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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이라는 무기
김흥숙 2010년 02월 22일 (월) 01:27:36
제주행 비행기를 타러 간 김포공항, 대한항공 카운터의 여자 직원은 손이 빠를 뿐만 아니라 친절했습니다. 겨우 이, 삼분 간의 대화로 기분이 좋아져 ‘제주에 갈 땐 언제나 대한항공을 타야지’ 생각했습니다. 그녀 덕에 오래 전 모 백화점 지하매장에서 만났던 사조참치 직원이 떠올랐습니다. 참치를 사면 두 가지 선물 중 하나를 주겠다며 열심히, 친절하게 회사 홍보를 했습니다.

두 가지 선물은 다 쓸모가 있어 보여 하나를 선택하기가 어려웠습니다. 그 직원에게 두 가지를 다 달라고 했더니, 앞으로 참치는 사조참치만 사겠다고 약속하면 두 가지를 다 주겠다고 했습니다. 한참 고민하다 약속하고 말았습니다. 선물도 선물이지만 그녀의 친절 때문에 지키기 힘든 약속을 한 것입니다. 그 후로 참치를 살 때면 늘 사조참치를 샀습니다. 사조참치가 없어 다른 회사 제품을 살 때는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그녀에게 미안했습니다.

출발수속을 마치고 시간이 남아 3층으로 올라갔습니다. 한쪽엔 스타벅스 카페가 있고 반대쪽엔 상가가 있었습니다. 국제공항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외국인 여행자가 많이 눈에 띄었습니다. 김포공항이 처음 생긴 건 1939년 일본군이 활주로를 건설하면서라고 합니다. 해방 후엔 미국 공군이 사용하다가 1954년이 되어서야 우리나라가 일부 사용하게 되었고, 1958년에 대통령령으로 국제공항으로 지정되었다고 합니다. 오늘날엔 국내선 이용자 중에도 외국인이 한국인보다 많다고 합니다. 그러나 3층 상가만 보아서는 국제공항보다 시외버스터미널 같았습니다.

상가 한쪽 패스트푸드점도 사정은 마찬가지였습니다. 전국 곳곳에 분점을 둔 유명 프랜차이즈 매장답지 않게 초라하고 피곤해 보이는 직원들 얼굴엔 웃음이 없었습니다. 최저임금 수준의 보수를 받는 비정규직일 거라 생각하니 안쓰러웠지만, 한편으론 홍세화 선생의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에서 본 구절이 생각났습니다. 앞에서 오는 아시아인을 보면 어느 나라 사람인지 맞힐 수 있다는 프랑스 아가씨 얘기입니다. “부드러운 표정으로 걸어오는 사람=일본사람, 무표정으로 느긋한 걸음=중국사람, 화난 얼굴에 급한 걸음=한국인.”

신용카드로 음료수 두 잔을 사고 영수증을 받아 보니 2천여 원, 조금 미안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매장 한쪽에 앉아 상가를 둘러보니 일 년 전과 똑 같아 보였습니다. 동남아사람들로 보이는 외국인 여럿이 패스트푸드점으로 오더니 머리 위의 메뉴를 보며 의논을 했습니다. 마침내 한 사람이 패스트푸드점 직원에게 달러로 계산할 수 있느냐고 영어로 물었습니다. 직원은 굳은 얼굴을 바꾸지 않은 채 손가락으로 아래를 가리키며 “Change”라고 대꾸했습니다. 질문했던 사람이 불쾌한 얼굴로 일행에게 “아래층에 가서 바꿔 오래” 하며 몸을 돌렸습니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 그들을 돕지 못한 게 내내 미안하고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습니다.

국제공항에 있는 식당에서 왜 달러를 받지 않을까, 피치 못할 사정이 있어 달러를 받지 않는 거라면 미안해해야 하지 않을까, 달러는 받지 않아도 신용카드는 받는다고 말해줄 순 없었을까? 국제공항에서 일하려면 최소한의 영어와 예절 교육은 받아야 하는 것 아닐까.

짧은 제주 방문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김포공항역 지하철역에서 교통카드를 충전할 때 외국인 한 사람이 역무원에게 김포공항으로 가려면 얼마를 내야 하느냐고 물었습니다. 역이 하도 크니 무언가를 타야 공항으로 갈 수 있을 거라고 짐작했나 봅니다. 역무원은 웃긴다는 듯이 하늘을 손가락질하며 “Go up”이라고 했습니다. 그냥 위로 올라가면 공항에 갈 수 있다는 뜻이었겠지만 돌아서는 외국인의 얼굴엔 불쾌감이 역력했습니다.

어쩌면 패스트푸드점의 직원과 역무원은 자신들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모를 겁니다. 달러를 우리 돈으로 바꿔오라고 “Change”라고 하고,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라고 “Go up”이라고 했는데 뭐가 문제냐고 할 겁니다. 자신들의 태도와 말투가 얼마나 무례했는지도 모르겠지요. 제주를 다녀온 지 며칠이 지났지만 그 짧은 여행의 시작과 끝에서 목격한 불친절은 잊히지 않습니다. 직접 겪은 외국인들은 훨씬 더 오래 그때의 불쾌감을 기억할 겁니다.

정부는 2008년 10월에 대통령부인을 명예위원장으로 하는 위원회를 구성하고 올해부터 2012년까지를 ‘한국방문의 해’로 선포했습니다. 위원회 홈페이지에는 “현재 780만 명에 머무르고 있는 외래 방문객을 획기적으로 증대시키기 위한 특별행사”로 ‘한국방문의 해’를 지정했다고 쓰여 있습니다. “대형이벤트 상호연계를 통한 시너지 효과 극대화,” “관광산업 재정비를 통한 관광한국의 관광 경쟁력 강화” 등 거창한 목표도 나와 있습니다.

대형이벤트를 열고 관광산업을 재정비하면 손님이 올지 모릅니다. 그러나 한번 다녀가는 손님만으로 ‘관광한국’을 이룰 수는 없습니다. 다녀간 사람의 가슴속 추억의 일부가 되어 다시 오고 싶게 만들고, 다른 사람에게 가보라고 추천하게 만들어야 성공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성공을 이루는 가장 큰 무기는 친절입니다. “인생에는 세 가지 중요한 요소가 있다. 첫째는 친절, 둘째도 친절, 셋째도 친절이다”라는 말은 미국 작가 헨리 제임스가 19세기에 한 말이지만 21세기에 들어선 지금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김포공항은 작년 말 국내 15개 공항에서 실시한 미세먼지농도 조사에서 가장 먼지가 많은 공항으로 밝혀졌지만, 올해부터 2013년까지 대대적인 리모델링이 이루어지고 나면 공기가 크게 개선될 거라고 합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한국방문의 해’를 선포하기 전에 김포공항 리모델링을 했어야 하지만 정부가 큰 뜻을 갖고 하는 일에는 시민이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많습니다. 다행인 건 건물을 리모델링하려면 몇 달에서 몇 년씩 시간이 걸리지만 마음은 1초 만에도 리모델링할 수 있다는 겁니다. 부디 김포공항에서 일하는 모든 분들이 마음을 리모델링하여 친절해지시길, 그리하여 많은 사람들의 추억 속 한 자리를 차지하시고 ‘한국방문의 해’에도 기여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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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9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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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영태 (218.XXX.XXX.129)
외국인들은 서로 말이 통하지 않아도 어떻게든 가르쳐주려고 노력하는데 우리는 그렇지 못하다는 생각을 합니다.역시 마음 바탕에 친절함이 배어 있지 않아서이겠지요.
위 견해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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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3-07 19:1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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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덕희 (121.XXX.XXX.39)
내 범주 안에서라도 친절하려고 하는데,이산가족의 집단가족우울증이 명절 끄트머리에 붙어 있어서 힘이 드네.미소와 더불어 친절함,좋은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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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23 22:2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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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내천 (112.XXX.XXX.244)
관광의 종착지는 인물이라죠?
아무리 쟈연경관이 뛰어나고 유적이 많아도 현재의 사람들이 불친절하거나 과거의 사람들중 인물이 부재하다면 머잖아 그나라에는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길 것입니다!
최고의 관광상품은 사람임을 깨우쳐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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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22 16:4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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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현 (211.XXX.XXX.32)
김포공항에 근무하시는 많은 분들이 불친절한 것은 아니고 아마도 한두분이 그리했을 거라 믿어집니다. 다만, 한두분이라도 그런 불친절이 있어서는 아니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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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22 13: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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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완 (211.XXX.XXX.32)
친절은 모든 인간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미덕입니다. 선진국일수록 사람들이 친절합니다. 친절할뿐 아니라 매너가 좋아야 합니다. 외국인들을 많이 대하는 사람들은 기초 영어와 상식 매너의 교육을 반드시 받아야합니다. 우리 민족의 가장 큰 약점은 불친절입니다. 비용을 들이지 않고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게 친절임을 기억해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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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22 13:0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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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연수 (211.XXX.XXX.32)
안녕하십니까?
오늘 칼럼 잘 읽었읍니다.그런데 한가지 보충사항이 있습니다.예약문제입니다.
우리가 한,두달전에 예약한 후 일행중 가는 멤버가 교체되는 경우가 많이 있는데 그럴때 명단교체를 전혀 받아 주지 않고 새롭게 예약되어 못가는 일이 비일비재합니다.

여행사들과의 관계등 의문사항이 많지만 다 놓아 두고 최소한 2주전까지는 탑승자 명단 교체가 가능하도록 해줘야 진짜 친절한 항공회사가 아닐까요? 이렇게 크고 좋은 '자유칼럼'에서 영향력을 발휘해 주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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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22 13:0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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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재원 (210.XXX.XXX.253)
세계 모든 항공사에서는 예약에서의 이름 교체는 예약의 투명성을 위해서 운영하지 않고 있습니다.
만약 예약에서의 이름 교체가 이루어진다면 계획이 확정되지 않은 승객들께서 이름만 넣어놓고 예약을 불법 점유하는 사례가 발생할 가능성이 다대합니다. 특히 좌석 확보가 필수적인 여행사에서 이러한 악용 사례들이 많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이 뿐만 아니라 대기 예약자들에게도 예약 확약이 미루어지는 상대적인 불이익을 줄 수 있는 등 여러가지 부정적 효과가 발생할 우려가 있기 때문에 운영할 수 없습니다.
항공사에서 근무하고 있는 직원으로 그냥 지나가다가 한 말씀 올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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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22 15: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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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희 (211.XXX.XXX.51)
친절이 상황의 개선에 큰 도움이 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어려운 상황, 처지가 좋지 않을 땐 친절하게 구는 것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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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22 11:4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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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수 (118.XXX.XXX.158)
짧게 설명하신 체험담에서 친절에 대한 느낌을 잘 받았습니다.
설도 지났으니 음력으로도 새해가 되었습니다.
친절을 마음에 두고 이 해도 보내겠습니다.
건안을 기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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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22 09:5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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