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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쿠버의 여운
방석순 2010년 03월 08일 (월) 01:09:09


지구촌의 겨울 축제 밴쿠버 동계올림픽이 끝났습니다. 시끄러운 일상사를 잠시 잊고 밴쿠버 소식에 들뜬 채 보낸 지난 한 달은 참으로 행복했습니다.

이제 다시 여의도 난장의 입씨름과 몸싸움이 머리를 어지럽힐 생각을 하니 지레 짜증이 납니다. 아예 눈과 귀를 석 달 뒤 벌어질 월드컵 축구로 돌리든지, 아니면 밴쿠버의 짜릿했던 순간들을 머리에 떠올려보는 것도 사나운 꼴을 피하는 방편일 것 같습니다. 정해진 룰을 지키지 않는 싸움은 금수(禽獸)들의 먹이다툼과 다를 게 없지요. 다 따놓은 금메달에도 심판의 반칙 선언 한마디에 눈물을 흘리고 돌아서는 스포츠의 질서를 그들에게 되풀이해 보여주고 싶습니다.

미국 사는 친구는 지난달 밴쿠버에서 잇달아 날아오는 우리 선수들의 기적 같은 승전보에 신바람을 내다가 문득 국어사전을 찾아보았답니다. ‘기적(奇蹟)- 상식으로는 생각할 수 없는 기이한 일.’ 그러니 우리 선수들의 승리는 ‘기적 같은 일’이 아니라 바로 ‘기적’이었다고 정의를 내렸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연속으로 일어나는 것은 기적이 아니다’ 라고 쓴 그 친구의 메일 제목이 훨씬 더 사실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기적이 그렇게 거푸 일어날 수는 없으니까요. 당연히 일어날 일들이 온 국민의 통일된 염원 덕에 일시에 폭발적으로 일어난 것일 뿐이겠지요.

그동안 보이지 않는 곳에서 선수들이 훈련에 쏟았을 땀, 코칭스태프의 치밀하고도 과학적인 지도, 부모들의 눈물겨운 정성을 생각한다면 우리 선수들이 거둔 성과를 결코 기적으로만 돌릴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지속적인 국력의 신장이 없었더라면 우리 선수들이 이룬 꿈의 바탕이 갖춰질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500m에서 동기생 모태범이 금메달을 따내는 모습에 저도 모르게 울컥했었다던 이상화. 그 자신 여자 500m에서 우승을 확인하던 순간 이상화는 끝내 링크 위에 눈물을 뿌렸습니다. 동료 선수들은 아마도 그 눈물의 의미를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밝은 표정을 되찾은 이상화가 “사이클을 탄 채 타이어를 끌고 가던 훈련은 다시 생각하기도 싫어요” 하며 손사래를 치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우리의 메달 밭이라는 쇼트트랙에서 밀려나 어쩔 수 없이 스피드스케이팅으로 신발을 갈아신었다는 이승훈. 놀랍게도 그가 5천m 2위에 이어 1만m에서 1위로 시상대에 올랐을 때 은메달리스트 이반 스코브레프(Ivan Skobrev, 러시아)와 동메달리스트 봅 데 용(Bob de Jong, 네덜란드)은 가마를 태워 올림픽 챔피언의 탄생을 축하해 주었지요.

데 용은 “내가 18년 동안 스피드스케이팅을 타서 동메달을 얻었는데 이승훈은 7개월 만에 금메달을 따냈다. 그야말로 진정한 올림픽 챔피언이다”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승훈이 그동안 쇼트트랙 훈련으로 코너워크 기술을 강화하지 않았더라면 체력 좋은 그들을 이겨내기 힘들었을 것입니다.

또 어려운 여건 속에서 세계주니어선수권대회를 제패했던 이영하, 올림픽 메달에 끊임없이 도전했던 배기태, 김윤만, 이강석, 월드컵 레이스를 제패하며 한국 빙상의 가능성을 확인해준 이규혁과 같은 선배들이 없었더라면 젊은 그들의 금메달 영광도 요원했을 것입니다. 다섯 번째 올림픽에서 사력을 다해 질주하고도 메달의 꿈을 이루지 못한 이규혁이 모두가 퇴장해 텅빈 링크를 혼자서 걸어보았다는 말에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밴쿠버 올림픽 최고의 하이라이트는 역시 우리의 퀸 연아가 출전한 피겨스케이팅 여자 싱글이었지요. 쇼트프로그램에서 김연아 바로 앞 순서로 나선 라이벌 아사다 마오(浅田真央)는 실수 없이 깔끔한 연기를 펼쳐 높은 점수를 얻었습니다. 마오의 연기를 지켜보며 샐쭉 어린 아이 같은 웃음을 지어 보이던 김연아는 완벽에 가까운 연기로 가볍게 1위에 올라섰습니다.

이틀 후 프리스케이팅은 김연아의 독무대였지요. 비교할 수 없이 아름답고 우아한 스케이팅, 탁월한 표현력, 결점을 찾기 어려운 고난도 기술의 발휘, 군계일학(群鷄一鶴)이 따로 없었습니다. 그렇게 올림픽에서의 마지막 연기를 성공적으로 마친 직후 연아 역시 눈물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김연아는 인터뷰에서 자신도 그때 왜 울었는지는 잘 모르겠다고 대답했습니다. 다만 “큰 짐을 내려놓은 것 같다. 오랜 기간 준비했던 것을 다 보여주어 시원하다”고 말했습니다. “국민적인 중압감을 안고 고국을 떠나 오서 코치와 함께 토론토에서 훈련을 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고 소개한 미국 NBC 방송의 해설이 김연아가 흘린 눈물의 의미를 짐작케 해 주었습니다.

피겨 여자 싱글에서는 결국 시상대에 오른 세 명의 메달리스트 모두 링크 안팎에서 눈물을 보였습니다. 홈 링크에서 동메달을 딴 조아니 로셰트(Joannie Rochette)는 자신의 경기를 보기 위해 밴쿠버로 달려온 어머니가 돌연 세상을 떠난 슬픔에, 은메달을 딴 아사다 마오는 프리스케이팅의 결정적인 순간에 저지른 뼈아픈 실수에 대한 분함에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러나 밴쿠버에서는 마오든 조아니든 아무리 좋은 연기를 펼쳤다 하더라도 김연아를 능가할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퀸 연아는 신체적인 조건과 스케이팅 기술은 물론, 의상과 음악, 연기력 등 모든 면에서 최상의 조화를 빚어낸 드림팀의 최고 걸작이었으니까요.

브라이언 오서(Brian Orser) 코치는 금메달이 확정되는 순간 오히려 김연아보다 더 울음을 터뜨려도 좋을 만큼 아픈 사연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캐나다 피겨 간판스타였던 그는 1984년 사라예보 올림픽 남자 싱글에서 스콧 해밀턴(Scott Hamilton)에게 뒤져 은메달에 그쳤습니다. 해밀턴이 은퇴한 뒤인 1988년 캘거리 올림픽에서는 브라이언 보이타노(Brian Boitano)에게 뒤져 또 은메달에 그쳤습니다. 동계스포츠에서만은 한일전을 방불케 하는 미국과의 자존심 대결에서 거푸 쓴잔을 마셨던 그가 밴쿠버에서 김연아를 통해 마침내 올림픽 금메달의 꿈을 이루었던 것입니다.

한 달 동안 파노라마처럼 지나간 숱한 영상 가운데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오서 코치가 링크에 나서는 연아에게 보내던 따뜻한 눈길과 잔잔한 미소였습니다. 그의 호수처럼 차분한 눈빛과 밝은 웃음이 두방망이질 쳤을 연아의 가슴을 진정시키고 할 수 있다는 강한 믿음과 자신감을 심어 주었을 것입니다. 2002년 월드컵 축구대회에서 두 주먹을 하늘로 지르며 선수들을 격려하던 거스 히딩크(Guus Hiddink) 감독과는 또 다른 스포츠 지도자의 전형이 아닐까 생각되었습니다.

‘월드컵 4강’ 하면 히딩크 감독의 요란한 제스처가 떠오르듯 ‘피겨 금메달’ 하면 김연아의 마음을 어루만지던 오서 코치의 따뜻한 눈길과 잔잔한 미소가 오래 기억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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