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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줄에서 떨어진 광대
임철순 2009년 12월 10일 (목) 01:46:44
달포 전인 10월 24일, 김성우 전 한국일보 고문의 문장비 제막식이 그의 고향인 욕지도(경남 통영시)에서 열렸습니다. 그곳 섬 주민과 통영시민들이 <돌아가는 배>라는 그의 자전 에세이 중에서 맨 마지막 글 첫머리 부분을 큰 돌에 새겨 헌정한 행사입니다. 형식도 특이한 문장비는 개인에게 큰 영광이지만, 욕지도로서는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이 하나 더 생긴 셈입니다.

행사에 참석하지 못하고 현장을 촬영한 동영상을 나중에 살펴보니 본 행사는 물론 뒤풀이 잔치가 아주 흥겨워 보였습니다. 김 전 고문은 뒤풀이 잔치에서 독일의 신문기자이며 작가였던 안톤 슈낙(1892~1973)의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1946년 발표)을 처음부터 끝까지 막힘 없이 외웠습니다. 200자 원고지로 12매가 채 되지 않는 분량이지만 그걸 다 외우는 게 그리 간단한 일은 아닙니다.

하지만 좋으면 자꾸 읽게 되고 자꾸 읽다 보면 저절로 외우게 된다는 게 그 분의 생각이니 고교 교과서에 실렸던 명문을 외우는 건 그 분으로서는 오히려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수많은 시를 외우고 있는 ‘명예시인’ 김 전 고문은 견습기자 면접시험에서도 아는 시를 외워보라고 주문하곤 했던 분입니다.

몇 년 전의 일입니다. 술자리에서 이 글이 화제에 올랐을 때, 내색을 하지 않았지만 나는 크게 놀랐습니다. 그 분이 글의 후반부인‘자동차에 앉은 출세한 부녀자의 좁은 어깨, 유랑극단의 여배우들’ 이렇게 읊다가 ‘세 번째 줄에서 떨어진 광대’를 말할 때였습니다. 그 다음엔 ‘지붕 위로 떨어지는 빗소리, 휴가의 마지막 날…’이 잇따라 나오지만, 세 번째 줄에서 떨어진 광대에 대해 “세 번이나 줄에서 떨어졌으니 슬프지 않겠느냐?”는 말에 나는 한 방 얻어 맞은 기분이었습니다.

나는 그 때까지도 그 광대가 첫 번째, 두 번째 줄은 잘 걷고 세 번째 줄에서 떨어진 것이라고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더 쉽게 말하면 셋째 번 줄에서 떨어진 거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우리 말에 삼세번이라는 것도 있지만, 두 번은 성공했는데 마지막 세 번째 줄에서 떨어졌으니 얼마나 슬플까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내 생각이 틀렸다면 그 문장은‘세 번째 줄에서 떨어진 광대’가 아니라 ‘줄에서 세 번째 떨어진 광대’나 ‘세 번(이나) 줄에서 떨어진 광대’라고 써야 마땅하다고 나는 분개하면서, 안톤 슈낙이 글을 잘못 썼든지 아니면 번역자가 엉터리라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나중에 원문을 확인해 보니 그 광대는 세 번이나 줄에서 떨어진 게 분명했습니다. 원문 ‘der Artist, der dreimal vom Drahtseil fiel;’에 나오는 dreimal은 영어로 three times라는 뜻이니 논란과 오해의 소지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왜 그렇게 번역을 해서 나를 헷갈리게 만들었을까? 고교 2학년 때 그 글을 처음 읽었으니 거의 40년 동안 나는 잘못 알고 있었던 셈입니다.

이 글의 독일어 원제 <Was traurig macht>는 ‘무엇이 슬프게 하는가’, 또는 ‘슬프게 하는 것’이라는 뜻인데, 처음 번역한 수필가ㆍ독문학자 聽川 金晋燮(청천 김진섭ㆍ1903~?)은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이라는 더 좋은 제목을 붙였습니다. 청천은 백설부(白雪賦) 주부송(主婦頌)과 같은 명 수필로 우리 문학과 삶을 윤택하게 해 준 분입니다. 일본 호세이(法政)대에서 독문학을 배운 청천이 독일어를 바로 번역한 것인지 일본어를 중역했는지 그것은 알 수 없지만, 그의 번역이 명 번역이라는 점은 아무도 부인할 수 없을 것입니다.

예컨대, ‘정원 한 편 구석에서 발견된 작은 새의 시체 위에 초추(初秋)의 양광(陽光)이 떨어져 있을 때’는 ‘정원의 한 모퉁이에서 발견된 작은 새의 시체 위에 초가을의 따사로운 햇빛이 떨어져 있을 때’라고 돼 있는 다른 번역보다 어감과 리듬이 더 좋고, 멋과 맛이 있습니다. 오랜 세월이 지난 뒤 문득 발견된 돌아가신 아버지의 편지를 읽으며, 아버지에게 불면의 밤을 만들어 준 자신의 잘못을‘혹은 하나의 연애사건, 혹은 하나의 허언(虛言), 혹은 하나의 치희(稚戱)’라고 말한 대목도 좋습니다. 동물원 우리에 갇힌 범의 불안 초조를 묘사하면서 ‘그 무서운 분노, 괴로운 부르짖음, 앞발의 한없는 절망, 미친 듯한 순환’을 나열한 대목도 나는 아주 좋아합니다.

그러나 이미 몇몇 사람이 지적했듯이, 원문과 번역문을 대조해 보면 빠뜨린 부분이나 역자가 지어 넣은 부분이 여러 곳임을 알게 됩니다. 아버지를 잠 못 들게 한 잘못에는 연애사건 그런 것 외에 아들의 빚, 나쁜 성적통지표도 있지만 역문에는 다 빠졌습니다. 오랫동안 사랑하는 이로부터 편지가 오지 않을 때, 그녀가 이런 이른 봄날 밤 다른 남자와 산책을 즐기는 게 아닌가 하고 생각하는 대목도 실제로는 훨씬 더 구체적입니다. 그 남자는 단순한 어느 남자가 아니라 ‘군도(軍刀)를 찰싹거리고 단추가 반짝거리는 금발의 장교’입니다.

게다가‘횔덜린의 시장(詩章), 아이헨도르프의 가곡’이나 ‘바이올렛 색과 흑색과 회색의 빛깔들. 둔하게 울리는 종소리. 징소리. 바이올린의 G현.…유랑극단의 여배우들’이런 것들은 다 원문에 없습니다. 오뉴월의 장례행렬은 아무 수식이 없는 그냥 장례행렬일 뿐이며, 가난한 노파의 눈물은 원래 늙은 성직자의 눈물이라고 돼 있습니다. 우리의 정서와 감수성에 맞지 않는 부분을 빼거나 바꾼 것이라고 볼 수 있지만, 원문은 역문보다 덜 문학적이고 덜 고상하며 실제적이고 생활적이고 성인적이라는 인상을 갖게 합니다.

단기 4286년(1953년) 고교 2학년 국어 교과서에 처음 실렸던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은 1981년 제4차 교육과정 개정을 계기로 1982년 이후 교과서에서 사라졌지만, 30년 가까이 감수성이 예민한 우리나라 10대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그 글을 배운 사람들에게는 가히 '안톤 슈낙세대'라고 할 만한 공감대가 있습니다. 요즘도 원전과 관계없이 제목만 차용한 각종 칼럼이나 패러디 작품이 많이 눈에 띕니다. 사람은 누구나 좋은 글에 빚을 지고 삽니다. 더욱이 그 글이 교과서에 실린 것이라면 더 말할 것도 없습니다.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 중에서 내가 가장 공감하는 대목은 ‘숱한 선생님에 대한 추억. 수학 교과서’, 이 부분인데, 원문에도 ‘Erinnerungen an Lehrer;das Lehrbuch der Mathematik’이라고 잘 나와 있으니 수학 교과서는 동ㆍ서양 가릴 것 없이 사람들을 괴롭히고 슬프게 만드는 것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번역은 반역이라거니 제2의 창작이라거니 그런 말들을 많이 하지만, 청천은 남의 글을 번역하면서 첨삭을 통해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보탰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사실 우수한 번역은 원작이나 원문을 능가합니다. 예를 들어 슈베르트의 연가곡집 <Winterreise>는 직역하면 겨울여행일 뿐이지만, 이를 겨울나그네라고 바꾼 것은 참 탁월한 번역이며 용어 선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 해도 말을 빼거나 자신의 기호대로 첨가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생각을 하며, 지금 쓰는 내 글을 다시 읽어 보다가 한 대목을 고쳤습니다. 앞 부분에‘행사에 참석하지 못하고 현장을 촬영한 동영상을 나중에 살펴보니’라는 대목이 있는데, 처음에는 ‘행사에 참석하지 못하고 나중에 현장을 촬영한 동영상을 살펴보니’라고 썼다가 ‘나중에’라는 말의 위치를 바꿔 놓았습니다. 그게 적확하기 때문입니다.

글을 쓸 때 항상 신경이 쓰이는 부분은 부사(副詞), 이른바 어찌씨를 어디에 어떻게 넣느냐 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의 글을 읽을 때, 나라면 이렇게 쓰지 않겠다는 생각을 자주 하는 게 바로 이런 경우입니다. 앞에서 인용한‘오랫동안 사랑하는 이로부터 편지가 오지 않을 때’라는 번역문도 ‘사랑하는 이로부터 오랫동안 편지가 오지 않을 때’라고 고쳐 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사람들은 다 아무 문제 없이 잘 알아 들은‘세 번째 줄에서 떨어진 광대’를 40년 가까이 엉뚱하게 받아들인 게 하도 억울하고 분해서 나는 이렇게 타박과 투정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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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8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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펭귄 (83.XXX.XXX.133)
저도 서화숙님처럼 3번째 줄의 광대가 떨어진 줄 알았습니다.
그 오랜시간을 그리 알고 있었으니...웃음이 폭폭 쏟아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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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13 07:5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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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순입니다 (121.XXX.XXX.16)
여기 글 올려 주신 분들께 감사 드립니다. 저처럼 그 글을 잘못 알고 있었던 분들이 의외로 많아서 좀 안심이 됐습니다. 모르는 건 막 떠들고 병도 떠들고 다녀야 처방이 나오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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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12 18: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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頭打 (121.XXX.XXX.193)
지가 임주필님보다 조금 더 묵었심더.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같은 글의 일부 내용을 잘 못 이해해온 것 정도엔 한참 전부터 둔감해져왔습니더.

".. 하도 억울하고 분해서 나는 이렇게 타박과 투정을 하고 있습니다"

글 뿐만 아니라 위 표현을 통해 읽히는 임주필님의 삶에 대한 열정이 부러울 따름입니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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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12 10:0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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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수 (118.XXX.XXX.158)
저도 이 칼럼을 보기 전에는 두 번은 성공하고 마지막에 떨어진줄 알았습니다.
고교시절 자주 읽었던 글인데 50년 넘게 엉뚱하게 받아드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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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11 10: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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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옥 (210.XXX.XXX.204)
안톤슈낙의 산문은 번역상에 오류가 있었다 하더라도 고교시절 우리에게 끼친 영향력은 그 어떤 문학작품 보다 컸으리라 생각됩니다.
좋아하는 詩를 암송하거나 좋아하는 문장을 베끼며 문학공부를 하던 때가 새삼 귀하게 여겨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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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11 00:4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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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식 (211.XXX.XXX.56)
그게 드라이 말 이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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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10 13:4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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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재 (211.XXX.XXX.129)
잘 배웠읍니다. 저도 처음 이 멜의 제목만 보고는 광대가 셋 째 번 줄에서 떨어졌다는 생각을 아무런 망설임 없이 했었는데 거 것이 그렇군요. 그리 받아들이는 것은 아마도 우리들 심리가 기본적으로 성공을 보통이고 실패는 드물게 있어 피하고싶고 없었으면 하는 사건이라는 잠재 혹은 희망을 느을 품고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아뭏든 번역자가 원문에 없는 말을 넣거나 있는 구문을 빼는 것은 양심의 문제까지도 꺼낼 만 한 나쁜 행위라고 동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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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10 13:4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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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화숙 (211.XXX.XXX.129)
저는 심지어 줄이 여러 개 있어서 세번째 줄의 광대만 떨어진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앞줄 두 광대는 멀쩡한데 이 사람만 떨어져서 난감한 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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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10 13:3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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