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파도의 꿈_(김수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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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파도의 꿈

김수종

2010년 02월 08일 (월) 06:14:20

제주도 남쪽 바다에 외로운 유인도가 하나 있습니다. 연간 30만 명 정도의 육지 관광객이 국토 최남단이라는 매력에 이끌려 마라도를 찾습니다. 그들은 마라도를 오가는 뱃길 옆에 평평하게 누운 섬을 대수롭지 않게 쳐다보며 지나치지만, 이 섬 주민들은 관광선을 바라보며 마라도를 부러워합니다. 왜 우리 섬에는 사람들이 오지 않을까 하고요.


	가파도의 보리밭과 고인돌

이 섬의 이름은 가파도입니다. 제주도의 서남쪽 끝 모슬포 항구에서 뱃길로 4~5킬로미터쯤 떨어져 있는 섬입니다. 모슬포 일대에서는 옛날부터 이런 농담이 전해집니다. 이곳에서 돈을 빌리면 ‘갚아도 좋고 말아도 좋다’고요. 바로 앞에 있는 두 섬 가파도와 마라도를 패러디한 농담입니다.

따뜻한 제주도라지만 한겨울 바닷바람은 혹독했습니다. 쾌속 어선을 타고 바다를 가르니 20분이 채 걸리지 않아 가파도의 북쪽 상동 포구에 닿았습니다. 제주 본섬에서 보면 금방 물속에 잠길 것 같더니만 상륙하고 보니 섬 전체가 꽤 높고 또 넓었습니다. 제주 본섬과 가파도 사이는 2킬로미터에 불과하지만 해류가 거칠게 흐르고 하얀 물결이 검푸른 바다를 뒤덮으니 절해고도 같이 느껴집니다. 물결이 밀려온다는 뜻의 ‘가파도’(加派島)란 섬 이름이 실감납니다.

포구에 내리자 첫눈에 트럭과 승용차 몇 대가 들어왔습니다. ‘에너지관리공단’이란 표시가 있는 녹슨 자전거도 대여섯 대 서 있었습니다. 콘크리트로 포장된 길을 따라 섬 주위를 한 바퀴 돌았습니다. 큼직한 트럭도 지나가고, 포클레인도 보입니다. 젊은 경찰관 두 명이 스쿠터를 타고 그 길을 달렸습니다. 가파리 이장 김동옥씨에게 물어보니 이 섬에는 자동차가 아홉 대 있다는 것입니다. 해안선의 길이가 4킬로미터 남짓 되는 이 조그만 섬에서도 자동차 문명이 꽃이 피어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주도의 다른 부속 섬과 달리 가파도는 기막힌 절경이 없습니다. 가장 높은 곳이 20미터로 바위섬과는 달리 바다를 내려다보는 게 아니라 바다를 바라보는 느낌이 색다릅니다. 가파도에서 바라보는 제주 본섬 역시 참 보기 좋습니다.


	동네마다 고양이들이 많다

가파도는 모래사장이 없고 두 종류의 화산암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까맣고 구멍이 숭숭 뚫린 현무암이 주종을 이루지만 축대와 밭담은 모양이 둥글둥글하고 회색빛을 띈 조면암으로 쌓았습니다. 해변에는 기괴한 암석이 많습니다. 그 중에 ‘큰왕돌’과 ‘어멍아방돌’은 주민이든 외부인이든 절대 올라가서는 안 되는 금기(禁忌)입니다. 사람이 그 돌에 올라가면 파도가 거칠어진다는 속설이 있습니다. 현대의 가파도 주민들도 생업의 대부분을 바다에 기대고 있으니 이를 징크스처럼 생각합니다. 바다란 원래 종잡을 수 없고, 특히 가파도에는 너울성 파도가 심해서 주민이 자연에 대해 갖는 외경심은 남다릅니다.

한겨울인데도 가파도의 색깔은 푸릅니다. 가파도에는 바람에 웃자라지 못한 상록수가 남쪽 해변을 띠처럼 두르고 있고, 돌담을 따라 금잔화가 노랗게 피었습니다.
특히 섬의 겨울 풍경을 결정짓는 것은 보리밭입니다.

가파도의 넓이가 27만평인데 해안가와 마을 주택지를 뺀 17만평 모두가 보리밭입니다. 아직 발목을 덮을 정도가 아닌데도 온 섬이 푸른색을 띱니다. 보리는 가파도의 가장 중요한 농산물입니다. 가파도의 보리 재배는 그 역사가 오래입니다. 작은 섬이지만 땅을 3~4미터를 파들어 가도 암반이 나오지 않을 정도로 깊습니다.

김동옥 이장의 설명이 재미있습니다. 보리가 한창 자라는 4월이 되면 보리대가 여자의 키를 훨씬 넘게 되고, 그래서 옛날에는 이 보리밭에서 섬의 총각과 처녀들의 로맨스가 무르익었다고 합니다. 이튿날 보리대가 뉘인 것을 보며 동네 어른들은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강아지들이 심하게 놀다 갔구나.”

가파도 보리는 맥주 원료로 팔려나가기도 하지만, 보리밭은 작년에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보리밭 축제’ 테마로 각광을 받았습니다. 하얀 물결이 밀려오는 바다, 까만 현무암 해변, 푸른 보리밭이 가파도의 3대 매력 포인트로 알려지게 되어 사람들이 찾은 것입니다.

가파도의 보리밭 한가운데 무게가 30톤이 넘는 바위가 있는데, 숫자가 적혀 있습니다. 고인돌 표시입니다. 가파도에는 50여 기의 고인돌이 확인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민들이 밭담으로 옮기는 등 많이 훼손했다고 합니다. 해안가에서는 패총 흔적도 발견됐습니다. 선사시대 이 섬에 사람들이 살았다는 증거가 될 수 있지만 체계적 연구가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고 합니다. 조그만 섬의 유적들이라 별로 따뜻한 조명을 받지 못하는 듯합니다.


	조면암으로 된 밭담

기록에 의하면 가파도의 인간 활동은 목마장으로 시작됐습니다. 1491년의 ‘성종실록’에 이 섬에 말을 기르게 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인간 활동이 구체적으로 기록된 것은 1751년의 대정현지(大靜縣誌現)입니다. 목사 정언유가 소 103마리를 방목하고 이를 돌볼 사람 10명을 이곳에 보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그런데 1840년 헌종 6년 영국선박 2척이 접근하여 소를 총으로 쏘아 약탈하는 일이 벌어지자, 관은 섬을 비우는 정책을 폈습니다. 2년 후 주민들의 진정에 따라 40여 가구가 이곳으로 이주하면서 본격적으로 주민들이 살기 시작했습니다.

가파도에 재미있는 역사적 내력이 있는데, 그것은 1653년 네덜란드인 하멜 일행이 탄 상선이 난파되어 표류했던 곳이란 설(說)입니다. 하멜이 처음 표류했던 정확한 장소를 놓고는 정설이 없습니다.

가파도의 인구가 번창했던 때는 1980년을 전후한 시기로 9백 명이 넘는 큰 섬마을이었습니다. 그 후 이 섬은 다른 곳에서와 마찬가지로 사람이 떠나고 쇠퇴하기 시작해서 지금은 120세대 250명이 살고 있으며 65세 이상 인구가 85명입니다. 번창기에 가파초등학교 학생 수는 135명에 이르렀으나 지금은 겨우 10명입니다.

도시 사람들에겐 한적하고 비어 있는 가파도가 좋아 보입니다. 조그만 섬에 250명이 오순도순 사는 게 행복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섬 사람들에겐 섬이 텅텅 비어가는 기분뿐입니다. 이제 섬에는 사람 숫자와 들고양이 숫자가 비슷해지고 있습니다. 지난 4년 동안 섬에서는 장례를 치른 적이 없습니다. 노인이 병들어 병원에서 죽으면 이미 출향한 자녀들이 사는 곳에서 장례를 치르기 때문입니다.

가파도 주민들이 더욱 외로움을 느끼는 것은 한 때 ‘가파리의 한 반’이었던 부속도서 마라도가 인기 관광지로 사람이 바글바글 몰려들기 때문입니다. 마라도를 찾는 관광객은 연간 30만 명입니다. 마라도는 섬이 무너질 정도로 사람이 몰려 돈벌이가 쏠쏠합니다. 이에 비해 작년에 가파도를 찾은 내방객은 2만 명 정도입니다. 섬의 규모나 인구수로 볼 때 결코 적은 숫자가 아니지만, 옆 동네가 잘되는데 우리 동네가 정체되면 상대적 박탈감이 느껴지는 법입니다.

이 가파도에 새로운 변화의 기류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탄소제로 섬’(Carbon-free Island)으로 만들어 생태 관광으로 마을을 발전시켜 보자는 민간운동입니다. 민간운동에 점화한 것은 한 지방 기업인이고 , 이 운동을 마을 주민과 함께 활성화하겠다고 나선 사람은 가파리 이장입니다.

김대환씨는 전기 및 소방설비 업체 대경엔지니어링의 대표입니다. 강원도 횡성사람인데 제주도에서 군복무를 하다가 바다가 좋아져서 서귀포에 정착했고 기업을 키웠습니다. 김대표는 20년 전부터 가파도가 좋아 자주 다니면서 ‘일사일촌(一社一村)’을 맺어 가파리 주민을 위해 봉사활동을 했습니다. 그런데 날이 갈수록 인구가 줄어들고 쇠락하는 것을 안타까워하던 차에 마라도관광이 잘되는 것을 보고 이 섬도 관광지로 개발하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섬이 견딜 수 없을 정도로 훼손되는 마라도관광과 같은 개발모델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김대표는 가파도에 관심을 가진 대학교수, 건축가, 회사원, 언론인, 공무원, 외교관, 관광전문가들을 모아 ‘가파도 미래발전위원회’를 만들었습니다. 세미나도 열었습니다. 여기서 나온 마을가꾸기 모델이 ‘탄소제로 섬’입니다.


	파도를 부른다는 ‘큰왕돌’, 그 너머로 제주 본섬이 보인다

이 운동에 참여한 사람들은 관광객들이 몰려드는 제주도의 두 부속 섬, 우도와 마라도가 절제 없는 관광개발로 자연경관도 훼손되고, 섬의 문화도 파괴되고, 인심도 야박해지는 등 한참 잘못되고 있다는 데 의견을 모았습니다. 섬의 자연환경이나 마을의 모습을 잘 보전하고 주민들은 평소 생업에 종사하되, 적정한 관광객을 받아들여 가파도 해안을 걷게 하고 가파도에서 생산된 농수산물로 만든 음식을 제공하여 주민 소득을 올려보자는 아이디어입니다. 다행히 걷기운동을 유행시킨 (사)제주올레가 올해 봄에 가파도에 올레코스를 개설하기로 했습니다. 일단 올레코스가 개설되면 서울 등지에서 온 사람들은 걸어보려고 한다는 점에서 가파도 올레길을 찾는 사람이 많아질 것은 확실해 보입니다.

문제는 가파도 주민들의 참여입니다. 아무리 좋은 프로그램도 주민이 원하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습니다. 가파도 주민의 중심에는 김동옥 이장이 있습니다. 가파도에서 나고 자란 김 이장은 이 ‘탄소제로 섬’ 프로그램에 적극적입니다. 마라도같이 섬 환경과 인심이 파괴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합니다.

김 이장은 가파도에서 태어나 50평생을 살았습니다. 지방공무원이 되어 몇 년 제주 본섬에서 보냈고, 한때 육지 대도시생활도 했지만 그는 항상 가파도가 그가 쉴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가 대도시에서 가장 고통스러웠던 것이 불면증이었다고 합니다. 그 이유를 찾던 그는 휴가 때 돌아온 고향 가파도에서 깨달았습니다. 그는 어릴 때 파도에 자갈이 구르는 소리를 밤새 들으며 잠을 잤습니다. 그는 파도소리와 자갈 구르는 소리가 그의 영원한 자장가라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는 가파도에 이상한 건물이 들어서고 자동차가 연기를 내뿜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생각은 활짝 열려있는 사람입니다.


	가파도의 마을

‘탄소제로 섬’ 프로그램의 핵심은 말 그대로 이산화탄소를 배출하지 않은 섬 경제를 만드는 것입니다. 첫째 숙제가 9대의 화석연료 자동차가 더 이상 늘어나지 않게 하는 것이고 빠른 시간 내에 이들 자동차마저 전기자동차로 바꾸는 일입니다. 이 섬에는 펜션이 3개 있는데 차량은 대부분 펜션의 소유입니다. 이것들을 전기 자동차로 대체하려면 차량 값이 만만찮아 반발이 예상됩니다. 그러나 김 이장은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고 낙관합니다.

둘째 과제는 지금 사용하는 경유 발전기를 풍력이나 태양광과 같은 청정 재생에너지로 대체하는 것입니다. 가파도에는 바람이 많이 부니 풍력자원이 풍부합니다. 그러나 풍력이나 태양광으로 전기를 생산하는 것은 단가가 비싸 획기적인 외부 지원이 없으면 불가능합니다.

명실상부한 ‘탄소제로 가파도’를 만들려면 풍력과 태양광 에너지를 이용할 시스템을 구축해야 합니다. 정부와 지자체의 지원이 필요합니다. 유권자도 몇 명 되지 않은 이 섬에 투자하는 것은 정치적으로 비효율일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대통령이 강조하는 녹색경제 시대입니다. 제주도는 2012년 세계환경총회 개최를 계기로 환경수도를 외쳐댑니다. 실험 프로그램으로 ‘저탄소 마을 만들기’를 해볼 수 있는 곳으로 가파도는 아주 적절한 곳으로 보입니다. 이곳에서 ‘저탄소 녹색마을’을 성공시켜 다른 곳으로 확산한다면 그게 바로 환경수도가 되는 지름길이 될 것입니다.

인내천 (112.XXX.XXX.244)

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가파도!
좋은 생각 입니다~~
가파도에서 부터 시작되는 친환경 마을이 두만강 기슭까지 번져갔음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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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09 13:37:21

3		0

장명선 (121.XXX.XXX.62)

김대환대표,김동옥리장님 화이팅입니다.장명선 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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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09 12:58:18

3		0

pmhoon (121.XXX.XXX.62)

좋은 글 입니다. 가파도에 행운이 깃들기를!
사족/ 글을 압축해 써주시면 좋겠습니다. 아니면 1,2회로 나누든지. 인터넷 글은 제약이 없어 너무 길어지는 경향이 있는 것은 아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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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09 12:56:48

2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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