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산 자락에 서비스센터를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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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 자락에 서비스센터를 꿈꾸며

임종건

2009년 10월 26일 (월) 01:30:51

통일한국이 어떤 모습일까에 대한 비전은 관점에 따라 낙원에서 재앙까지 다양합니다. 지난달 골드만삭스의 한국계 연구원이 내놓은 비전은 제법 장미빛깔에 속합니다. 향후 30, 40년 사이에 통일한국은 GDP 6조 달러로 독일과 프랑스 일본을 능가하는 나라가 된다니 미국 중국 다음가는 경제대국이 된다는 얘기가 아니겠습니까.

통일을 재앙으로 보는 측면에서는 체제 붕괴, 핵전쟁, 분할 점령, 대량 난민 같은 으스스한 얘기들을 하죠. 현실에선 그런 얘기들이 더 그럴 듯해 보이게 마련이죠.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나온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골드만삭스의 보고서는 실현 가능성은 별개로 하더라도 우리의 유쾌한 상상력을 자극하는 소재입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전혀 근거 없는 얘기도 아닐 듯합니다. 2008년도 국가별 GDP 순위를 보면 우리나라는 9,600억 달러로 세계 15위입니다. 한때 11위를 기록하기도 했으나 러시아 브라질 인도 호주 등 자원대국들이 국제 원자재 가격 앙등 바람을 타고 약진함으로써 순위경쟁에서 밀려났습니다. 북한이 남한 정도의 경제력을 갖췄다고 가정할 때 남북의 경제규모는 2조 달러대로, 당장 10위 이내 진입이 가능합니다. 허나 현재 북한의 GDP는 200억 달러 수준으로 합쳐 봐야 아무런 의미가 없는 수치에 불과합니다.

남한의 경제만 놓고 생각해도 가능성은 엿보이죠. 도시국가인 싱가포르나 홍콩 등을 제외하고 인구 4천만 명 이상, 면적 10만㎢ 이상인 국가들과 인구 대비 또는 국토면적 대비 GDP로 따지면 한국이 중국보다 월등히 높은 것은 물론이요 미국과도 맞먹는 수준이죠. 이들 국가들의 부존 광물자원의 규모를 비교 대상에 포함시키면 사람밖에 이렇다 할 자원이 없는 한국의 성취는 정말 눈부시죠.

하기야 자원이 많았다면 지금의 성과는 불가능했을 거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긴 합니다. 하지만 해외에서 98%의 자원을 끌어다 불과 한 세기 남짓 만에 우리가 이룩한 것은 어느 나라도 따라하기 힘든 경이로운 성취라는 것이 학계의 정설이죠. 골드만삭스의 보고서도 그런 한국의 저력에 대한 믿음을 바탕으로 한 것이라고 봐야겠죠.

보고서는 북한의 풍부한 광물자원을 통일한국이 강대국으로 도약하는 주된 논거로 들었습니다. 2008년 시장가격으로 북한 GDP의 140배나 된다고 봤더군요. 그러나 북한의 주요 광물자원인 석탄이나 철광석이나 우라늄 등은 그다지 품위가 높지 않다고 하죠. 게다가 중국이 기름 값 등 원조의 대가로 장기 선점했다는 얘기도 있고요.

그래서 저는 남북이 합쳐져도 통일한국의 강점은 광물자원보다는 여전히 인적자원에 있다고 보는 편이죠. 북한의 주민에게도 여건만 주어진다면 남한이 이룩한 정도의 경제발전을 이룩할 능력이 있다고 보는 거죠.

북한의 인력자원의 우수성은 해방 후 남한의 경제부흥에 북한출신 기업인들의 기여가 얼마나 컸었나를 생각하면 금방 알 수 있는 일이죠. 작고한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을 비롯해 무수한 이북출신 기업인들이 남한에서 산업을 일으켰습니다. 제조업만이 아니라 서비스업종에서도 두각을 나타냈죠. 흘러간 가요 ‘굳세어라 금순아’에 나오는 금순이 오빠가 부산 국제시장의 ‘장사치’였던 것처럼 전국 도처의 시장에서 온갖 종류의 장사를 해서 큰돈을 번 사람은 또 얼마나 많겠습니까.

또순이의 억척스러움과 왕성한 기업가 정신은 이북출신들의 특장(特長)으로 꼽히죠. 남한에서 실향민으로 살아남기 위해서는 그만큼 치열한 삶을 살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만 역사적으로 북한은 남한에 비해 산업면에서 앞섰던 지역입니다. ‘개성상인’이 우리나라 상인의 대명사이듯 서비스업도 앞선 지역이었죠. 개화기에 기독교도 먼저 들어와 서구문물을 앞서 접한 지역이기도하죠.

그런 북한이 공산화에 이어 쇄국으로 치달아 그 우수한 인적자원들이 기량을 발휘할 토양을 폐허로 만들었죠. 반면 자본가 탄압과 6.25전쟁을 거치며 북한의 인력이 대거 내려오면서 남한은 더욱 치열한 경쟁사회가 됐고, 살길을 찾아 해외로 시장개척에 나설 수밖에 없었지요. 우리의 우방인 미국 일본 유럽은 배를 타고, 비행기를 타고 가야하는 바다 건너의 먼 나라들이었죠. 반면 북한의 친구는 중국과 러시아로 육로로 갈 수 있는 이웃에 붙어있었죠. 게다가 냉전기간 동안 북한의 우방들은 북한의 경제성장에 도움이 안 됐지요.

제가 북한 체제를 보며 가장 안타깝게 생각하는 것은 북한이 젊은이들을 10년 가까이 병영에 가두어두는 체제라는 점이죠. 인간에게서 창의력이 가장 왕성한 시기를 그렇게 억압적인 상태로 얽매 놓는 나라에 무슨 발전이 있겠어요.

북한 경제가 우리 수준에 도달하려면 많은 시간이 걸리겠죠. 우리가 한 세대에 했다면 북한은 반 세대에 해내도록 도와야 합니다. 우리가 압축성장을 했다면 북한은 축약성장을 하도록 해야 합니다.

그것 역시 가능한 일이죠. 저는 그것을 가능케 하는 동인(動因)을 동족에게서 찾아야 한다고 보죠. 남한의 성장은 주로 일본의 자금과 기술을 원동력으로 삼아서 이룩한 것인데 현재의 만성적 대일 무역적자가 말해주는 것은 한국경제에 대한 일본의 예속화정책의 결과물이라고 볼 수 있죠. 통일한국의 경제개발이 남에 의한 북의 예속이 아닌 동반관계로 추진된다면 경제성장은 속도와 질의 면에서 상승(相乘)효과를 기대할 수도 있을 겁니다.

지금 기준으로 통일한국의 인구는 남한의 4,900만 명, 북한의 2,400만 명을 합한 7,300만 명이죠. 북한은 남한에 비해 면적이 넓지만 인구는 절반도 못돼 남한 인구의 북한 이주의 여지가 큰 편이죠. 물론 단기적으로는 북한 인구의 남한 러시 현상이 나타날 수도 있는데, 장기적인 관점에서 그렇다는 얘기죠. 그래서 남한의 인구과밀 구조의 완화도 기대되죠.

남북통일은 사회적인 격변이므로 베이비붐의 기폭제가 돼 우리가 걱정하는 인구감소에도 돌파구가 될 수도 있다고 봐요. 안정적인 내수시장을 형성하려면 1억 명 정도의 인구가 있어야 한다는데 한반도는 그 정도의 인구를 수용할 만한 면적이죠. 남북한 인구가 균형을 이루며 1억 명에 이르게 되면 한반도는 일본과 국토나 인구면에서 비슷해져 최적의 선진국 인프라를 갖추게 됩니다.

북한의 경제개발에 가장 필수적인 것은 남한의 자본과 기술이죠. 정부 차원의 지원과 함께 민간들의 참여도 불가결한 요소죠. 대북 투자를 천문학적 숫자를 앞세운 거대담론으로만 말할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저는 평소 남북통일이 되면 백두산 자락에 커피점과 식당과 숙소가 달린 서비스센터를 차리는 꿈을 꾸고 있습니다. 북한에 아무런 연고도 없는 제가 그런 생각을 하는데 실향민이나 그 후손들이야 더 말해 무얼하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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