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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쿠버의 한국과 일본
황경춘 2010년 03월 02일 (화) 01:49:25
예술이 정치나 민족주의로 오염되지 않았을 때 가장 아름답게 꽃을 피운다는 진리는 스포츠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국가를 대표하는 여러 선수가 참가하는 스포츠 경기에서 이러한 것을 도외시하고 순수성만을 추구한다는 것은 범상인(凡常人)에게는 어려운 일입니다.

이번에 대한의 딸 김연아 선수가 ‘동계올림픽의 꽃’이라 불리는 피겨 여자 싱글에서 금메달을 땄을 때 우리는 그것을 체험했으며, 2년 전 베이징 하계올림픽에서 한ㆍ일 양국이 야구경기에서 맞붙었을 때도 같은 경험을 했습니다.

스포츠를 통한 ‘우정, 일체감, 페어플레이’ 정신으로 상호 이해를 쌓고 세계평화와 인류화합에 공헌한다는 이념 아래 피에르 드 쿠베르탕(Pierre de Coubertin)이 제창한 근대 올림픽 경기는 100여 년의 짧은 역사 동안 애초의 의도와는 달리 숱한 국제 분쟁에 휘말렸습니다.

우리의 손기정 선수가 일장기(日章旗) 마크를 가슴에 달고 마라톤 경기에 출전한 1936년의 베를린대회가 독일 나치정부의 유대인 차별정책으로 전 세계 유대인이 불참하는 불명예스러운 올림픽으로 낙인찍힌 후 대회는 제2차 세계대전으로 1948년까지 중단되었습니다.

전후 재개된 대회는 계속되는 동서냉전의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해 1980년 모스크바대회는 당시 소련의 아프간 침공을 항의하여 서방측 62개 IOC 회원나라가 불참하는 불상사가 일어났고 4년 후에 열린 로스앤젤레스대회는 소련을 지지하는 회원국의 보복 보이콧으로 얼룩지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정치이념에 의한 오염 외에 올림픽대회는 각 선수가 국가를 대표하는 이상 국가와 민족 간의 과열된 감정의 마찰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메달 획득 수는 국력이나 인구에 좌우되는 것이 당연한 이치인데 이에 너무 집착하는 바람에 생기는 부작용이 적지 않습니다.

미국과 옛 소련 사이의 농구전과 미국과 캐나다, 두 나라 사이의 아이스하키 대결은 그 좋은 예입니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우리 경기력의 향상과 더불어 자연히 이웃 일본과의 대결에 각별한 관심이 쏠립니다.

이번 밴쿠버대회에서 이정수, 모태범, 이상화, 이승훈 선수 등도 값진 금메달을 땄지만 유독 김연아 선수의 연기가 비상한 주목을 끈 것은 그것이 한ㆍ일간의 열아홉살 동갑 라이벌 사이의 운명적 대결이기 때문이었습니다.

두 나라 국민은 공개적으로 큰소리로 얘기는 안 했지만 이번 김연아-아사다 마오 대결 결과가 비단 두 사람 뿐이 아닌 양국의 많은 국민에게까지 큰 충격파를 보낼 것임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금년이 경술국치(庚戌國恥) 100주년이 되는 해이지만 우리로선 많은 현안문제가 아직 미해결로 남아 있습니다.

만일 김연아가 진다면 그것은 다만 금메달-은메달의 차이일 뿐 아니라 양국 간의 이 예민한 시기에 전 국민에 큰 실망을 안겨줄 것이 틀림없기 때문입니다. 피겨 프리스케이팅 경기가 열린 바로 이틀 전에 종로구에 있는 일본대사관 앞에서는 1992년 1월 8일부터 수요일마다 열리는 항의집회가 있었습니다. 태평양전쟁 때 끌려간 종군위안부에 대한 일본의 사과를 요구하는 ‘수요모임’입니다. 바로 며칠 후가 3ㆍ1절이었습니다. 새로 들어선 일본 하토야마정부의 한일문제에 대한 새로운 공식 태도성명은 아직 없습니다. 일본대사관 앞의 데모 군중은 “우리의 광복은 아직 시작되지 않았다”라는 구호가 쓰인 현수막을 들고 있었습니다.

이런 미묘한 때인 만큼 온 국민은 김연아의 금메달을 특히 기원했던 것입니다. 일본 측의 형편은 우리보다 더 심각했습니다. 우리가 금메달 5개를 따는 동안 일본은 그야말로 ‘노 골드’였고, 당시 순위는 우리의 6위에 비해 은메달 하나, 동 둘로 20위에 처져 있었습니다. 오죽하면 동경도지사(東京都知事) 이시하라 신타로(石原愼太郞)가 “동메달 땄다고 미쳐 날뛰는(狂喜) 이런 나라는 없다”고까지 말했겠습니까. 게다가 여자 싱글 피겨는 4년 전 일본이 우승한 바로 그 종목입니다. 한때의 슬럼프에서 벗어난 아사다에 대한 동정뿐 아니라 일본은 이 종목이 그들의 금메달 획득 가능성이 짙은 마지막 기회였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김연아의 금메달이 확정되었습니다. 스포츠가 정치에 이용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닙니다. 이시하라는 다른 자리에서 “국가라는 무거운 짐을 어깨에 짊어지지 않는 인간이 빨리 뛸 수 있을 리 없고, 높이 뛸 수도 없고 좋은 성적을 올릴 턱이 없다”라는 말로 일본 선수들을 비난하기도 했습니다.

한편 일본 주요 언론매체도 김연아와 아사다의 연기에 격차가 있었음을 시인하고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총리도 “김연아 선수는 압도적으로 좋았다는 이야기니, 나는 (아사다의) 은메달 획득이 참으로 훌륭했다고 국민 모두가 같이 기뻐해 주었으면 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또 “한국은 대단하네요. 한국의 눈부신 활약에 축하말씀 보내고 싶습니다”라고도 했습니다. 그런데 일부 일본 네티즌들은 “한국은 돈으로 심판을 매수하는 것이 18번 아닌가” 또는 “이러니 한국하고는 연관되고 싶지 않다”는 등의 악의에 찬 댓글을 올리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그 뒤에도 은 둘 동 하나를 추가해 밴쿠버에서는 금메달 6, 은메달 6, 동메달 2의 동계올림픽 사상 최고의 성적으로 전체 순위 5위에 빛났으나, 일본은 겨우 은 3, 동 2로 20위에 머무는 저조한 성적으로 끝마쳤습니다.

올림픽 주관방송사인 미국의 NBC 해설자가 “김연아의 환상적 연기는 올림픽에서 내가 본 연기 중 가장 훌륭한 것이었습니다”라고 말한 뒤 “Long Live, the Queen!"(여황 폐하, 만세)를 외쳤습니다. 이것은 참으로 인상적이었으며, 13년 동안의 연아의 피눈물 나는 훈련은 올림픽 금메달과 이 한마디로 충분히 보답되었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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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4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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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내천 (112.XXX.XXX.244)
친일잔재를 청산치 못한 것은 미완의 독립임을 증명하는 것이죠.
일본의 공식 사과와 보상을 받아내지 못한 것 또한 미완의 증겁니다!
이상의 두가지 과제가 이뤄지기전 까지는 스포츠건 예술이건 가리지 않고 일본을 이겨야할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김연아의 우승은 정말 통쾌하고 기분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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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3-03 12:06:02
0 0
이준섭 (211.XXX.XXX.129)
김연아의 우승은 일본을 이긴 쾌거였습니다.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금년에도 늘 건강과 건필을 기원합니다. 이준섭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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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3-02 11:2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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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경춘 (210.XXX.XXX.211)
글 고맙게 읽어주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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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3-03 00: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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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건 (121.XXX.XXX.250)
김연아가 피겨의 여왕인건 세계인에게 입증된 사실이지요. 그래서 미국의 언론들도 퀸연아(Queen Yu-Na)라고 쓰고 불렀겠지요. 연아가 남자선수였다면 킹연아(King Yu-Na)라고 하지 않았을까요? 퀸이건 킹이건 김의 영어발음에서 패러디된 애칭으로 이해하고 싶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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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3-02 11: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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