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대는 희소가치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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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대는 희소가치가 아니다

황경춘

2010년 01월 20일 (수) 01:20:38

하룻밤 사이에 주름살이 느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갑자기 시력이나 청력이 떨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2009년 마지막 달력이 2010년 1월의 새것으로 바뀌고 아침에 떡국을 먹고 보니 해가 바뀌었구나 하는 실감이 새삼 났습니다.

예년 연말에는 텔레비전으로 제야의종 행사를 보았으나 지난해에는 아는 분의 초청으로 부부동반으로 한 송년음악회에 갔습니다. 연주가 끝난 뒤 청중과 함께 밖으로 나와 해가 바뀌는 자정에는 모두가 환호성을 지르며 동짓달 보름이 막 지난 차가운 달을 향해 오색의 풍선을 날리며 새해를 맞이했습니다.

많은 나라에서 나이 계산을 만(滿)으로 하는 가운데 우리나라에서는 아직도 오랜 관습으로 해가 바뀌면 한 살을 더 먹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어릴 적에는 동지 팥죽만 먹어도 한 살을 더한다고 했습니다.

학생시절에는 어서 성인이 되어 사회활동을 해봤으면 하는 생각을 할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던 세월이 흘러 어느덧 경로우대증을 받은 지도 오래되고 벌써 팔순의 후반에 들어섰습니다. 이제는 나이를 더하는 것의 두려움보다 어떻게 하면 그 몹쓸 늙을 노(老)자의 주법(呪法)에서 조금이나마 혹은 잠시나마 해방될 수 있을까 하는 푸념만 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老자가 든 낱말에는 노련(老練) 또는 노숙(老熟)과 같은 좋은 뜻의 말도 있지만 노망(老妄), 노쇠(老衰), 노추(老醜), 노회(老獪) 등 듣기에 거북한 말들이 많습니다. 늙은이에 붙어 다니는 이러한 것들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지만 그 단어들이 풍기는 궁상을 되도록 줄여 볼 노력은 해보고 있습니다.

1961년 5ㆍ16 군사혁명이 일어난 며칠 후 중대발표가 있다 해서 청와대로 뛰어갔습니다. 좁은 실내에서 대기 중인 내외신 기자들 사이에 조선일보의 홍종인(1903-1998) 선생이 계셔 깜짝 놀랐습니다. 웬일이냐고 물으니 비서실의 초청으로 왔다고 했습니다.

홍 선생은 그때 아마 신문사 주필은 아니고 회장직에 계셨다고 생각됩니다. 군부의 무슨 특별한 요청이 있어 왔는지는 모르지만 역사적인 사건의 현장을 보고 싶다는 노(老)언론인의 취재 욕심을 보는 것 같아 감동한 기억이 있습니다.

제가 처음 홍 선생을 알게 된 것은 1935년경이라 생각합니다. 초등학교 3~4학년 무렵 사랑채에 신문지로 새로 도배까지 한 공부방이 꾸며졌습니다. 저는 모르고 있었는데 어느 날 찾아온 친구 형이 도배지에 있는 기사 중 하나가 조선일보 홍종인 기자의 백두산 탐방 기사라고 알려 주었습니다.

무슨 까닭인지 이 기사는 어린 제 기억에 오랫동안 남아 있어, 광복 후 홍 선생과 처음 인사를 나누었을 때 이 이야기를 했더니 홍 선생은 크게 흥미를 가지며 어릴 적 일을 어찌 잘 기억하고 있느냐고 놀란 표정이었습니다.

해박한 지식으로 홍박(洪博)이라는 애칭으로 후배 언론인들의 존경을 받은 그와 저는 나이 차에 관계없이 무척 가깝게 지내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그는 고령에 들어서면서도 언론 관계 행사에 부지런히 참석하셔 노익장(老益壯)을 과시하였습니다. 그런 점에서 같은 언론계 대선배이신 이관구, 오종식, 김상만 선생 등과는 좀 색다른 친근감을 가지게 했습니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그의 직설적 화법과 나이를 잊고 언론단체 행사나 젊은 후배들의 출판기념회 등에 자주 나타나는 그를 탐탁해 하지 않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특히 어느 모임에서나 뒷자리에 서있는 하객들은 좀 무질서해지기 쉬운데, 그럴 때 마침 옆에 있던 홍박이 혀를 차거나 주의를 주어 그런 사람들을 무색하게 만드는 광경을 몇 번 목격했습니다. 그래서 홍박이 근처에 있으면 그를 피해 슬슬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기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런 장면을 보며 저는 나이가 들었을 때의 자기 처신을 생각해 볼 때가 있었습니다. 지금 저는 그 당시의 홍박 나이를 훨씬 지났습니다. 저는 홍박처럼 유명인사는 아니니 알아보는 사람은 적지만 그래도 가끔 나가는 모임에선 거의 제가 연상자가 됩니다. 그래서 주위에선 자연히 신경을 쓰고, 나이가 위라는 오직 그 한 가지만으로 주목을 받게 됩니다.

별 주변머리 없는 저로서는 그런 이유로 주위에서 신경을 쓰는 것이 매우 불편합니다. 가끔 고관대작(高官大爵)을 지낸 사람 중에 마치 무슨 잘못이나 저지른 것처럼 남의 눈을 피하는 경우를 보기도 하지만 제 경우 그런 이유는 아닙니다. 그저 노소동락(老少同樂)한다는 가벼운 마음으로 나가는 모임에서 필요 이상의 시선과 친절을 받으면 오히려 이쪽이 쑥스러워진다는 뜻입니다.

요즘에 와서 특히 마음 상하는 일은 저보다 나이 적은 친구의 부음을 자주 받는다는 것입니다. ‘이대로’라는 건배사가 정통으로 가슴에 와 닿는 인생의 낙엽 길을 조심스레 걷고 있는 중입니다. 너무 신경 쓰지 말고 조용히 대해 주면 무척 고맙고 마음 편합니다. 다만 ‘폭탄주’순서에서 슬그머니 저를 빼주는 마음씨 고운 후배의 배려까지도 눈치 채지 못하는 메마른 늙은이는 되지 않도록 애쓰고 있습니다.

이제 80대가 희소가치인 세상은 지났습니다. 먼저 80대에 들어선 사람이 그것을 알고 처신하고 주위의 사람들도 그렇게 대해 주면 제 생활이 훨씬 자유로워지지 않을까 생각하는데 엉뚱한 꿈일까요?

이종완 (211.XXX.XXX.129)

저는 아직 80이 안 되었지만 때로는 사람 대우를 받지 못 합니다. 예를 들면 선전물을 모든 사람들에게 주면서 나는 건너 뛰는 겁니다. 서울 지하철 속에서도 그랬고 중국 병원 대합실에서도 그랬습니다. 나는 그것을 기분 나뿌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무시 당하면 오히려 마음이 편합니다.

KBS의 언제나 청춘이라는 푸로그람에서 늙은이가 훌라후푸를 돌리는 광경을 보면 너무나 어울리지 않는 행동이라고 느껴집니다. 늙은이는 늙은이 답게 처신해야지 왜 젊은이의 흉내를 내야합니까. 말 그대로 나이 값을 해야지요.

중국 말로 스승을 老師 라고 합니다. 늙은 스승에 대한 존경심을 나타내는 말이라 생가됩니다. 늙은이가 늙은이답게 처신해야 존경을 받습니다.

이종완 연변 과기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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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1-22 13:2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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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비 (174.XXX.XXX.104)

연로하신 분들께 지나친 친절도 편하지 않게 해드리는 것이군요.
가만히 생각하니 그럴 것 같습니다.
저도 선생님 연세일 때가 되면 그러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고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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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1-20 22:2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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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홍 (211.XXX.XXX.129)

황 경춘 선생님.
선생님의 글을 읽으면 늘 담담해집니다.
제게 더 없는 축복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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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1-20 16: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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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덕희 (121.XXX.XXX.207)

건강을 보존하셔서,역사 지킴이가 되주셔야 함니다.굴곡많은 시대를 보내신 연령이셔서 앞으로 생애동안 좋은일도 보셔야 할터인데.......정치가 많이 어지럽습니다.이산가족 이세대로써 황생님세대는 아픔이 가는 세대지요.저는 전쟁후 태어나서 노력을 많이해도 단견의 소유자 밖에 못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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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1-20 14: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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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처럼 (211.XXX.XXX.146)

더욱 건강하세요. 9988 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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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1-20 10:3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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