정도가 되었습니다. 이번 달에는 일본의 극단 신주쿠료산하쿠(新宿梁山伯)가 7회째 서울 공연을 통해 일본 전통 가부키(歌舞伎)풍 연극을 선보였다고 합니다. 경술국치(庚戌國恥) 100년이 되는 올해, 두 나라 사이에는 아직 풀어야 할 많은 문제가 남아 있습니다만 서로가 이런 것들을 외면하지 않고 이성을 되찾아 두 나라 우호의 밑거름으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이번 3ㆍ1절을 며칠 앞둔 어느 날 저녁, 거실에 틀어 놓은 텔레비전에서 갑자기 일본 노래 곡조가 들려오기에 깜짝 놀랐습니다. 서재에서 인터넷을 들여다보고 있다가 귀를 기울이니 그것은 ‘이수일과 심순애’라는 일제 때 노래였습니다. 당시 고복수와 황금심 부부가 불러 레코드가 상당히 많이 팔린 노래로 ‘장한몽’(長恨夢)이라는 소설의 주제가입니다.

그런데 일본 소설가 오자키 고요(尾崎紅葉)의 유명한 대중소설 ‘콘지키야샤’(金色夜叉)의 번안(翻案)소설인 ‘장한몽’이 주제가에서 주인공 이름과 지명만을 바꾸어 일본 원 노래가사를 거의 그대로 번역한 것까지는 좋지만 곡까지 일본 것을 그대로 사용한 점에 대해선 좀 지나치다고 그때 우리 학생들 사이에서 불평의 소리가 약간 있었던 것을 기억합니다. 방송사에서 지난번 그 노래를 소개하면서 어떻게 또는 뭐라고 해설했는지를 저는 듣지 못하였지만, 3ㆍ1 절을 앞둔 그 무렵 갑자기 일본노래 곡조가 TV에서 흘러나와 야릇한 감정에 잠긴 것은 저 하나뿐이었을까요.

이와 비슷한 예가 과거에도 있어 시청자들로부터 비난을 받은 것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때가 때인 만큼 이런 가요의 선곡에도 신경을 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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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3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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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민 (211.XXX.XXX.129)
우리 세대도 일본어투의 말을 그대로 배웠을 것이라고 생각됩ㅈ니다만 그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합니다. 이런 말이나 어휘를 하루 빨리 알려주고 우리말로 바꾸는 작업이 일제 시대를 살아본 지식인들이 살아계실 때에 이루어져야 한다는 말씀에 전적으로 공감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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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3-18 16:46:32
0 1
한세상 (119.XXX.XXX.235)
그렇습니다. 일본어 낱말 뿐 아니라 어법도 순화해 나가야 합니다. 순화에 앞장서야 할 언론에서 일본 신문에 실린 어투 그대로 가져와 우리 말을 흐리게 할 때는 참으로 짜증납니다. 좋은 글 고맙게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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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3-17 12:01:02
0 1
차덕희 (121.XXX.XXX.236)
중학교때 오닝교,벤또,오봉,등 생활에서 흔히 쓰던 말이 일본어의 잔재 인줄 알고 입이 부끄러운 적이 있었습니다.중년의 나이에 일본어를 조금 배웠을 때는 조금 수월했습니다.장단점을 가려서 사용해야 언어에 대한 예의가 되겠지요.일제 강점기의 거의 두배가 되는 세월이 흘렀는데도 흔적이 많이 남아 있나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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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3-16 21:55:12
0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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