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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아의 눈물
김영환 2010년 03월 03일 (수) 02:18:49
‘이것은 소리없는 아우성
저 푸른 해원(海原)을 향하여 흔드는
영원한 노스탤지어의 손수건
순정은 물결같이 바람에 나부끼고
오로지 맑고 곧은 이념의 푯대 끝에
애수는 백로처럼 날개를 펴다
아아 누구던가
이렇게 슬프고도 애달픈 마음을
맨 처음 공중에 달 줄을 안 그는’
(유치환 ‘깃발’ , 1936)

2010년 2월26일 역사적인 김연아 선수의 밴쿠버 동계올림픽 피겨 프리 경기 실황중계를 여의도의 어떤 빌딩 로비에서 수백여 명과 함께 보았습니다. 늘 당당하고 의연해 ‘철의 심장’이라고만 생각했던 김연아가 무결점 경기를 마치고 왈칵 눈물을 쏟는 것을 보니 필자도 뜨거운 눈물방울이 주르르 볼을 타고 흘러내렸습니다. “국민의 염원을 이렇게 통쾌하게 실현해줄 줄이야… 때마침 3ㆍ1절 91주년을 앞두고 일본의 19세 동갑내기 아사다 마오(淺田眞央)를 제압한 쾌거이기도 한데 왜 눈물이…?”

조지 거쉰의 ‘피아노 협주곡 바장조’의 클라이맥스와 함께 회전을 멈추고 백조처럼 양팔을 치켜세운 김연아는 그 가녀린 어깨에서 큰 짐을 비로소 내려놓았습니다. 초등학교 시절 인터뷰에서 밝혔던 올림픽 금메달을 향한 대장정이 끝났다는 감격에 벅찼던 것일까요?

김연아는 글로벌 세대답게 곧 가을 밤 하늘을 수놓는 불꽃놀이처럼 파안의 미소를 지었죠. 하지만 태극기가 올라가는 시상대에서 애국가를 조용히 따라 부르다가 또 눈물을 흘렸습니다.

집에 돌아와 아내에게 눈물이 나오더라는 이야기를 했더니 딸이 일터에서 돌아오면 아빠가 김연아를 보며 울었다고 이르겠다며 으름장을 놓았습니다. 그런 아내도 8시 뉴스를 보며 눈물을 억제하지 못했습니다.

연아는 텔레비전 앵커맨이 회견에서 ‘왜 울었느냐’고 묻자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어요’라고 했습니다. 뉴스 화면에서도 연아의 중계를 보면서 눈물을 흘린 남녀노소가 많았음을 보았습니다. 눈물은 김연아와 우리들이 감정이입의 공동체이며 그의 투혼과 성취에 전염된 한 덩어리임을 깨닫게 했습니다. 인터넷에서 ‘스포츠 중계를 보다가 눈물을 흘리는 것은 처음’이라는 댓글을 많이 보았습니다.

70년대 초반 길을 함께 걷던 어떤 후배가 “태극기 깃발이 올라가는 것만 보면 왜 눈물이 나는지 모르겠어요”라고 물었습니다. “글쎄, 태극기는 나라의 상징이니까 빼앗긴 나라를 되찾았다는 감격 때문에 눈물이 나는 것이 아닐까”라고 대답했죠. 청마의 시구(詩句)처럼 깃발에는 광복을 위해 삶을 던진 호국 영령들의 ‘소리 없는 아우성’이 살아 있을 테니까요.

야후의 한 재미동포 블로거는 ‘태극기만 보면 나는 운다’고 했습니다. 22년 전 미국으로 이민 간 이 블로거는 ‘자랑할 거라곤 하늘의 색깔밖에 없는 우리나라의 빈곤한 현실에 너무나 가슴이 아팠다. 그때부터였을 게다. 태극기를 보면, 애국가를 들으면 애틋한 마음이 들면서 눈물이 나기 시작한 것이... 옛날에 흘린 눈물이 못사는 조국에 대한 안타까움 때문이라면 지금 흐르는 눈물은 대견하고 자랑스러운 마음에서 나오는 눈물일 것이다. 어릴 때 내팽개쳐 놓고 나온 자식이 어느덧 훌륭하게 장성해 나타난 모습을 보는 어미의 심정이랄까…’

태극기를 보고 이렇게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것은 감격 잘 하는 민족적 심금(心琴)도 있겠지만 정치 탓이 크다고 나는 믿습니다. 조선조부터 정치인들은 나라야 어찌 되어가건 재물을 탐하고 당파 싸움으로 날을 지샜으니 무슨 좋은 나라가 되었겠습니까? 늘 외침(外侵)이 이어졌고 민중은 찢어지게 가난했으며 급기야 나라를 빼앗겼죠. 이 불행한 우리 역사의 상흔(trauma)을 올림픽 시상대에서 올라가는 태극기를 보며 나는 떠올립니다.

요즘 ‘남자가 흘리지 말아야 할 것은 눈물만이 아니다’는 표어가 있습니다. 얼마나 더 메마른 사회를 원하기에 이런 획일적인 프로파간다를 주입하는 것일까요? 시멘트를 굳히는 데는 물이 필요하다는 걸 모르는 것일까요? 마음의 정화로 나라가 도약한다면 남자들에게도 ‘남몰래 흐르는 눈물’이 아니라 때로는 ‘대놓고 흐르는 눈물’도 나쁠 게 없다고 봅니다. 사적으로는 이제 우리 선수들이 국제대회에서 아무리 값진 금메달을 따더라도 내 눈에서는 눈물이 ‘졸업’했으면 하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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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3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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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덕희 (121.XXX.XXX.39)
눈물이 없는 사람을 이상히 여겼는데 제가 그런 사람이 되버렸네요.펑펑터지는 대형 사건 영향인지,정서가 메말라서 그런지 좋은것은 잠시네요.오랫만에 눈이 즐거웠고,이어서 잘 해낼 것같은 확신이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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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3-05 20:18:17
0 0
신명순 (115.XXX.XXX.186)
작가님께서도 그러하셨군요. 저도 엄청 눈물을 많이 흘렸답니다. 좋은 글 보내주셔서 항상 감사한 마음입니다. 가끔씩 이렇게나마 고마움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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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3-05 18:21:59
0 0
인내천 (112.XXX.XXX.244)
저도 울었네요~
작은 나라에서 대단한 일을 해냈으니 울컥했음다!
이렇게 우리국민 개개인은 우수한데 집단의 위력은 왜 분출되지 않을까요? 국민들 눈이 번쩍 띌 비전을 제시하고 결집시키는 지도자가 없기 때문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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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3-03 11:54:14
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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