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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은 하늘에서 잠자고
임철순 2010년 02월 24일 (수) 01:19:34
고3 때인 1969년, 사흘인지 나흘인지 학교를 빼먹고 경북 울진의 친구 집에 다녀온 일이 있습니다. 학년 초에 팽팽했던 고3 교실의 긴장은 대개 두세 달 지나면 스르르 풀어지게 마련인데, 수업시간이면 졸립고 나른하던 때였으니 아마도 5월 초였나 봅니다. 누가 먼저‘땡땡이’를 제의했는지 잊었지만, 공부하기 싫고 힘들어서 엉뚱한 짓을 한 것이지요.

그 녀석의 집은 버스를 타고 흙먼지 날리는 길을 하루 종일 가야 할 만큼 멀었습니다. 강원도와 경북의 바닷가를 달리는 길은 풍광이 아주 좋았지만, 이렇게 먼 곳에서 서울로 유학을 오다니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습니다. 버스를 타고 가는 동안 “야 임대호, 너 참 출세했구나”하는 말을 했던 것 같습니다.

울진에 가서는 바닷가에서 놀거나 그 집의 어선을 타며 즐겁게 시간을 보냈습니다. 걸핏하면 팩하고, 짜증 부리고 속도 좁았던 나에게 “네가 바다를 못 보고 자라서 그렇다”고 말하곤 했던 대호는 바다의 고마움과 즐거움을 알려 주느라 성심성의를 다했습니다. 그의 부모도 학기 중에 아무 연락 없이 집에 온 아들을 꾸짖기는커녕 친구를 데려온 것을 오히려 대견스러워하며 반겼습니다.

며칠 잘 놀고 학교에 다시 갔을 때는 두 녀석이 교단 앞에 불려나가 엉덩이에 담임교사의 몽둥이 찜질을 당했지만, 검은 교복에서 먼지가 퍽퍽 나는 게 좀 창피했을 뿐 무슨 장한 일이라도 한 것처럼 스스로 대견스러웠습니다. 착실한 줄 알았던 녀석들의 엉뚱한 일탈과 배반을 선생님이나 친구들이 놀라워하는 것도 오히려 즐거웠습니다.

우리 둘이 어떻게 해서 친해졌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습니다. 대호는 1학년 첫 영어시간에 “바스케토(basket)”라고 읽었다가 선생님으로부터 “얘 얘, 그건 촌놈 영어다”라는 말을 들은 뒤부터 기가 죽었지만, 고향에서는 공부 잘하는 것으로 소문난 학생이었습니다. 1학년부터 3학년까지 우리는 계속 같은 반이었습니다. 대학 진학부터 삶의 길이 달라져 한동안 만나지 못하다가 각자 취직을 한 뒤 수시로 다시 만났습니다.

나와 달리 술을 잘 마시지 못하는 그는 내 주정을 너그럽게 받아 주었고, 무슨 일이든 내 편이 돼 주었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 봄, 술을 잔뜩 마시고 그의 집에 갔을 때 대학생이던 그의 형이 들어오자 내가 “야, 이게 니 형이냐?” 그랬답니다. 그리고는 “나는 지금 세 여자를 사랑하고 있다. 어쩔래? 홍알홍알”하고 말도 되지 않는 시비를 걸며 대들다가 얻어 터졌습니다. 나는 기억도 나지 않는데 대호는 형을 말리다가 형제간에 싸움을 벌였다고 하더군요. 대입 원서 살 돈을 꾸려고 추운 겨울 저녁 삼선교(성북구)에서 태릉의 대호 누나네 집에까지 걸어갔던 일, 내 하숙방에서 술 마시며 되지도 않은 개똥철학을 읊어대던 일, 말도 한마디 건네지 못하면서 그 녀석이 좋아하는 여학생을 둘이서 졸졸 따라가던 일,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운 추억이 많습니다. 대호는 내 결혼식의 증인이 돼 주기도 했습니다.

원래 간이 좋지 않았던 대호는 2000년 12월 말에 갑자기 입원을 했습니다. 평소 약을 먹고는 있었지만 상태가 그리 나쁜 줄은 몰랐습니다. 소식을 뒤늦게 듣고 면회 갔던 날, 나를 배웅하던 모습을 잊을 수 없습니다. 엘리베이터에 탄 나를 보내며 바라보던 그의 눈은 나를 눈 속으로 빨아들여 담아 두려는 것같이 보였습니다. 쟤가 왜 저러지, 무슨 죽을 병이 걸린 것도 아닐 텐데, 나는 당시 그렇게만 생각했습니다.

그 뒤 2월 초에 1주일간 호주 여행을 가서 잘 놀다 왔고, 병세가 궁금하긴 했지만 여행기간에 전화도 한 번 걸지 않았습니다. 그동안 간경화로 상태가 더욱 나빠진 대호는 여수의 요양원으로 옮겼습니다. 얼굴 좀 보고 싶다는 전화를 받고 나서야 겨우 그를 찾아갈 생각을 했지만, 폭설로 비행기가 뜨지 못하는 바람에 예정을 하루 넘겨서야 그에게 갈 수 있었습니다. 내가 도착하자, 남편이 눈 빠지게 날 기다렸다고 그 아내가 알려 주었습니다.

그때 <모택동과 그 부하들>인지 뭔지 두 권으로 된 책을 사다 주었는데, 그는 이미 책을 읽을 만한 상태가 아니었습니다. 성한 사람도 읽으면 머리가 아플 책을 사다 주었으니 나는 대체 뭘 생각하고 사는 사람이었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대호는 내가 온 것만 좋아서 기뻐하며 원장에게 나를 자랑스럽게 소개하고, 이미 황달이 심했는데도 조금 있으면 병이 다 나아 서울에 갈 것처럼 말했습니다. 요양원에 다녀온 며칠 뒤, 포도가 먹고 싶다는 전화가 왔습니다. 나는 주변머리가 없어 포도를 구하지 못했고, 다른 친구가 어렵게 포도 한 상자를 사서 보내 주었습니다.

2월의 마지막 날, 올케와 함께 동생을 돌보던 대호의 누나로부터 울음 섞인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서울의 다른 병원에 입원을 부탁하는 내용이었는데, 동생의 상태가 아주 나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병원에 조치를 부탁한 뒤 저녁에 달려갔을 때 대호는 가쁜 숨을 몰아 쉬며 응급실에 누워 있었고, 팽만한 배에서 복수를 빼내고 있었습니다. 그는 나와 아들에게 또렷하게 할 말을 다 하고 있었지만, 젊은 여의사는 나를 살짝 불러 이미 가망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의식이 분명하고 말도 잘 하는 사람이 죽는다는 게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가족들이 거의 다 모인 그날 밤, 병실로 그를 옮겨 올렸습니다. 그는 나에게 “임 국장, 골프 한 번 쳐야지”그런 농담을 던지며 어서 집으로 들어가라고 그랬고, 형에게는 “울지 마 형, 다 괜찮아질 거야”그러면서 달랬습니다. 나는 새벽 2시가 넘어 집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회사에 출근해서 일하던 그 날 낮, 형이 가고 말았다는 대호 동생의 울먹이는 전화를 받았습니다.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습니다. 왜 그런지, 내가 죽을 때 과연 그 녀석처럼 침착하고 담담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부터 했습니다.

사흘 뒤 벽제 화장장에서 화장을 할 때 그의 아내는 “이게 뭐야, 이게 뭐야?”그러면서 뒹굴며 울었습니다. 그는 한 가족의 가장이었지만, 아들 넷 딸 넷인 집안의 둘째 아들로서 그 집안의 기둥이나 다름없었던 사람입니다. 어머니에게는 몇 시간의 시차를 두고 조금씩 조금씩 아들의 죽음을 알렸습니다. 친구가 그에게 사 보냈던 포도는 요양원으로 우송됐다가 받을 사람이 없자 길을 되짚어 서울의 빈소로 다시 배달됐지만, 대호는 이미 그것을 먹을 수 없었습니다.

장례를 치르고 난 며칠 후에, 나는 마음이 잡히지 않아 서울시 장묘사업소가 운영하는 사이버 추모공간(www.memorial-zone.or.kr)의 하늘나라 우체국에 들어가 몇 마디 써 놓았습니다. 망자의 가족 친지들이 추모 편지를 써 보내는 곳입니다. 그런 글들을 모아 발간한 책 <하늘나라로 보내는 편지>는 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려 주었습니다. 최근 하늘나라 우체국에 다시 들어가 찾아보니 왜 그런지 내 글은 내용 없이 제목만 남아 있었습니다.

그 편지에 뭐라고 썼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습니다. 다만 그가 죽을 것을 예상하지 못한 채 너무 무심했던 것, 간질환을 더 잘 고치는 병원으로 멱살을 잡아서라도 일찍 옮기게 하지 못한 것, 간 이식을 강력하게 권하지 못한 것, 이런 일에 관한 후회를 담아 글을 썼던 것 같습니다. 그 뒤 친구 몇이서 다달이 돈을 거둬 그의 딸과 아들의 대학ㆍ고교 학자금을 몇 년 동안 대준 것이 그나마 좀 위안이 되는 일이었습니다.

그가 세상을 떠난 뒤, 술 취해 노래방에 갔을 때‘꿈은 하늘에서 잠자고 추억은 구름 따라 흐르고, 친구여 모습은 어딜 갔나?’하는 조용필의 ‘친구여’라는 노래가 나오면 늘 목이 메는 기분이 듭니다. 옛 시인들의 시에는 몸이 먼저 죽는다(身先死ㆍ신선사)는 표현이 흔히 나옵니다. 제갈양의 사당을 찾은 杜甫(두보)의 시 <蜀相(촉상)>에도 出師未捷身先死 長使英雄淚滿襟(출사미첩신선사 장사영웅누만금), ‘군사를 내어 이기지 못하고 몸이 먼저 죽으니 길이 영웅들의 옷깃을 눈물로 적시게 하네’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몸이 먼저 죽는다는 건 그 의기와 정신은 길이 살아 있다는 뜻인 것일까요?

내 친구는 왜 그렇게 급하게 몸이 먼저 죽었는지…. 2011년 3월 1일이면 그의 10주기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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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18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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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애 (211.XXX.XXX.129)
세상을 사는 것이 아직 오래지 않은 탓인지 제 친구의 죽음을 경험한다는 것이 참으로 낯설고 먼 이야기인것만 같습니다. 먼 이야기이고 싶을지도 모릅니다. 다른 것들에 의해 가족이나 친구들이 제 마음에서 밀려날 때가 있는데, 그 때마다 소중히 해야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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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3-02 11:27:02
0 0
jsk (121.XXX.XXX.219)
정감있는 사람들은 그리도 급히 훌쩍 가버리는가 봅니다.
그래도 좋은친구들이 있어 이렇게 10 년이 지났는데도
기억해 주는 사람이 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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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26 16:0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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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순 (121.XXX.XXX.16)
고맙습니다. 오늘이 바로 그 날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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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3-01 07:5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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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선숙 (211.XXX.XXX.129)
따뜻한 글들을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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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25 16:5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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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순 (211.XXX.XXX.129)
할 수 있는 일을 다 하시는 것같군요. 저는 그러지 못했던 게 아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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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25 16:5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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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완 (211.XXX.XXX.129)
나도 고1땐가 겨울방학에 경북 죽변에서 보성고로 유학온 최모라는 반친구 녀석의 집에 놀러 간 적이 있었죠. 그때 별로 크지 않았던 죽변 등대 주변의 대죽 군락지에 수북이 쌓인 눈길을 걷던 일이 좋은 추억으로 남아있어요.
임대호. 은행지점장이었던 그와 함께 희희덕거리며 운동을 했던 일이 생각납니다. 살갑고 편하게만 느껴졌던 그가 떠난 지 벌써 10년이 됐군요.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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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25 14:2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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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승국 (211.XXX.XXX.129)
어쩌면 저하고 이렇게 경우가 똑 같은지요. 병명과 기일(음 1/24)만 달랐지 쏘옥 그대롭니다. 참 나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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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25 14:2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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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수 (118.XXX.XXX.158)
눈시울을 적시는 글을 읽고
절친한 친구들의 건강을 생각합니다.
이제는 산에 가도 건강이 좋지않은 몇몇 친구들 때문에 정상에 오르지 못하고 언저리 등산으로 마감하는 일이 많습니다.
"친구여"라는 노래가 목이 메는 기분이 드는 때가 점점 가까이 오고 있습니다.그러나 그것이 큰 슬픔은 아닙니다.
항상 건강 챙기시여 남은 친구도 보살펴주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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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24 17:5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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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휘동 (211.XXX.XXX.129)
사람에게 갖고 있어야 할 것이 몇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친구일 것입니다. 과거의 친구, 현재의 친구, 미래의 친구가 있는데 평생 같이하기가 쉬운 것은 아닐것 같군요. 담연은 그런 친구를 갖고 있는 듯 하군요. 비록 유명은 달리했지만 항상 당신 곁에 그리고 마음 속에 있으니 슬픔보단 행복의 요소라고 할 수 있지 않겠어요? 당신의 글을 읽으면서 나를 돌아봅니다. 과연 나에게도 그런 친구가 있나 하고요. 고등학교 동창 휘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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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24 17:4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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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길순 (211.XXX.XXX.129)
정말 감동적인 글입니다. 사람 산다는 것이...또 몸이 먼저 간다는 것이 다 허망하군요. 정말 언제 골프 한 번 쳐야 할텐데. 채길순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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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24 15:3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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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종하 (211.XXX.XXX.129)
허허~ 하고 잘 웃던 대호의 얼굴이 생각나 가슴이 미어집니다.
먼저 간 대호의 몫까지 열심히 사시려면 건강 챙기시고 술도 좀 줄이시고, 담배도 아직이지요?
항상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조종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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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24 13:2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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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홍 (211.XXX.XXX.129)
왜 이런 글일 '좋은'지, 그 좋음의 결을 저도 모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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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24 11:0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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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처럼 (211.XXX.XXX.146)
글을 읽고 슬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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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24 10:4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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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원 (211.XXX.XXX.129)
안녕하세요 임철순 주필님 맞으세요?

칼럼 잘 읽었습니다 감동이 묻어나오는 글입니다

좋은 글 읽어 감사합니다

늘 건강을 빕니다

중국연변에서 정호원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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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24 09:1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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頭打 (59.XXX.XXX.151)
대호씨가 그립나유?
좀 더 잘 해주지 못한 게 후회되남유?

긍게.. 남은 친구들이라두 있을 때 잘해유!
glglt.. 우선 골 때리는 그 친구부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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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24 08:5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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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순 (211.XXX.XXX.129)
성님과 호주 가서 잘 놀고 있을 때 그 친구는 죽어가고 있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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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25 16:5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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頭打 (59.XXX.XXX.151)
호주 가서 잘 논 거이 죄가 되남유?
노는 분은 놀구, 일하는 분은 일하구, 아픈 분은 아프구....

임주필님, 우리 사는 시상이 글케 돌아가는 거래유.
우리 지속적을루다가 글케 살자구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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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26 00:4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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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우 (188.XXX.XXX.175)
좋은 친구의 죽음이 안타깝게 다가 옵니다.
유독 가깝고 정많은 친구들이 먼저 가더군요.
"사이버 추모공간"에 추모 글을 남기신 임주필님의 애절한 심정이
짐작 됩니다. 그 분의 자제들을 위한 친구분들의 따뜻한 모습도
아름답습니다. ... 건안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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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24 06:2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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