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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하모니 아폴로 르네상스
임철순 2007년 02월 24일 (토) 11:42:47
회사가 이사를 하는 바람에 명동이 가까워졌습니다. 길을 건너면 바로 명동입니다. 젊고 화려하고 은성(殷盛)하고 붐벼서 정신없는 동네가 어느 날 갑자기 내 앞에 밀려 닥친 느낌입니다.

대학에 다닐 때는 명동에 나와 맥주를 한 잔 얻어 마시는 것이 그저 황감한 자랑거리였습니다. 그러나 그 뒤에는 어지간히도 명동에 오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1970, 80년대의 민주화투쟁을 취재할 때 명동성당을 중심으로 이 곳에 드나들었지만 민주화투쟁은 명동 본래의 정통적인 모습은 아닙니다.

명동은 대체 어떤 곳인가? 1950년대 전후(戰後) 폐허시대와 지금의 명동은 그 성격이 확연히 다르지만, 이 곳이 사람을 만나는 곳이라는 의미는 달라지지 않은 것 같습니다. 누가 쓴 것이었는지 잊었지만 “연말이면 거리로 나가 누군가의 손을 잡고 싶다”는 글에 담긴 장소가 바로 명동이 아닐까 싶습니다. 낭만과 사랑의 거리, 성탄절과 연말이 가장 잘 어울릴 것 같은 곳, 그게 명동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점심식사를 마친 뒤 그 거리를 혼자 걸어봅니다. 걸음을 제대로 걷지 못할 만큼, 그렇다고 걷지 않고 서 있을 수는 없을 만큼 사람이 많습니다. 무엇이 그리도 즐거운지 시시덕거리고 깔깔거리는 젊은 남녀들, 걱정거리란 하나도 없는 것처럼 보이는 싱그러운 아가씨들로 명동은 여전히 붐비고 있습니다.

그렇지, 필하모니라는 음악감상실이 있었지. 그 건물의 앞에는 소피아라는 독일 전문서점이 있었어. 그러나 이 골목인지 저 골목인지 헷갈려 얼른 알아낼 수 없었습니다. 맞아, 이 길이었어 하고 찾아내긴 했지만 필하모니가 있던 곳이 정확히 어느 건물이었던지 알 수 없었습니다. 필하모니도, 소피아도 아무런 흔적이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1970년대 나의 사랑은 음악감상실이 중심이었습니다. 맨 처음에는 종로1가의 르네상스, 그리고 이어 삼각동(광교)의 아폴로, 맨 마지막으로 명동의 필하모니가 나와 그녀가 만나던 곳입니다. 기억 속에는 그 세 군데의 풍경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그러나 지금 남아 있는 건 하나도 없고 아무것도 없습니다.

우리가 손이나 겨우 잡고 목소리 죽여 소곤거리며 들었던 음악은 참 많습니다. 그 중에서도 로드리고의 아란후에즈 협주곡, 칼 오르프의 카르미나 부라나, 베토벤의 로망스 2번, 스티븐 포스터의 금발의 제니, 이런 것들이 우리의 주제음악이었습니다.

지금과 같은 이메일과 인터넷 디지털시대에 30여년 전을 돌아보면 참 어이없게도 순진하고 느리고 멍청한 사랑이었습니다. 느린 시대, 무공해시대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 시대는 다시 올 리 없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느림과 작음, 무공해의 미덕을 다 잊고 살아서 문제인 것 같습니다.

그런 기분으로 명동을 거니는 동안 밀란 쿤데라의 소설 <느림>이 생각났습니다. 10여년 전에 번역 소개된 그 작품에는 “어찌하여 느림의 즐거움은 사라졌는가. 아 어디에 있는가, 옛날의 그 한량들은? 민요들 속의 그 게으른 주인공들, 이 방앗간 저 방앗간을 어슬렁거리며 총총한 별 아래 잠자던 그 방랑객들은?” 이런 말이 나옵니다.

어디로 갔는가. 그 모든 게 다 어디로 갔는가. 명동을 거닐다 보니 내 마음 속에 바람이 세게 불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청마 유치환의 시 두 편이 잇따라 생각났습니다. 두 시가 공통적으로 들려주는 것은 청춘이여 사랑이여, 너희는 어디로 갔는가 그런 말인 것 같았습니다.

먼저 <그리움>-. 오늘은 바람이 불고/나의 마음은 울고 있다/일찍이 너와 거닐고 바라보던 그 하늘 아래 거리언마는/아무리 찾으려도 없는 얼굴이여/바람 센 오늘은 더욱 너 그리워/진종일 헛되이 나의 마음은/공중의 깃발처럼 울고만 있나니/오오, 너는 어디메 꽃같이 숨었느뇨.

또 하나는 <청춘>. 이 시를 생각하노라면 바닷가 언덕에 앉아 있는 청마의 모습이 그림처럼 떠오릅니다. 바람이 불어오는 가없는 남녘바다. 눈부시게 밝은 햇살에 가느다랗게 눈을 뜨고 이마에는 약간 촉촉하게 땀기운이 배어 있는 얼굴. 반쯤 걷어올린 와이셔츠의 소매.

불어라 남풍이여, 나의 청춘의 날과 같이, 허구많은 희망과 환희와 탄식에 부풀은 가슴을 밀고/쉴 새 없이 출렁이는 파도를 몰아 나의 외론 마음의 섬마다를 달래며 꾸짖으며 애원하며 설레이고/뭍으로 올라서는 만산의 초목과 더불어 시시덕거리는 빛의 야료, 희열의 소동/이 한사코 날뛰는 보챔이 설령 물거품처럼 사라질 속절없는 보람이 될지라도, 불어라 남풍이여, 오직 하나의 이름을 위하여 명암하다 마침내 사워질 목숨이여, 나의 청춘의 바람이여

이런 여러 가지 생각을 하면서 명동을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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